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적 순정함 그리고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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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 순정함 그리고 신비
  • 손인식
  • 승인 2005.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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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재 인니 한국부인회 총회 참관기-

글 : 손 인식(서예가, 시인) E-mail : sonis419@hanmail.net

생동하는 존재의 분출
뭐라고 할까? 한참을 궁리해도 명료하게 표현할 썩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다. 2005년 재 인니 한국부인회 정기총회(2005년 5월 16일 포 시즌 호텔 그랜드 볼룸)를 한마디로 시원스럽게 대변할 수 있는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땐 겸양지사(謙讓之辭)로 필자의 어휘력이나 글쓰기 능력 부족을 밝혀야 하는데 그럴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그것은 전적으로 한 마디의 말과 글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다양했던 행사의 내용 탓이자 이를 준비하고 치러낸 재 인니 한국부인회와 참여한 여성들의 파워풀함 탓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필자는 그야말로 참가자격이 없는 남자였다. 부인회에서 운영하는 취미반 서예 강사로서 총회의 일환으로 열리는 서예전시를 그저 조금 관장해주면 될 뿐인 사람이었다, 출연을 위한 두 사람의 남자를 재외하면 그야말로 낄 이유가 없는 객석에 앉은 500여 명 중 단 한 사람의 남자였다. 아! 이런 멋쩍음이라니. 물론 단 한 사람의 남자관객이었다는 이유로 그 행사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으려는 것이 아님을 다 아실 줄 안다.

필자는 사실 우연히 행사 전야 리허설을 잠시 참관하면서 행사가 만만찮을 것임을 예감 했었다. 그러나 한인교민의 문화적 요소라면 작심하고 그 실체를 드러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필자로서도 부인회 총회에서 그런 문화적 요소가 폭발적으로 분출되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왕 참석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관전이나 하려던 필자의 손에 어느 사이 펜이 들려진 것은 1부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정숙함과 변화무쌍함 그리고 도발성을 믹스해 충격타를 가하는 그 순간들을 기록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자리를 뜨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개회에 이은 채영애회장의 인사 및 임원 소개는 흔히 가질 수 있는 새 집행진에 대한 믿음과 기대라고 하자. 구임원에 대한 감사패 전달의 순서 또한 잔잔한 조화와 화합의 장으로만 기억하자. 사업보고, 활동보고, 밀알학교에 관한보고 등 부인회 운영내용 실체에는 어설픈 찬사를 하지 말고 단체의 정체성쯤으로 기억해두자.

그러는 중에도 감동은 숙성되고 있었을까? “애국가를 부르면서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한 김명희(주 인니 한국대사 부인)고문의 격려사 한 대목은 다가올 감동의 예견이었단 말인가? 숨소리를 멈추게 할 듯하다가 툭 터버린 천길 심연의 소리 소프라노 이경자선생의 축가가 보란 듯 좌중을 감동의 산마루에다 단숨에 올려다 놓아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기록에서 미사여구를 쓰지 않고자 한다. 행사의 진수를 흐리지 않기 위해서다. 철학적 가치 어쩌고 들먹거려 모든 출연자와 부인회 임원 모두가 혼신을 다해 스스로의 심장 안에 생동하던 존재성을 카리스마 넘치게 분출하던 그 광경을 호도하지 않으려 한다.

순정하게 도발적이게 그리고 신비스럽게
감정의 고조에는 시간이 필요했고 시간은 자연의 이치로 허기를 불러오던가. 포만했던 중식의 즐거움이 조금 수그러들 무렵 2부가 이어졌다. 배종문 연주인동호회 회장과 뮤직아카데미의 고관복선생의 색소폰 연주의 무게와 감미로움, 유지영선생의 지휘와 박경수음협회장의 반주로 진행된 넓고 청아한 라 뮤즈 합창단의 음악이 봇물처럼 도도하고 정숙하게 흐르고 흘렀다.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얼마나 떠내려갔을까. 나긋나긋 분위기를 이끈 2부 진행자 양명자씨의 멘트가 음악 따라 고고히 흐르던 실내의 분위기를 돌연 술렁이게 했다. 폭발음처럼 음악이 터져 나왔다. 이날의 상징으로 기억될 패션쇼가 시작된 것이다. 심인경씨를 비롯한 15명의 선녀들이 아이마스크에 바띡 자락을 하늘거리며 객석을 침투하기 시작했다.

