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의 희망, 밖에서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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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의 희망, 밖에서 찾아라
  • 신근수
  • 승인 2005.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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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사는 교포의 눈과 가슴으로 볼 때, 한국은 희망과 절망의 땅이다. 한국을 떠난지 30년이 넘는 한국인의 눈으로 볼 때는 더 그렇다.

지구상에서 한국인처럼 잘 생겼고, 그와 함께 못 생긴 나라도 또 없다. 동포의 눈으로 볼 때, 한국은 축복 받은 땅이며, 다른 한편 그 반대이기도 하다. 기특한 면이 있는가 하면, 괘씸한 면도 함께 한다.

해외에서는 매일 인터넷으로 한국의 빅뉴스들을 훑어보며 떠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게 되는데, 히딩크처럼 불끈 주먹을 쥐며 보람을 느끼거나, ‘세상에 이럴 수갉’ 하며 섭섭한 경우가 발생한다.

일간지를 통하여 한국을 보면, 확실히 한국은 문제가 많은 나라이다.
이는 개그맨 세계로부터 출발하여, 고려대 총학생회,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집단을 망라한다. ‘우째 이런 일…’이 다반사로 분초 단위로 터지는 나라가 바로 오늘의 한국 현실이다. 그속에서 한국인들은 억대 단위 내기 골프를 치고, 이를 위한 판결이 솔로몬의 결정처럼 유죄·무죄로 엇갈린다.


희망적인 것은, 따로 강조할 필요도 없이 황우석 교수 팀과 박지성·이영표 선수 등이다.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의지의 한국인 집단이다. 한국 안에서 내일의 희망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찾은 것 또한 두 집단의 공통점이다.

내일의 한반도는 어떤 방향으로 좌표를 삼을 것인가? 결론은, 너무나 간단하다. 한국의 희망은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 해외는 바깥 세상, 세계를 의미한다. 이것이 한반도 사는 한국인들의 절체절명의 운명이고, 숙명이다.

그러나 과연 이와 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인식하는 한반도 안의 한국인이 얼마나 될 것인가?
고개가 갸우뚱하여지는 대목이다.

미국·일본에 1백만에 이르는 한국인들이 100년이 넘는 과거부터 진을 치고 있고, 남미에만도 성취욕 넘치는 한국인이 브라질·아르헨티나에 수 만명씩에 이르고 있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재일 한국인 2세·3세들을 만나보아도 이 분들의 한국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피는 물보다 더 진한 것이 아니라, 피는 음식 같이 찐뜩하다. 한국인 이외에 한국식 김치찌개를 즐겨 먹는 민족을 다른 나라에서 만나본 적이 없다. 신기한 것은, 동포 3세 이하로 내려가도 이 분들은 김치찌개 즐겨먹기와 애오라지 조국 사랑에 굶주린 분들이라는 점이다.

한국인의 자손으로, 한국인의 동포로서, 한국인의 피를 나누고 있음이 좀 더 민주적이고,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좀 더 세계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원칙이 황우석 교수, 박지성, 이영표 선수에게서 배워야 할 점들이다. 태고로 한국인은 외부인에게 친절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몽고인들의 전통을 들먹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인들이 한국인에게 인색하고 한국인 교포, 그리고 2·3세들에게 인색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각종 통계는 오늘의 한국을 지구상의 국가중 20~30위 정도로 매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인색한 것은, 아직 덜 잘 살아서인가? 또는 너무 잘 살아서인가?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 연방 나라들에 흩어져 살고 있는 수십만명의 한국인들 또한 내일의 한국을 위한 보석이자 보물이 아니고 또 무엇인가. 동포신문 기사들의 행간을 보면, 이 진실이 한 눈에 깨달아진다.

한국의 희망은 한국 밖, 세계를 상징하는 해외에 숨겨진 금광처럼 존재한다.
일본이 이 자산들을 활용한 과거가 있고, 중국이 똑같거나 더 맹렬하게 이용하려는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인으로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세계인들과 사는 한국인들을 110% 활용하는 날, 내일의 한국이 희망의 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hotelmoulin@wanad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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