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한인학회 자료] 한민족공동체 형성과제와 민족정체성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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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한인학회 자료] 한민족공동체 형성과제와 민족정체성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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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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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7일 국회헌정회관에서 열리는 재외한인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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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공동체 형성과제와 민족정체성문제



                                                  정영훈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목차 -

1. 머리말
2. 한민족공동체의 이상과 과제
3. 민족정체성의 개념, 성격, 지속조건
4. 지구촌 한민족의 민족정체성, 그 현실
5. 한민족공동체의 민족정체성 형성방향
6. 맺음말


1. 머리말

     한민족공동체란 전세계에 흩어져서 살고있는 한민족 성원들을 공동번영을 위하여 서로 돕고 협조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시키자는 취지하에 제기되고 있는 용어로서, 지금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를 헤쳐갈 수 있는 민족적 생존발전전략의 하나로서 그 의의가 부각돼가고 있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한민족공동체란 현재 존재하는 집단이나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민족적 차원에서 장차 지향해가야할 하나의 미래상이자 추구되어야할 지표로서 떠오르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다.   이 아이디어는 동포애에 입각하여 결속된 민족적 공동체를 추구해온 근대사 이래 한국민족주의의 염원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최종적인 목표와 접근해가는 과정에 대한 그림이 아직 완결된 상태는 아니다.   이 아이디어는 장차는 남북통일문제까지를 하나의 하위주제로 포섭해가면서 세계 각지에 흩어져서 살고있는 한민족 전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하나의 상위 명제로 발전해갈 것이지만 그러나 아직 하위의 여러 변수들까지를 감안한 설계도는 제안되지 않았고 수반되는 여러 문제와 전략에 대한 체계적 연구나 토론도 충분치 못하다 할 수 있다.
     한민족공동체론은 단일의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것이 우선 추구하는 것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 성원들을 하나의 민족이라는 동질성과 동포의식에 토대하여 정서적으로 연대시키는 것이며, 나아가 그같은 정서적 연대에 토대해서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에 공동대처하는 협조체제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구상은 여러 가지의 과제를 제기한다.   동포사회를 연결시키는 조직망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도 요청되며, 또 공동의 이익을 확장하는 사업도 필요하다.   그러나 성원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일 또한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한민족공동체란 현실적으로 한민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공유한 사람들로 구성된 상호협조의 연결망 또는 유대체제를 가리킨다 할 수 있다.   한민족공동체는 스스로를 한민족의 일원이라 느끼는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바, 성원들에게 공유된 민족정체성의 내용과 강도에 의해 그 성패와 방향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민족공동체의 결속의 강도는 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민족정체성의 내용과 질의 여하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한민족공동체의 성패는 민족정체성을 어떻게 형성시키고 발휘하게 만들 것인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는 한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제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민족정체성문제를 검토해본 것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한민족공동체의 구성원은 누구이고 이때의 '한민족'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또 한민족공동체의 구성원으로의 정체성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한민족으로의 정체성을 유지-강화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하는 물음들을 중심으로 하여 살피고자 한다.   우선 한민족공동체의 구성원으로의 한민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공동체결속의 대상과 범위를 정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현재 한민족공동체의 결속대상으로 상정되고있는 한민족성원들에게 민족정체성문제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하는 것을 살피고 진단하는 문제 역시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을 전개함에 있어 필수적인 사안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민족공동체의 잠재적 성원들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의 정체성을 제고하는 문제는 한민족공동체의 성패에 직결되는 과제이거니와 이같은 문제와 관련된 전략과 방안을 찾는 작업이 이 논문의 마지막 주제가 되겠다.   논문에서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민족공동체의 이상과 과제를 개괄하고 민족정체성이라는 말의 의미와 의의 및 속성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는 일부터 시작하고 한다.



