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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려인 무너지는 성씨 .혈통
양원식  |  jhnam51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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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06.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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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대사전에는 성(姓)이라는 낱말을 ‘한 혈통을 잇는 겨레붙이의 칭호. 대대로 이어내려 한 겨레와 다른 겨레가 구별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구소련 고려인들의 성이 러시아식으로 변하면서 민족성 보존과 혈통이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 러시아 동포사회의 미래에 적지 않은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 알파벳에는 어, 여, 외, 왜, 애, 얘, ‘ㅇ’받침 등 모음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글자가 없다. 때문에 망명한인들의 성을 그들의 신분증명서에 러시아어로 적어넣을 때 발음상 왜곡된 별의별 성이 다 생겼다.

강씨는 姜(진주), 康(신천), 彊(진주), 强(충주)씨 등 발음은 같으나 각각 다른 성들이지만 러시아문자로는 모두 ‘깐’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니 한문을 모르고 본을 모르는 현대 고려인들은 ‘깐’씨는 다 동성, 종친으로 알고 있다. 魯(노)씨, 路(노)씨도 역시 둘다 ‘노가이’로 표기되어 있다.

李(이)씨는 여기에서는 ‘리’, ‘니’, ‘니가이’, ‘니-리’, ‘이’로 표기되어 있는데 같은 李씨들이지만 서로 다른 성으로 알고 있다.

차씨, 천씨, 채씨, 최씨의 러시아식 표기가 아주 흥미있다. 차, 채, 최는 ‘짜’, ‘짜이’, ‘츠하이’, ‘초이’, ‘쪼이’등으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세가지 성이 정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최씨도 ‘츠하이’, 채씨도 ‘츠하이’로 표기되어 있고 차씨, 채씨도 ‘짜가이’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태씨는 ‘트하이’, 허씨는 ‘헤가이’, 홍씨는 ‘혼’, 황씨는 ‘환’으로 각각 표기되어 있다.

위의 실례들에서 ‘가이’라는 접미사가 붙은 성들이 많은데 유래가 재미있다. 러시아땅에 들어서자 신분증명서를 만들 때 러시아인이 성을 물어보니 예를 들어 ‘허가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김가, 박가, 최가 등 ‘갗를 함경도 방언으로는 가이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시아어로 ‘허’를 표기할 수 없기 때문에 ‘헤가이’로 적으면서 헤가이, 니가이 등의 성이 생긴 것이다.

어떤 망명 한인들은 러시아성으로 바꾼 사람들도 있다. 그런 성이 치꼬바니, 뚜루힌, 쎄레브랴꼬브 등이다. 자그배(혼혈아)들중 많은 사람들은 어머니가 타민족인데도 어머니의 성을 가지기도 했다.

비교적 정확하게 표기된 성은 김, 안, 윤, 마(마가이)등 불과 몇 개 안된다.
한국 사람들은 동성동본, 종친을 정확히 구별할 줄 알지만 구소련에서는 그렇지 않다. 성명과 본을 정확하게 알고 있던 제1세는 거의 남지 않았고 70세 안팎의 제2세마저도 성과 본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제3세, 제4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가지 기특한 사실은 여기 구소련에서도 아직은 어느 집에서 초상이 나면 반드시 한문으로 쓴 명정과 함께 장례를 지내는 전통이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자신들은 명정을 쓸 줄 모르기 때문에 한문으로 쓸 줄 아는 사람을 찾아가 써온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러시아식 표기의 성밖엔 모르고 본을 알고 있는 사람도 비례수로 따지면 10%정도이다.

자기 원래의 성을 한글로나마 정확히 적을 줄도 모르고 발음상 많이 왜곡된 러시아식 표기의 성만 알고 있는 현세대 고려인들의 혈통은 어떻게 앞으로 이어질 것이고 한 겨레와 다른 겨레가 어떻게 구별될 것인가? 그러니 구소련 고려인들은 앞으로는 동성동본 금혼 전통도 없어질 것이고 친척이라는 개념이 갈수록 희박해질 것이다.

친척관념은 어느 민족이나 다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이 2~4세, 그 이하 세대 고려인들과 모국 즉 한국과 북조선 친척들과의 관계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글 교육자들은 한글만이 아니라 혈통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교육 사업도 겸해야 할 것이다. 모국어를 잊어버리는 것도 안타까운데 왜곡된 성, 뿌리까지 잃어버릴 수 있는 러시아식 성도 동포들의 민족 정체성을 잃게 하는 요인이 아닐수 없다.
jhnam51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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