경원하?박사?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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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하?박사?스토리
  • 김제완
  • 승인 2003.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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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개발을?주도?했다는?한?과학자의?미국?망명?소식을?놓고??온통?시끌시끌
?하다.
아직?보도의?진위?여부가?명확하게?가려져?있지는?않지만?남북한은?물론?미국?호
주?캐나다?거기에?평소에는?들어?보지도?못했던?남태평양의?어느?소국까지?게재된
?국제적?관심사로?떠올라?있다.?본보는?경원하?박사가?공부하고?활약했다는?캐나
다?현지에서의?추적?기사를?싣는다.?
?경박사의?캐나다?행적?에서도?우리는?민족이?겪는?분단의?아픔과?설움을?짙게??
느낄?수?밖에?없다.?귀한?글을?보내준?송광호?특파원은?46년?서울생으로?서강대국
문과를?거쳐?80년?캐나다?이민길에?올랐고?그곳에서?언론생활을?시작했다.?(한국
일보?조선일보)??*현재?강원도민일보?북미특파원*?92-96년?지방신문?모스크바?공
동특파원(강원,?광주,?대전,대구?매일,부산일보)
*94년?한국?신문상?수상?*95년?관훈클럽?국제보도상?수상??*저서?'캐나다?이민?20
년?한국인은?뛰고?있다'(91년?조선일보사?발행)?*재외동포?신문?해외편집위원???(
편집자?주)

-경원하?박사?스토리?(캐나다?송광호특파원)?
?경원하박사(75세)는?평양고보?출신이다.?그는?6.25전쟁때?단신?월남해?춘천?농대
(강원대?전신)에서?강사(수학,?통계학?등)로?있었다.?또?춘천고(대학?입시반)에서
?수학을?가르쳤으며,?춘천?성심여대에선?물리과를?처음?만든?장본인이다.?
그는?박정희?정권당시?평양고보?동기동창이었던?홍성철?문교부장관의?권유로?65년
?브라질?상파울로로?갔다.?경박사는?비록?정치엔?관심이?없었지만?당시?군인?정권
이?싫었고?부정부패가?만연돼?있는?한국이?싫었다?한다.?이?때문에?유학이라는?길
을?통해?브라질을?택한?것이다.?그러나?그는?브라질?공항에서부터?뇌물을?요구하
는?등?그?나라?부패상을?보고?'아,?한국보다?더?썩은?나라로?왔구나'라고?판단,?
곧?캐나다?몬트리올의?고종옥?신부(73세)에게?편지를?썼다.?
당시?브라질?교포사회에선?캐나다의?高신부가?이민을?쉽게?해?줄?수?있는?능력을?
지닌?존재라고?널리?알려져?있었다?한다.?또?그?소문은?어느?정도?사실로서?당시?
천주교?高신부의?파우워는?막강했다.?63년에?캐나다?땅을?디딘?그는?당시?성직자
가?많지?않은?캐나다?주류사회에서?존경을?받고?있었고?加고위인사들과?교류가?많
아?웬만한?일은?그가?대부분?해결?할?수?있었다?한다.
高신부에?따르면?경씨로부터?소설?같은?장문의?편지를?받은?후?그를?캐나다로?이
민시키고?나중?만나보니?천재에?가까운?사람임을?발견했다고?한다.??????????
경원하씨는?몬트리올에?오자?맥길대학에서?석,?박사학위를?따고?대학원에?남아?교
수?길을?걸었다.?(당시?석호천?박사가?오마이뉴스에?밝힌?경박사가?교수생활을?안
하고?캐나다?일반회사에?다녔다고?말한?것은?사실과?어긋남)?96년에?발간된?맥길
대학?총?동문?및?교수진?명단을?보면?경박사는?대학(원)교수로?밝혀져?있다.?지난
?96년?맥길대학에서?창립?175주년?기념(1821년-1996년)으로?특별?발행된?동문명단
?책자?859페이지(총?1408페이지?중)에는?단지?이름이?Kyong?Won?Ha(박사호칭이?안
붙은)로서?1969년?대학(원)교수(faculty-class?year)로?적혀져?있다.