2. 한민족공동체의 이상과 과제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은 모두 75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중 한반도 남북에 거주하는 인구가 남한 4763만명(2002), 북한 2225만명(2001), 합하여 6988만명이고, 한반도 밖에 거주하는 인구가 151개국에 565만명을 상회한다.   재외동포의 절대수는 이탈리아(6000만명)과 중국(2500만명), 이스라엘(1800만), 멕시코(1800만), 우크라이나(2000만), 레바논(1200만) 등 근대사 속에서 인구유출이 많았던 나라들과 비교하면 작지만, 그러나 인도(480만)나 일본(260만) 등과 같이 우리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인도와 일본 같은 나라도 480만과 260만명에 불과함을 보면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전인구중 외국에서 살고있는 인구의 비율로 보면 전체의 7.5%가 외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되어, 물론 외국이주자의 비율이 많은 이탈리아나 이스라엘 등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중국의 1.8%와 비교하면 역시 자은 비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한민족이 거주하고있는 나라도 전세계 150여개국을 넘고 있어서 세계에 이름있는 국가중 한민족이 살지않고 있는 나라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특히 미국-중국-일본-CIS 등 시장규모가 크고 강대국으로 꼽히는 세계의 주요국가에 집중 거주하여 정치.경제적.외교적 활용도가 크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한민족의 해외이주사는 곡절많은 한국 근현대사를 반영해왔다.   근대 이민사는 1860년대에 생활고에 빠진 국경지대 농민들이 간도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1903년부터는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으로 노동이민이 시작되었고, 일제침략하에서는 일제의 경제적-정치적 핍박을 피하여 많은 사람들이 마누와 연해주.중국.미주.일본 등지로 이주하였다.   그중에는 호구지책을 위한 경우도 많았지만 독립운동을 위한 이주도 적지않았다.   중국과 미주등지로 이주한 동포들은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광복운동의 후원자들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는 만주개척을 위하여 한국인을 집단적으로 이주시켰고 징용 등에 의해 강제로 끌고가기도 하였다.   이주해간 이들은 해방이 되고 상황이 호전되면 본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였겠지만, 그러나 해방후 찾아온 냉전은 그들에게 귀환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해방후의 분단과 남북갈등 및 정치-경제적 상황들도 해외이주를 촉진하엿다.   한국전쟁중에는 남북 어느쪽을 선택하는 것도 거부한 전쟁포로들이 인도나 남미 같은 제3국으로 이주하기도 하였다.   특히 60년대 중반이후에는 해외에서 가능성을 찾으려 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과 남미 등지로 이주하였다.  그런 저런 경위와 이유들로 인하여 전세계로 처져간 한국인의 숫자가 지금은 앞에 말한 바와 같이 565만명을 넘어섰으며, 그들은 모두 한민족 모두의 미래를 위하여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민족공동체란 말하자면 지구촌의 한민족이 동포의식에 토대하여 결속하고 공동번영을 위하여 상호협조하는 하나의 응집된 연결망으로 발전하는 것을 상정한 하나의 가상공동체로서, 현실 속에 실재하고 있는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 미래에 추구해가고자 하는 일종의 비전이자 설계도에 해당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탈냉전.세계화.정보화라는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남북한과 세계 각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 전체가 하나의 문화단위, 경제단위, 생존단위, 발전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토대하여 한민족의 새로운 생존.발전모델로서 제기되고 있다.
     한민족공동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들어서의 일이지만 그러나 그같은 관점은 한국민족주의 운동사 속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할 수 있다.   한민족공동체의 정신과 이념은 기본적으로 한국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과정 속에서 요청되고 성장해온 것이었다.   그것은 오랜 역사속에서 한민족이 꿈꾸고 추구해왔던 염원을 계승하고 있으며, 21세기에 한민족이 처하고 있는 상황과 과제를 반영하고 있다.
     한민족은 일찍부터 혈연적-문화적 공동기반과 단일국가 안에서 살아온 역사속에서 민족적 동질성과 공동운명의식을 키워왔다.   한말에 와서는 단군의 자손의식이 대중화하면서 한민족은 민족적으로 각성한 '근대적 민족'으로 발전하였으며, 이후 한국민족주의는 혈연적 뿌리를 같이하는 민족성원들의 연대성과 공동체적 결속을 강조해왔고, 전체 민족성원이 동포의식에 토대하여 협조하고 상부상조하면서 유대를 나누는 공동체의 형성을 추구해왔다.   성원들 또한 그같은 의식을 공유하면서 실천했는데, 가령 삼일운동의 민족적 궐기에 해외의 동포들이 동참하고 이후 임시정부 운영 등 독립운동에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한 점이라든지, 해외의 동포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본국의 동포들이 모금운동 등을 벌여 아픔을 같이 나눈 사례 등이 그것이다.
     필자는 20세기 전반기의 한국민족주의의 화두가 자주독립이었고 후반기의 화두가 통일이었다면 21세기 한국민족주의의 화두는 한민족공동체가 되리라 생각한다.   한민족공동체론은 동포애에 토대한 민족적 단결과 공동체결속을 추구해온 한국민족주의의 기본관심의 연장선 상에서 출현한 관념이지만, 21세기 세계화시대에 한민족이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한 민족적 발전전략으로의 의미를 지닌다.   그같은 구상은 또 해외에 진출한 한민족이 거주국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있고 고국에 대한 애착과 민족의식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본국정부와 국민의 적극적인 노력여하에 따라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총성없는 경제.문화 경쟁에 놓여있는" 해내외 한민족 성원들에게 그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까지 주장되고 있다.
     한민족공동체는 단일의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것이 우선 추구하는 것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성원들을 하나의 민족이라는 동질성과 동포의식에 토대하여 정서적으로 연대시키는 것이며, 나아가 그같은 정서적 연대에 토대해서 지구화시대에 공동대처하는 협조체제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것의 결속과 협동을 매개하는 것은 혈연적 동질성에서 기인하는 동포의식이고 공동의 이익과 번영에 대한 믿음과 기대이다.   또 공동의 언어와 생활양식 및 가치관 등의 문화유산이다.   따라서 한민족공동체의 본질은 자주 문화공동체라 규정되기도 한다.  
