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해야 한다면 벽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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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해야 한다면 벽을 향해...'
  • 안동일
  • 승인 2003.04.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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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안동일)  사스공포가 전세계를 뒤덮고 있고 북핵 문제가 민족의 가슴을 얼
어붙게 하는 이즈음, 이곳 뉴욕은 그런 중차대한 문제를 제껴둔 채 난데없는 X새
끼 파문에 술렁이고 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는 대사급 외교관의 눈에는 한
인사회, 특별히 뉴욕동포사회가 어글리하기 짝이 없는 모양이다.

4월 하순의 뉴욕 하늘은 화창한데 난데없이 이 파문이 튀어 나와 사람마다 눈쌀
을 찌푸리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고 있어 시끌시끌 하다.
파문의 원인 제공자는 뉴욕 총영사.

'동포들은 모두 X새끼이고 단체장이란 사람들은 다 사기꾼인데 뭐 만나려 하십니
까?'
조원일 뉴욕 총영사가 며칠전 뉴욕을 방문해 한인회며 동포단체를 찾으려 했던
박관용 국회의장일행에게 했다는 말이다.

거두절미되어있고 전후맥락이 빠져 있기는 하지만  이 말을 전한 사람이 의장 공
보비서관이고 또 폭로의 진원지가 그 비서관이 나왔다는 육사 동창회 웹사이트
(www.kma32.or.kr)고 보면 근거 없는 뜬 소리는 아니다.

  20년 가까운 시절 전에 뉴욕의 언론계에서 함께 활동했던 손영순씨의 옆모습을
본 것은 며칠전 플러싱의 한 주점 화장실에서 였다. 그땐 그가 손씨인줄 몰랐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많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왜냐면 내 기억에  손씨는 서울에 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손씨가 바로 한국
의 박관용 국회의장 공보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민 20년의 손씨는
지난해 영구 귀국을 단행 했던 것이다. 그랬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사람이 손영
순씨 맞았다.

손씨는 자신이 올린 웹사이트 글에서도 뉴욕방문 일주일 내내 금의환향을 환영하
는 친구들의 강권에 주점에 가야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때 자신의 볼일에 바빠
내 쪽은 돌아보지 않았던 그의 이름을 부르고 악수를 청했더라면 어색한 상황이
기는 하지만 그 전후 스토리를 다 들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손씨는 뉴욕 도착한날 조 총영사에게 그 말을 듣고 일주일 내내 귀가 3센티나 부
어 다녀야 했으며 자신의 상황도 꼬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총영사의 폭언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조원일 총영사는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조총영사는 이 문제가 불거지자 화급히 동포신문 기자들을 불러 당시의 상황을 설
명하기는 했다. 그런데 NCND라고 할까, 명백하게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노
무현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동포사회의 부정적 모습을 염려하는 말이 와전됐을 것
이라는 해명이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동포사회에서 총영사라는 자리는 대단한 위상을 지니고 있
다.  어떤 행사장을 가도 가장 상석에 앉고 축사를 해도 가장 먼저하며 연설을 하
는 사람들은 그의 참석에 대한 경의를 먼저 표하곤 하는게 일반이다. 동포사회 최
고 권력자(?)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 군관민 했던 그런 권위주의
시대부터 내려온 구습이자 잘못된 인식과 관행이라는 반성의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  총영사의 동포사회내의  그런 지위는 낮아지지 않을 것이다.

뉴욕에서는 총영사를 '대사님' "대사님'하면서 더 높여 부르곤한다. 사실 뉴욕
총영사의 직급이 대사급이기도 하고 대개 다른 작은 나라 대사를 역임한 인물들이
총영사로 부임해 오기에 영 틀린 말 이라고는 할 수 없긴하다.

그런 대사님이 자신을 우러러 떠받드는 자식과도 같은 동포들을 X새끼들이라고 했
다니 자신이 바로 X가 된셈이 아닌가.

조총영사의 그 발언이 전해진 뒤 뉴욕 동포사회는 발끈 할 수 밖에 없었다.
동포방송은 이일을 뉴스시간 머릿소식으로 다루었고 한인회며 직능 단체 협의회가
재빨리 성명서를 내 발언의 진위를 캐고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한인
회 임원진은 지난번에 이명박 서울시장이 뉴욕에 왔을 때 오만데는 다 가면서도
한인회관에 오지 않았던 것도 조총영사의 농단임에 틀림없다고 다시 격분하고 있
다.  일파만파인 셈이다.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이 발언 한마디를 놓고 조 총영사의 인격 전체나 업무수
행능력 전체를 따지고 규탄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기는 하다.
이번 일을 기화로 조총영사가 평소 언행이 경박했다고 쌍심지를 돋우는 사람도
있지만 공사석간에 동포사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발언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증언
하는 사람도 적지는 않다.

사람은 어느 순간 뭐에 씌워진 듯 실수의 행동이나 발언이 튀어 나올 때가 물론
있다. 조총영사의 경우도 그랬으리라 애써 짐작하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자기 집
강아지 자신이 차면 남도 찬다는 사실, 그래서 더 속상해 진다는 사실  사람들은
가끔씩 잊는 모양이다.

동포사회가 맑고 청정한 귀감의 사회이며 동포 모두 천사 같은 사람들이라고 강
변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 사는 곳에는 문제와 비리 이해 못할 일이 있게 마련이
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그런 우를 계속 범하고 사는게 우리네 인생이
지만 '나는 오탁세계에 있지만 너는 후배는  청정세계로 나가라'고 자식에게 후배
에게 말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X새끼' 그리고 그 보다 더 지독한 욕으로 통하는 'Y같은 새끼'.
우리 대부분 살아오면서 수없이 했겠지만 아무도 듣지않는 곳에서 아주 큰소리로
한번 외쳐보자. 어째 속이 시원해지지 않는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의 얼굴까지 떠올리며 하면 효과는 더 커진다. (실은 어느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책에서 쓴 얘기인데 필자도 공감하는 바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탁악세를 끝내 벋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밤 웬지 그러고 싶
다.
아무도 안 듣는 곳에서 한번씩 크게 외치고 내일 밝은 날에는 평온한 마음으로
출근해 더 중요하고 생산적인 일에 몰두들 했으면 좋겠다.  
모든 일에는 때와 장소가 있으며  그리고 공인에게는 품위가 있어야 한다는 법은
잊지 말자.

(필자 재외동포신문 해외 편집위원장, 뉴욕 라디오서울 K-TV 뉴스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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