高신부의?도움으로?영주권을?받고?몬트리얼로?이주한?그는?高신부와?당연히?절친
한?사이가?됐다.?고신부는?그가?탁월한?학자라는?점에?천주교인이?아닌데도?대부
,?대모없이?특별?세례를?줄?정도였다고?한다.?또?고신부?등에?따르면?당시?맥길대
학?학위논문이?'구면?폭발?충격파에?대한?수치?해석'이지만?'우주?장거리탄도?계
산'과?연관을?갖는?테마로?기억한다.
그러나?문제가?생겼다.?경박사는?비엔나?학자들?회의에?참가했다가?북한에?사는?
형을?만났고,?또?그리던?어머니를?만나러?72년?온?식구(부인과?두?딸)4명이?북한
을?방문한?것이다.?그는?결코?사상적으로?친북?인물이?아니었지만?訪北당시?분위
기나?사회현상이?그에겐?무척?적대적이었다.?高신부에?따르면?경박사는?어머니를?
비롯해?여러?형제를?그리워했으나?방북을?무척?꺼렸다고?한다.?
그리고?고신부?역시?경박사가?加시민권을?딸?때까지?몇?년?기다리라고?충고했다.?
그러나?당시?먼저?방북했던?加시민권자인?교포?김치백?육군대령(사망)의?권유로?
방북을?결심하게?되고,?1년?전부터?미루던?방북을?72년?김일성?진갑?때?'북미?조
선인?대표'라는?이름으로?초청?받았을?때?결행한?것이다.?
결국?방북후?그는?캐나다?정보기관(RCMP)에?걸려?그대로?추방당할?입장에?놓였다
.?(캐나다?시민권자가?아닌?영주권자의?경우?캐나다?법에?저촉되면?加정부는?언제
든?추방시킬?수?있다.)?????또?대학에서도?교수자리까지?박탈당했다.?그는?생계를
?위해?수십?군데?직장을?알아봤으나?처음엔?모두?호의를?갖다가?加정부?개입?탓인
지?모두?거절당했다.?교포사회는?교포사회대로?그를?외면했다.?그러던?중?캐나다?
정부로부터?단기일?내?떠나라는?추방?명령이?떨어지자?짐도?제대로?꾸리지?못하고
?유럽을?거쳐?72년(73년?)?북으로?들어간?것이다.
한편?고신부는?캐나다?고위층등?그가?평소?친하게?지내는?지인을?이용해?그의?구
명을?펼쳤으나?허사였다.?오히려?高신부까지?관계기관에?불려가?조사까지?받았다
.?이때?高신부는?경박사에?관련한?모든?기록이나?사진,?일기?등을?전부?없앴다고?
한다.?이?때문에?정확한?연대를?기억?못하고?있다.
고신부가?경박사를?마지막?본?것은?파리에서였다.?캐나다에서?추방당한지?꼭?1년
만인데?갑자기?프랑스?파리에서?전화가?와?급히?가서?만났다.?이때?경박사는?부인
과?함께였다고?한다.
시간이?좀?흘러?83-4년경에는?북에?간?경박사?큰딸(경희아-48세)이?북한?김영남외교부장?전속?통역관(영어?및?불어)으로?뉴욕에?얼굴을?비쳤다.?이때?고신부는 LA에?있었으나?소식을?듣고?그녀를?만나고자하니?북에선?이를?알고?그?딸을?급히 북한으로?송환해?버렸다고?한다.?나중?91년?고신부?또한?북한을?방문할?기회가?있어?경박사를?찾았으나?北에선?아무도?그의?거처를?얘기해?주는?사람이?없었다.?단지?연회석상에서?경박사?딸에?대해?아는?학자가?한?명?있었다한다.
현재?고신부는?경박사의?망명했다는?얘기에?마음이?들떠?있다.?그러나?망명길에?
두?딸이?동행하지?못했다는?소문에?걱정한다.?
은퇴?후?잠시?몬트리올?카톨릭?한?요양원에서?머물고?있는?고신부는?경박사와의?
반가운?재회?날만?그리며?일상을?보낸다.?일생을?홀로?고독하게?살아가는?고신부?
입장으론?언제가?될지?경박사와의?해후는?가장?기쁜?날이?될?것임이?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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