     한민족공동체는 또 동포들사이의 경제적 협력과 그를 통해 창출되는 공동의 이익에 의해 공동체성원들의 복지와 결속이 증진-강화될 것으로 상정하며, 경제적 측면에서의 상호협력을 매개-강화하는 것을 우선적인 사업과제로 설정한다.   이같은 지향으로 인하여 한민족공동체는 경제공동체로의 성격을 부여받기도 한다.   한민족공동체는 영토국가로의 통일 같은 정치적 목표는 갖지않지만, 민족의 권익을 보호하고 복지를 증진하는 과제를 위하여 공동체 성원의 결속된 힘을 활용하여 일정한 정치적 행동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공동체에 있어 정치공동체로의 성격은 잠재적인 수준으로 유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한민족공동체구상은 여러 가지의 과제를 제기한다.   이 이이디어를 보급하고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고, 동포사회를 연결시키는 조직망과 의사결정체제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도 요청되며, 경제협력 등을 통하여 공동의 이익을 확장하는 사업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족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일일 것이다.   민족정체성은 민족의 존립기반이면서 성원들을 소통시키고 결속시키며 공동의 과제에로 이끄는 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3. 민족정체성의 개념과 성격, 지속조건

     한민족공동체는 한민족이라는 민족정체성을 공유한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한민족공동체의 결속도와 활성화정도는 구성원들이 갖고있는 민족정체성의 강도와 질의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 할 수 있는데, 따라서 한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제는 민족정체성을 강화하고 공유하게 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민족정체성의 개념과 구성요소부터 살피고 그것의 유지보존에 관여하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정체성이라는 말은 개인이나 집단을 주변세계와의 연관 속에서 설명하고 규정하는 일과 관련된 일련의 관념체계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두가지의 용례로 쓰이는데, 하나는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는 객관적인 특성을 가리키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존재의 의의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을 가리키는 경우이다.   전자에서는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는 생물학적-문화적-사회적 특징들을 정체성이라는 이름하에 지칭하고, 후자에서는 개인이나 집단이 스스로의 소속이나 존재의의에 대해 갖고있는 주관적 인식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양자는 서로 의존관계에 있다.   고유적 특성이 유지되면 자기존재에 대한 강한 긍정으로 나타나고, 자기존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고유적 특성의 유지보전노력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자기존재에 대한 부정적 의식은 고유적 특성에 대한 애착심을 약화시키며 나아가 고유적 정체성의 약화-포기로 이어진다.  
     개인의 행동과 심리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정체성이다.   곧 자기자신을 누구로 보는지, 주변과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미래의 삶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체성의 외면적 특성들은 자아의 의지여하에 따라 보전-강화될 수도 있고 경시되거나 포기될 수도 있다.   자기존재에 대한 관점은 개인적 생활과 사회적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령 긍정적이고 균형잡힌 자아관이 수반되어야만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삶으로 연결되며 타자에 대해서도 관용적이고 개방적이다.   자기가 누구이고 왜 존재해야 하는가 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거나 부정적인 사람에게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타자를 위한 봉사나 희생을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정체성은 또 고정된 불변의 것이 아니라 자아의 발전에 따라, 그리고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끊임없이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만약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기민하게 재구성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 개인이나 집단은 침체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물론 변화가 지나칠 경우에는 혼란이 초래되며 심지어 자기상실과 자아해체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는 기존의 정체성을 폐기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암시해준다.   물론 정체성이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재구성되는 것이라 해도, 정체성 가운데는 상대적으로 변화폭이 적거나 변화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자아의 안정적 유지나 집단속에서의 원만한 관계형성을 위하여 유지-고수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물론 그것이 어느 부분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개인이나 집단이 갖고있는 대표적 속성이나 본질적 부분 및 비교유위에 있고 현실적 유용성이 있는 부분들은 유지-보전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이상에서 정체성 일반에 대해 살폈지만, 민족정체성이라 할 때는 민족적 특성 또는 소속의식을 가리킨다 할 수 있다.   민족정체성 역시 두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성원들 사이에 공유되어 있는 객관적 특성-개성이라는 측면과 민족적 차원에서 자기존재를 누구로 인식하는가 (어느 민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가) 하는 주관적 민족의식의 측면이 그것이다.   전자는 종족-혈통이나 문화(언어-생활방식-종교 등) 같은 객관적 지표들로 구성되지만, 후자는 개개인들의 소속의식(귀속의식-민족의식)으로 나타난다.   객관적 요소를 보전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흔히 민족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타민족(문화)에 동화되었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또 소속의식으로의 민족정체성은 민족적 공동운명의식이나 동포애-애국심 같은 본격적인 민족주의적 감정-사상의 정서적 토대가 된다.
