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복룡駐佛한국대사관 영사‘영사일기’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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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복룡駐佛한국대사관 영사‘영사일기’펴내
  • 조선일보
  • 승인 2003.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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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주복룡駐佛한국대사관 영사‘영사일기’펴내 ?(2003.04.23)

▲ 멀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서 있는 주복룡 주불영사.


“해외 주재 한국 영사관의 영사 업무는, 일간지 지면으로 치면 사회면입니다. 온갖 잡스러운 사건이 벌어지고, 그런 만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들락거리면서, 또한 남다른 인연도 쌓는 것이죠.”

주불 한국 대사관의 주복룡 (周福龍·46) 참사관 겸 영사가 최근 비매품으로 책 ‘영사 일기’를 펴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의 동사무소와 경찰·법원을 합친 것과 같은 일을 감당해야 하는 해외 주재 영사의 업무 일지를 ‘소설가 지망생’답게 다듬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비매품 1000부 한정판이다. 지난 2000년부터 영사로 재직 중인 그는 “프랑스의 파리라고 하면, 유럽 여행의 첫 번째 관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불미스러운 일로 저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문제는 제가 그분들이 원하는 만큼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정신병자로 판정된 여행객을 비행기에 태우느라고 씨름하던 중에, 또 다른 여권문제로 수용소에 갇힌 여성 관광객으로부터 “대한민국 정부는 무엇을 하느냐고”는 내용의 심한 욕을 휴대전화기로 들어야 했고, 프랑스 외인부대 지망생들이 치는 사고와 국제 결혼, 조기유학생 부모들의 고충을 처리해야 했던 일들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그가 책을 펴낸 데는 잡다한 업무의 일화 못지않게 남 다른 사연도 있다. 그는 지난해 만성신부전증을 앓던 아내와 파리에서 사별했다. 그는 숨진 아내의 유언에 따라 장기를 기증하기 전에 병상에서 오랜 입맞춤으로 주위의 눈시울을 적셨고, 프랑스 의료진은 숙연하게 그 부부의 이별식을 지켜봤다. 그는 파리의 페르라세즈 묘지에서 화장으로 장례식을 치르면서 조위금을 거부했다. “아내의 장례식에 와주신 분들에 대한 인사의 표시로 이 책을 돌릴 것이고, 길을 떠난 아내에게 한 권의 책을 바치고 싶었다”는 주 영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주 영사는 해마다 여름철이면 더 바빠진다. ‘한여름 철의 손님들’로 불리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파리에서 당하는 도난사건과 관련해서 밤중에 경찰서에 불려 나가기 일쑤일 뿐 아니라, 여행객들이 흘리거나 도난당한 여권의 뒤처리까지 도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해외유학 중 급사한 유학생의 장례 처리를 담당할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한국에서 급히 달려온 유족들은 할 말이 많다. 반면, 프랑스의 담당관리는 별로 말이 없는 가운데, 그 사이에서 통역을 맡아야 하는 그의 언어는 공중에 떠야 한다. 그는 반신불수 상태까지 빠진 병중의 아내를 보면서, 한밤중에도 속절없이 흐르는 센 강 바라보기를 유일한 위안으로 삼았다.

“제가 쓴 책이 빡빡한 공무원의 일지라고 보는 분들도 있지만, 제가 이곳에서 일하면서 느낀 그대로를 한국의 공무원으로서 바라본 사람살이의 기록이자, 화장터 굴뚝의 한줄기 푸른 연기로 사라진 아내에게 바치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봐주기 바랍니다”

바쁜 영사업무를 보는 와중에 책을 서둘러 낸 것은 먼저 떠난 아내에 대한 애틋함이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인 듯했다.

(파리=朴海鉉특파원 hhpark@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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