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쉬아보씨와 이평신씨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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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쉬아보씨와 이평신씨의 죽음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05.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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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1년 다이어트 후유증으로 뇌손상을 당해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오던 플로리다의 테리 쉬아보씨가 3월31일 끝내 숨졌다. 쉬아보씨는 죽었지만 그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인간의 죽을 권리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논쟁이 새삼 재연되고 있다.

쉬아보씨의 사망소식을 접하면서 10년 전 안타까운 기억이 되살아났다. 남편의 품에 안겨 희미한 의식마저 놓아야 했던 쉬아보씨에 대한 생명의 존엄성도 그렇지만 10년 전, 1995년, 이곳 시카고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한인 이평신씨(제이슨 리씨)가 떠올라서였다. 당시 50대 중반으로 불법체류 신분인 초로의 이평신씨는 시카고 한인업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어쩌면 예고된 뇌출혈로 쓰러져 영영 깨어나지 못할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같은 해 6월 초순. 제보를 받고 달려간 병원에서는 이씨를 찾아오는 가족이나 친인척도 없다고 했다. 이민사회에서 한두 군데 적을 두었을 법한 교회나 사찰도 다녀보지를 않았는지 이씨를 찾아오는 사람은 이씨의 룸메이트 등 불과 서너 명에 불과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며 의료진은 이씨의 회복에 자신감을 보였다. 여러 개의 호스에 의지해 병실에 누워 있는 이씨의 모습은 마치 실험용 인간 같았다.

김씨 등 이웃들은 이씨가 한국에서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꿈을 지펴보겠노라며 젖도 안 뗀 딸아이와 아내를 두고 단신 미국으로 건너온 뒤 25년을 불법체류 신분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그러던 두 달 뒤 병원이라며 한 여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 여성은 이씨의 상태가 좋아져서 너싱 홈(Nursing Home, 양로원 또는 치료재활원)으로 옮기게 될 것이라고 일러줬다. 그러면서 가족을 찾고 있는데 쉽지 않다며 알고 있는 대로 얘기를 해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네 왔지만 내가 얘기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이평신씨가 병원으로 옮겨져 약 3개월 동안 치료를 받는 동안 투입된 병원비만도 이미 1백만 달러가 넘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병원 측이 병원비를 감당할 가족을 찾아나서는 것도 무리는 아닐 성싶었다. 한편으론 병원이 고마웠고 돈보다 인명을 우선하는 미국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병원의 이런 사정이 알려지면서 이를 눈치 챈 이씨의 이웃들마저 병원방문 발길을 끊었다.

인디언 서머로 늦더위와 함께 잔뜩 독이 오른 모기떼가 기승을 부리던 날. 이씨가 너싱홈으로 옮긴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이씨가 혼수상태여서 인공호스를 제거하게 될 것이라는 병원의 통보가 날아왔다. 순간 혼란스러웠다. 이웃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별 대책 없이 헤어져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인공호스를 제거했다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충혈 된 흰자위에 물기로 그렁그렁한 커다란 이씨의 두 눈망울과 인공호스를 제거하는 동안 죽음의 공포에 두려워했을 이씨의 두 눈이 한동안 내 목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혼수상태로 빠졌던 것일까. 한인회나 총영사관등 관계 한인 기관단체들은 한 개인의 사태에 공공기관이 나설 수 없다는 원론만 내세웠다.

이씨의 사망은 당시 시카고 한인사회에 좌절감을 안겨줬다. 별도의 성금모금도 않았는데 곳곳에서 뜻있는 한인들의 성금이 답지해 이틀새 4,700달러가 모아졌다. 이씨의 장례식은 쓸쓸하기만 했던 병실의 모습과 달리 200~300 명의 조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수됐다. 이날 장례식엔 이씨의 아내와 위장결혼 상대였던 여성도 참석했다. 장례식에서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던 이씨의 아내는 끝내 오열하며 실신하고 말았다. 극적인 반전 없이 이씨는 끝내 그렇게 떠났다.

사람은 한번 오고 한번 가면 그만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선 쉬아보씨나 이평신씨의 죽음은 비슷한 데가 많다. 하지만 기억하는 방법에서의 차이는 너무 크다. 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씨의 죽음을 놓고 ‘인명’운운 하는 메아리조차 없다.

한 명 희 (전 시카고 한미TV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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