     민족정체성의 객관적 측면은 나면서부터 생래적으로 갖게되는 것과 후천적으로 학습과 교육을 통하여 갖게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령 언어나 관습-가치관-문화 같은 요소는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이다.   언어-관습-문화는 민족사 속에서 시간을 두고 오랫동안 형성돼온 것으로, 개인들은 자라고 공동체속에서 생활해오면서 자연스럽게 그같은 요소들을 내면화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민족의 일원으로 편입되게 된다.   그러나 혈연적 특성은 나면서부터 갖게되는 것이고, 개개인의 의사에 따라 좌우될 수 없는 것이다.   이민자들이 거주지에서 그곳의 문화를 습득하여 주류문화를 내면화하고 현지인들과 똑같은 생활양식에 의해 살아가면서도 자주 한계를 경험하는 것은 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혈통적 특성 때문이다.   이 혈통적 특성은 외모에서부터 개인을 다른 민족과 구분해주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특정 혈통(민족)의 일원으로 규정되게 한다.  
     그런데 민족정체성의 주관적 측면은 그 객관적 측면에 밀접히 의존하기 마련이다.   종족적-문화적 동질성이 존재해야만 민족의식-공동운명의식-동포애-공동체의식 같은 정서와 의지가 생겨나기 쉽고 일단 형성된 민족의식이 수반되어야만 보다 선명한 민족의식이 형성될 수 있다.   혈연적-문화적 동질성이 약화-해체된 조건 속에서 하나의 민족의로의 민족의식과 동포애가 생겨나기는 어렵다.   물론 역의 경우도 성립한다.   말하자면 민족문화나 특성 같은 객관적 요소들은 민족의식 같은 주관적 요소가 강한 정도만큼 보전-유지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유의 특성들을 얼마만큼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민족의식-민족정체성의 잔존 정도를 파악하는 척도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이 갖고있는 민족정체성의 강도는 여러 가치들이 경합하는 상황속에서 민족이 어느 서열에 배치되느냐 하는 것에 따라 결정된다 할 수 있다.   개인은 여러개의 집단에 동시에 소속되어 있고, 경합하는 가치들중에 우선순위를 어떻게 매길지를 두고 고민하게 되는데, 민족적 차원에서 단결하고 공동으로 투쟁하는 것과 같은 집단행동은 성원들이 다른 가치들에 우선하여 민족을 자기가 속하고 충성을 바쳐야하는 대상으로 상정할 때에 가능한 일이다.   민족정체성은 특정 민족집단으로의 소속감에 그치지 않고 다른 어떤 관계들보다 (개인.가문.지역.당파.계급.세계 등) 민족집단의 일원으로의 소속의식을 앞세우는 감정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민족정체성을 민족의식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한다 할 때는 그것은 같은 민족성원들에 대해 느끼는 동질성의식-동포의식과 함께 자기 민족이 다른 민족과는 다르다는 차별성인식의 두 측면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같은 민족의식은 근대이래 정치사를 민족을 기본단위로 하여 경합하는 민족국가시대로 성격지은 기본동력이 되었거니와, 때에 따라서는 선민의식과 이민족적대감이 과도하여 숱한 전쟁과 인간말살의 참극을 결과하기도 하였다.   이 두 측면의 민족의식은 민족중심 세계관과 정치현실이 유지되는 한 반드시 있어야하는 필수요소라 할 수 있지만, 과도하게 되면 부작용이 초래되기도 한다.   가령 민족내적인 동질성인식이 과도하면 내부를 정의롭게 개혁하고 생산적으로 정비하는 일이 방해받을 수 있고, 대외적 차별인식이 과도하면 이민족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데로까지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민족정체성의 상실은 민족의 소멸로 이어진다.   성원들에게 공유된 민족의식이 약화-소멸되면 민족은 소멸된다.   또 민족의식의 약화-소멸은 고유문화나 민족의 외적 특성의 유지-계승여부와 밀접한 연결을 갖고 있다.   이 논문의 목적은 한민족공동체 형성에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는 민족정체성을 보전-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은 목표에 접근함에 있어서는 민족정체성의 유지-강화-소멸에 관여하는 일반요인들을 살피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이 요인들을 찾아야만 그를 보전하고 강화하는 방안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는 다양한 변수가 관여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인이 다를 것이다.   여기에서는 민족정체성과 고유문화의 유지-소멸에 관여하는 요인들을 다음의 5측면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로, 개인과 집단의 의도적인 계승의지와 노력의 유무이다.   민족사회의 차원에서 민족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체계적인 프로그램(민족교육)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민족정체성의 유지 여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민족정체성 제고를 위한 민족교육을 자기의 기능으로 삼고있는 기구나 주체가 있는지의 유무도 중요하다.   개인의 민족정체성 유지 여부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좌우되는 바 크겠지만, 개인에게 유지욕구가 있다 해도 민족집단 차원에서의 뒷밭침이 없다면 그것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익함이 있는지의 여부이다.   정체성에 대한 강조가 단순히 당위로만 부과되는 경우와 실질적 이익을 수반하는 경우를 비교하면 이 문제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의 이익은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비물질적인 보상일 수도 있다.   민족정체성의 유지-계승을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유인책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셋째로, 민족성원들이 자기민족과 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있는지의 여부이다.   자기민족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있는 경우와 자부심을 갖고있는 경우는 민족과 민족문화에 대한 애착심에서 차이가 클 것이다.   열등의식을 갖고있는 경우 자기문화를 지키고 민족의 일원으로 남고자 하는 의지가 형성되기보다는 시급히 그로부터 일탈하려는 마음이 생기기가 쉬울 것이다.   민족과 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해주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넷째로, 민족성원끼리 상호 소통하고 민족문화에 접촉할 수 있는 기회와 수단이 충분한지의 여부이다.   민족성원들이 서로 분산되어 살면서 소통이 원활치 못한 경우와 서로 밀접히 교류하면서 유대를 나누는 경우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민족정체성의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가 자명하다.   교통통신의 발달과 정보기술의 발전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고, 인테넷이라는 새로운 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다섯째로, 민족과 그 정체성유지노력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조건이 유리한지의 여부이다.   제국주의가 약소국을 침략해서 식민지의 민족정체성 회복노력을 감시하고 탄압하며 자국의 문화를 강요하는 환경 속에서는 민족정체성유지가 쉽지 않다.   소수민족에 대해 주류사회에의 동화만을 요구하는 조건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주의나 세계주의, 기타 다른 탈민족적 교설을 보급하는 세력이 민족내에 발언권이 큰 경우도 마찬가지 경우로 들 수 있을 것이다.                  