순정한가하면 뇌쇄적이고 도발적인가 하면 신비스러움에 객석은 점령당해야 했다. 그리고 도저히 손을 내밀 수 없는 위엄으로 여운을 남기고 무대 뒤로 감아들기를 반복하는 그들을 우러러야 했다. 그래 이 나라의 상징 중의 하나가 바띡이었지. 그리고 사계절이 없는 나라였지. 전문가적인 절묘한 컨셉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들은 사뿐한가 하면 발랄한, 찰랑찰랑한가하면 탄력 있고 우아한 걸음걸음에 사계절을 담아내었다, 그랬다. 그들은 배경 음악, 액세서리, 몸짓 하나에 이르기까지 일어남의 봄을 담고 무성함의 여름, 찬란한 결실의 가을, 내함의 겨울이 지닌 특징들을 몸짓과 표정에 담아 진지하게 토해내었다.

어제와 내일은 바로 객석에 앉은 여늬 부인들과 다름없이 한 가정의 현모양처인 그들이, 더러 따분할 수 있는 인니 생활의 현실 안에 이상이 지닌 격조와 탄력을 들여다 무한으로 발산하는 그 모습을 그냥 숭고함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니라.

또 이어졌다. 가수 못지않은 제스처와 가창력의 Jenny(송정숙)씨의 노래, 열대나라의 느슨함을 통통 튕겨 몰아내준 유지영선생의 Sing along의 순서, 한 때를 풍미한 가수 이명자 부인회 고문의 노래는 객석의 부인들을 어느 중진가수의 감격의 콘서트 장으로 몰아넣어 버리고 말던가. 하여 감동의 물결에 묻혀버린 폐회인사를 누구라서 탓하랴. 김영애 부회장과 1부 진행을 한 이상미부회장, 위경순, 이경선, 유은영총무, 이민희회계, 허미화서기 등 임원 및 도우미들에게 박수치기를 잊은들 또 누구를 탓할 것인가.

4시간여의 막이 내렸다. 궁체 정자의 단아함 같았고, 고운자태의 율동으로 흘러내리는 궁체 흘림 같았던, 탄력으로 휘감기는 진흘림체 같았던, 텁텁한 훈민정음체 같았던, 느림과 빠름을 넘나드는 행초서의 붓사위 같았고 산조의 화려한 운율 같았던, 멋과 격조를 갖춘 그런 작품 한 점 떠억 하니 자카르타 시공과 참석자 모두의 가슴에 새기고는 막을 내린 것이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여성들
이제 떠올랐다. 진부하고 진부한 말일지라도 가장 적절할 것 같은 말, 바로 그들은 ‘자랑스러운 한국의 여성들’이었다. 내재된 멋과 힘, 끼를 한껏 발산한 그들은 정말 자랑스러운 한국의 여성이요 아내요 엄마들이었다. 더러는 예술적이어서 더러는 아마추어적이어서 더욱 좋았던, 단순히 한국부인회 행사로만 묻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행사였다.

골프를 잘 하고 활을 잘 쏘는가 하면 탁구, 유도등 격렬한 운동에 이르기까지 더러 남자들의 아성을 능가하는 한국의 여성들, 노래를 잘하고 악기를 잘 다루는 속된 말로 판을 벌이고 무대에 올리면 못할 것도 거칠 것도 없는 한국 여성들, 그래서 필자는 감히 요구하고 싶다. 한국여성들이여! 아니 인니의 한국부인들이여! 부디 겸손하지 마시라.

이 다이내믹한 힘의 분출을 한국의 남성들에게도 타국의 부인들에게도 보여주시라. 크고 작은 협찬 상품이 무려 300여점을 헤아리지 않았던가. 함께 어울려 감동도 하고 추첨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환호와 안타까움의 탄성도 함께하자. 준비를 그 정도 할 것이라면 초청의 폭을 넓히고 홍보도 더하자. 그 힘이 재고할 한국인의 이미지와 그로 인한 경제적 가치는 또한 얼마이겠는가.
모두에게 오래두고 새겨질 5월의 갈색추억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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