4. 지구촌 한민족의 민족정체성, 그 현실

     여기에서 살피고자 하는 것은 전세계 한민족사회에서 민족정체성문제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어떤 문제를 갖고있는지 하는지 하는 것을 살피는 일이다.   여기서는 한반도 바깥에서 살고있는 재외동포와 한반도 안쪽의 남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 생각해보겠다.
     우선 모국을 떠나 타국에서 정착한 재외동포들은 두가지의 과제를 안고 살게 된다.   하나는 현지사회에 적응하여 성공적으로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인-한민족으로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첫 번째의 과제는 주류사회에 동화하고 그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의식주의 생활을 유지해야 하고 직업과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현지사회와 교류하야 하고, 더구나 주류사회로 진입하려면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따라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한편 재외동포들은 후자의 과제와도 바로 부딪히게 된다.   현지사회에서 개인들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특정의 종족집단의 일원으로서 구별되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인종-다민족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외모에서부터 현지인들과 차이가 나는 아시아계 소수민족이기 때문에 사회적 구별-차별이 수반되기 마련이며, 그같은 환경속에서 개개인들은 반작용적으로 자기의 민족적 소속을 자각하게 되고, 자신의 한민족의 일원으로의 문화적 정체성이 불완전한 데 대해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재외동포사회에서의 민족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다종족사회에서의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려는 사회심리적 현상과 맞물려있다.   그러나 이민사회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기는 쉽지않은 일이다.   이민 초기의 가정의 경우 자기의 문화를 유지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할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고, 생활의 여유를 찾은 후에야 고향과 모국과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고유문화와 정체성을 보전하는 것이 현지사회에의 정착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소수민족에 대한 관용도가 미약하고 문화의 다원주의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이민자가 자기민족의 고유문화와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유지하기란 어렵다.   이민족의 특징을 노출시키는 것은 곧바로 차별을 유발하고 탄압으로까지 이어질 우려가 있다면 이민자로서는 자기정체성의 표출을 억제할 수밖에 없고, 그같은 상황이 일상화하면 고유의 문화나 정체성을 상실하는 지경으로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일본거주 동포나 중앙아시아거주 동포들이 모국어를 잊게된 데는 그같은 이유도 작용하였다고 생각된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있는 한민족 성원들이 얼마만큼 민족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조사한 연구는 적지 않게 나와있다.   이들 여러 조사연구의 보고내용 중 재외동포사회의 민족정체성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재외동포들 전반을 두고 볼 때, 스스로를 한인-한민족의 일원이라 생각하는 민족적 소속의식과 한민족에 대한 애착심은 세대를 초월해서 여전히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다.   그러나 물론 그 강도는 세대가 내려갈수록 약화되어 가는 것이 관찰된다.
     둘째로, 세대가 내려갈수록 현지사회로의 언어적.문화적 동화가 심화되어 가는 바, 비록 민족적 동일시와 민족적 애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언어-관습 등 고유문화가 세대를 이어갈수록 잊혀지고 있다.
     셋째로, 언어적 문화적 동화에 그치지 않고 혈연적으로도 혼혈이 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의식조사 결과에 의하면 타민족과의 결혼도 개의치 않는다는 응답의 비율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조사결과들은 재외동포사회에서 민족문화나 민족정체성이 위기상황에 처해있거나 점차 위태로운 지경으로 갈 것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4) 민족문화와 민족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가고 있다.   2세-3세-4세로 세대가 내려갈수록 한국어를 사용할 줄 아는 인구가 급감하고 있는데, 이같은 조사는 어떤 적극적인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는다면 한국어를 이용한 의사소통이 본국거주민과 재외동포들 사이에 점차 어려워질 것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다만 민족의 외적 정체성들이 약화되는 가운데서도 한인으로의 내면적 정체의식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는데, 이는 지금이라도 어떤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계기를 만든다면 잊혀진 민족특성들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상에서는 재외동포사회의 사정을 살펴보았는데, 한반도 안에 살고있는 한민족의 사정을 보면 적어도 민족정체성을 유지-발전시키는 과제에 관한 한 재외동포보다는 월씬 유리한 조건을 갖고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재외동포들처럼 두 개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도 없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하여 핍박받거나 눈치볼 이유도 없다.   한반도의 남과 북은 한민족공동체의 고향으로서 민족의 문화유산들을 보전하고 가공하여 미래를 위한 자산으로 제공해줄 의무가 있다.   또 재외동포들의 후견인으로서 정체성이 유지되도록 지원해주어야 하며 스스로 건강성을 확보하여 재외동포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남과 북의 민족정체성문제도 여러 가지 차원의 취약점이 찾아진다.    
     첫 번째로는 분단이 반세기이상 지속되면서 남북간의 문화적 이질화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 교류를 하지않고 서로를 적대하면서 서로와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물론 재외동포사회의 사정과 비교한다면 남과 북 사이의 이질화는 대수롭지 않게도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남과 북은 냉전시대 이래 재외동포사회까지 분열시키면서 통일적 정체성을 가로막아왔다.
     두 번째로, 남쪽의 경우 탈민족적 사조가 세력을 확장하고 외래문화가 유입되면서 전통적인 민족의식과 민족문화가 흔들리고 있지만, 아직 새 시대에 적합한 정체성은 형성되지 않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한민족을 하나로 묶어온 단군의 자손으로의 단일민족의식이 개인주의-세계주의-실증주의-서양숭배주의 같은 탈민족적 사조들이 우세해지면서 퇴조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단군민족론에 대한 도전이 커지고 있지만 그를 대체해서 민족을 구성해줄 수 있는 관념-상징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세 번째로, 북한의 경우는 오랫동안 사회주의 문화건설의 기치아래 민족문화유산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재단해왔지만, 19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민족고유의 문화유산들에 대해 훨씬 포용적인 입장에서 계승보전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특히 1993년에 [단군릉발굴보고]를 내놓은 이후에는 종래에는 부인하던 단군국조론을 적극 끌어들여서 남북한과 해내외의 동포 모두를 단군민족이라 지칭하면서 반만년 역사의 자긍심에 토대하여 단결할 것을 자주 촉구하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단군부활은 남한의 상황과는 대조적인데, 그러나 북한의 전통적 단군자손론으로의 회귀가 한민족공동체 차원의 민족동질성 제고과제에 얼마만큼이나 기여할지는 아직 미지수인 것 같다.    
     네 번째로, 남쪽사회 내부에 윤리부재-민족부재의 개인주의와 천민자본주의가 위세를 떨치면서 어려운 동포들을 착취하고 박해하는 비리가 자주 발생하면서 특히 한국인(남한)과 조선족(중국) 사이에 불신과 위화감이 커지고 있다.   남쪽 사회에 한민족공동체론 같은 민족주의적 담론이 새로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 내부의 주류로부터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재외동포법을 둘러싼 혼선은 남쪽이 좁은 '국가'를 넘어서 '민족'의 구심점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탈북자문제로 고민하는 북한의 사정은 더 취약한 것 같다.      
     전반적으로 보아 지구촌 한민족사회의 민족정체성에는 혼란과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앞 시기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지만 새롭게 모두를 통합할 정체성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지구촌 한민족 모두를 묶을 미래 비전은 아직 성안되지 않았고 어떠한 '우리'를 공유할 수 있고 공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아직 없다.   한민족공동체라는 새로운 어젠다가 요구되는 것은 이같은 사정과도 연관되어 있다.  



5. 한민족공동체의 민족정체성 형성방향

     이 장에서는 한민족공동체 결성과 관련하여 건강하고 응집력 강한 민족정체성을 형성-강화하는 과제에 임함에 있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과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다.   한민족공동체는 영토국가를 목표로 하지 않고 있고 그 구성원이 살고있는 지역적 범위는 전지구에 미치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국경안에 집거하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국가의 주도하에 동질적 정체성을 조성해갔던 익숙한 내용과 방식으로는 한민족공동체의 공동체의식과 민족정체성을 형성해갈 수 없다.   지구촌 범위의 한민족공동체 형성과제와 관련하여 민족정체성 정립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의 일반적 원칙이 먼저 고려돼야 하는 것 같다.
     첫째로, 한민족공동체의 민족정체성형성작업은 지구촌 수준에서 한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제에 기여할 수 있는 인적.문화적 인프라를 형성하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민족공동체가 미래에 한민족이 추구해가야 할 전략이자 비전으로서 제기되는 것인 만큼 그와 관련된 정체성형성작업도 당연히 미래지향적이어야 할 것이다.   한민족공동체는 세계화-지구화-정보화-문명경쟁-민족경쟁의 시대에 한민족이 생존-발전해갈 수 있는 전략으로서 제시되는 것인 만큼 그 정체성형성작업도 이같은 미래사회의 변화에 창조적으로 대응해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집단의 정체성은 그 집단이 과거에 공유했던 동질성에 토대해서 공동성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민족공동체의 '우리의식'은 과거의 위대성과 동질성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공동운명성과 활력을 창출해가는데 유념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한민족공동체의 구성원은 거주지와 국적 및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상태라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   한민족공동체는 구성원들이 갖고있는 다양한 국적을 그대로 두고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에 토대하여 초국가적 연대망을 이루려 하는 것이다.   특히 570만 재외동포는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현지사회와 문화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바, 한민족공동체의 민족정체성 형성작업이 이국땅에서 살고있는 동포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방해해서는 안된다.  한민족공동체의 민족정체성 내용을 남한이나 북한 또는 어느 일방의 주민들이 선호하거나 받아들이는 내용으로만 채워서는 안되며, 재외동포들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을 찾아야 한다.
     셋째로, 다른 민족과 외국인에 대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스스로가 속한 한민족에 대해서는 분명한 소속의식과 자긍심과 동포애를 견지하되, 그렇다고 하여 다른 민족에 대해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인 자세를 갖게해서는 안된다.   한민족공동체의 성원은 거주국의 국민이며 동시에 지구촌의 시민이어야 한다.   세계인이 수용하는 합리적 가치로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어야 하며, 자기의 단점에 대해서는 고치고 바로잡는 일에 소극적이어서는 안된다.
     넷째로, 한민족공동체 구성원의 자격은 스스로 공동체의 일원임을 동의하는 자와 한민족의 혈연을 나누어 가진 자의 두 기준을 모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전자의 규정은 혼혈이나 외국인까지도 본인의 참여의사 여하에 따라 한민족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공동체는 현실적으로는 한민족의 혈연을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중심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같은 현실을 거부하거나 어색해한다면 한민족공동체의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문제는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폐쇄적인 자세이며, 한민족이라는 혈연적 배경을 시인하는 것이 곧바로 배타적-폐쇄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민족공동체는 혈연적 동질성과 동포의식에 토대해서 같은 민족으로의 유대를 공고히 하며, 장차 문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나아가려는 지향을 가진다.
      이상에서는 민족정체성 문제에 접근해감에 있어 견지해야 할 우선적 원칙들에 대해 살폈는데, 이제는 '어떻게'라는 방법과 전략에 대해 논의할 차례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앞에서 들었던 민족정체성의 유지-소멸에 관여하는 여러 요인들이 제시해주는 바가 큰 것 같다.
     첫째로, 민족정체성을 형성-강화하는 사업으로의 민족교육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관심과 체계적인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   특히 한국민과 한국정부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야 한다.   우선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조사-연구-기획-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 어딘가에 존재해야 하며, 지원체제도 확충될 필요가 있다.   특히  재외동포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이 좀더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재외동포 대상의 민족교육에서는 한국어가 공동체 차원의 매개언어로 공유되도록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민족과 민족사-민족문화에 대한 지식과 교양도 보강되도록 다양한 방법의 수준별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둘째로, 민족정체성의 유지-강화를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유인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민족성원간의 교류협력활동, 특히 경제적 공동이익을 강화하고 권익을 보호하는 연대활동을 적극화하는 일은 민족정체성의 유지-계승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동포들간의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그리고 그 교류에 정보와 함께 현실적 이익이 수반된다면, 참여하는 이들은 한민족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될 것이며, 공동체의 고유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애착과 유지의지를 키울 것이다.   한민족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이익이 된다면 사람들은 자청해서 한민족공동체가 요구하는 정체성을 내면화시키려 할 것이다.   한국어를 한민족공동체의 매개언어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그를 사용하는 (사용해야 하는) 기회를 더 많이 마련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민족성원들이 자기민족과 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갖도록 유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긍심은 자기자신의 의의(정체성)를 긍정적으로 확신하면서 생겨나는 심리상태로서 한민족공동체를 결속시키고 활성화시키자면 성원들에게 이같은 정서를 형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자긍심은 실증과학이 장기로 삼는 객관화-일반화만으로는 성취되기 어려우며, 자기존재에 대한 실존적 긍정이 선행해야 한다.   이같은 요소의 형성을 위해서는 민족과 민족사-민족문화의 개성과 장점들을 알게 하는 각종의 교육활동이 필요하며, 올림픽이나 월드컵대회와 같은 행사를 활용하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넷째로 정보화혁명의 총아인 인터넷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획기적 매체로서, 관련기술의 발달과 함께 용도가 다양하게 발전해가고 있다.   그것은 한민족공동체를 글로벌 수준에서 의사소통과 정보교환이 가능하게끔 도와주고 있다.   인터넷은 특히 교육수단으로 유용성이 크며, 성원들간에 공동의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물론 인터넷이 제대로 활용될 수 있기 위해서는 동포사회에 컴퓨터와 그 사용기술이 보급돼야 한다.   그러나 조만간 취약지대에 거주하는 동포들도 인터넷문화에 동참할 것으로 보이는 바, 이를 활용할 다양한 민족정체성강화 프로그램을 개발해둘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다섯째로, 민족정체성 형성작업에는 전통시대에 한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통합기제로서 기능하였던 민족의식-민족인식과 상징들을 정비해서 활용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특히 단군의 자손-단일민족 관념은 장구한 민족사로부터 물려받은 버릴 수 없는 유산이라는 생각이다.   거기에는 오랜 기간동안 한민족이 경험해온 동질성과 공동운명 체험이 반영되어 있으며,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하고자 했던 집단여망이 수반되어 있다.   단군의 자손 단일민족론은 그 실증적 근거여하와 상관없이 오랫동안 한민족을 하나로 통합하는 상징이 되어왔으며, 사상과 계급.이해관계를 초월한 단결과 통일이 주창되는 곳에서는 항상 단일민족론이 그 당위성과 가능성의 근거로서 거론되어 왔었다.



6. 맺음말

     한민족공동체론은 동포애에 토대한 민족통합과 유대강화를 추구해왔던 한국민족주의의 기본관심의 연장선 위에서 출현한 아이디어이다.   한국민족주의가 20세기 전반기에 씨름해왔던 중심화두가 자주독립이고 후반기의 그것이 통일이었다면, 한민족공동체는 세계화시대-국경약화시대-정보화시대-탈냉전시대로 규정되는 21세기 시대상황 속에서 한국민족주의가 찾아낸 민족적 생존.발전전략이자 비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영토국가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향하는 것은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있는 한민족성원들을 같은 민족으로의 동질성과 동포의식에 토대하여 정서적으로 연대시키는 것이며, 나아가 그같은 연대에 토대하여 세계화시대에 공동대처하는 민족적 협조체제를 형성하고, 민족적 공동번영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구촌시대의 한민족공동체 형성 과제와 관련하여 민족정체성 문제를 논의하였다.   지구촌 한민족의 민족정체성이 처하고 있는 현황과 장차의 형성방향 및 과제들에 대해 살폈다.   한민족공동체는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한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한민족공동체의 성패는 구성원들이 공유한 민족정체성의 강도와 질의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보아 지구촌 한민족사회의 민족정체성에는 위기와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다.   570만 재외동포들의 경우 비록 민족어와 전통문화는 잊고 있다 해도 한민족으로의 소속의식과 애착심은 여전히 강하다는 것은 한민족공동체과제와 관련하여 하나의 가능성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세대가 내려갈수록 민족어를 모르고 민족의식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은, 더 늦기전에 어떤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재외동포들은 한민족 아닌 현지민족으로 동화될 것이라는 위기의 전망을 갖게 한다.   한민족공동체의 모국 역시 민족가치를 거부하는 소리들이 지식사회에 점차 강해지고 있는 점은 위기의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한민족공동체라는 새로운 민족적 화두를 찾아내어 새로운 모색과 실천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은 하나의 가능성이다.   지구촌에 거주하는 다양한 한민족 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그리하여 모두를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시킬 수 있는 민족정체성 내용을 채우는 작업이 시급하다 할 수 있다.    
     한민족공동체의 민족정체성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가지 더 언급할 것은 한민족공동체형성이라는 실천적 과제를 학문적으로 뒷받침해주는 학문분과로서 [한민족공동체학]을 정립할 필요성에 대한 것이다.   이 한민족공동체학은 지구촌에 흩어져 살고있는 한민족성원들의 삶의 현실과 역사 및 고민들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한민족공동체를 형성-발전시킬 전략과 비전을 모색하는 문제에 관계되는 다양한 주제들을 연구대상으로 한다.   전략을 세우고 정책을 모색함에 있어서는 한민족의 활동무대로의 지구촌 곳곳의 정세와 환경에 대한 분석과 다른 나라의 재외동포정책들이 참고자료로 제공돼야하는 바, 그같은 기초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것도 이 학문이 다룰 주제이다.   민족정체성 정립과 민족교육사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자료와 기법을 연구-개발하는 것도 한민족공동체학의 관심사가 돼야 할 것이다.   좀더 범위를 넒히면 국민통합이나 남북통일에 관련된 주제들도 한민족공동체학의 하위주제로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민족공동체학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정책.법률.인류학.역사.사상.예술 등 여러 분야의 학제적 공동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이 학문분야의 정립필요성이 동의된다면 그를 위한 학자들의 모임도 필요할 것이고 이런 주제를 전담하는 연구기관도 필요할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생산적 논의도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이 논문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2002년도 연구과제로 수행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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