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이곳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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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이곳에도
  • 코리아나 뉴스
  • 승인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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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와 헤브론
영상은 소송에 가장 먼저
헌금을 낭비치 말라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치 못해 고전하고 있는가 하면미·영연합국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헤브론'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한인타운의 「헤브론교회」의 분쟁은 이제 교회측이 원고가 되어 TRO 신청 등을 하는 등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은혜로운 예배분위기 조성과 방송선교 목적으로 교회 내에 녹화시설을 설치하였으나 이는 소송에 가장 먼저 사용되어 교인감시용이란 말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또한 여러 교인들이 법원에 제출한 증언서(Declaration)도 모두 조작되었다며 피고측은 조목조목 설명을 했다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며 최선을 다해 내는 헌금은 바람직한 곳에 가치 있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자를 돕거나 전도를 하는 일이 아닌 소모적 분쟁이나 감정싸움에 낭비된다면 교인은 물론 하나님이 먼저 분노할 것이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자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여 빠른 시간 내에 평정되리라 믿었던 전쟁이 예상외로 부진하고 있다. 이라크의 '모래태풍'이란 자연적 방해요인과 군인들의 격렬 저항, 자살공격 그리고 뜨거워지는 기후로 인해 수도 바그다드 함락은 지지부진 한 채 장기전으로 돌입할 전망이다.
이곳 한인타운도 비록 살상은 없었지만 한치의 양보가 없는 전쟁(?)이 장기전에 돌입한 상태에 있다. 바로 「헤브론장로교회」의 분쟁이다.
중동지역의 '헤브론'이란 도시도 이미 팔레스타인의 자치지역이라 분쟁의 조짐이 많다. 그 이름 탓인지 작년부터 본보 209호(9월 30일자 헤브론교회의 갈등), 210호(10월 14일자 쿼바디스 헤브론교회) 그리고 224호(2003년 2월 3일자 교회? 아니면 요새(要塞))로 보도해온 분쟁은 이제 교회측에서 원고측에 TRO(Temporary Restraining Order)를 신청하는 등 교회측이 원고의 위치에 서게 됨으로서 더욱 점입가경의 상태로 가고 있다.
그동안 본보가 보도를 하면 이름은 밝히지 않고 교회의 집사와 권사라고 직분만 밝히는 분들이 전화를 걸어와 욕설을 하고 사실을 왜 정확하게 보도하지 않느냐고 항의를 해왔다. 그러나 어느 부분이 사실이 아니냐고 물으면 명확하게 대답을 하지 않고 소리만 질렀다.
본보는 교회측에도 매번 공문을 보내거나 전화로 사실여부를 직접 취재를 하였으나 명확한 답변을 거부한 것은 오히려 교회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이 발행되고 나면 마치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처럼 오해를 하곤 한다. 전화를 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잘 알아보고 대응을 해주길 바란다.
또 교회측에서 본보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면 언제라도 정확하게 지적해 주길 바란다. 정당한 자료와 변론이면 가감 없이 게재될 것이다.
<편집자 주>

◎ 교회출입을 하지 말게 해달라
「헤브론장로교회」는 지난 3월 10일과 14일 두번에 걸쳐 교인 제임스 안을 상대로 교회접근 가처분금지명령 소송을 제기했다.
내용은 제임스 안의 예배시간 태도가 예배를 방해하니 출입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예배방해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수요일 새벽기도와 일요일 예배시간 도중에 강영석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는데 크게 "아멘"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멘"은 시도 때도 없이 하기에 이는 교인들이 흔히 말씀에 대한 감동으로 하는 응답이 아닌 명백하게 예배를 방해할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방해행위에 대해 강 목사와 다른 교인이 저지해 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예배시간 도중에 계속하여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데 이 역시 설교와 예배에 큰 방해가 된다는 내용이다.
교회측은 제임스 안의 이런 행위에 대해 여러 교인들의 증언(Declaration)을 첨부하여 법원에 제출하였다. 증언한 내용들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종합적으로 간추려 보면 제임스 안의 일련의 행위는 예배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고 어떤 교인은 제임스 안이 집으로 전화를 해서 이 장로와 조 장로 또 강 목사에게 욕설을 했다는 증언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교인마다 자신이 느낀 점을 자세히 적어 증언의 형태로 법정에 제출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제임스 안측은 그 증언자체가 이미 엉터리이며 조작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교인들이 증언한 증언서 마다 조목조목 틀린 점을 지적하고 있어 진실여부도 다시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만약 교인들이 목사의 지시나 부탁을 받고 그냥 서명만 한 것이라면 이는 강 목사가 거짓증언을 교사한 일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고 교인들이 자의적으로 진술과 서명을 했다고 하면 제임스 안측과 서로 상이한 점을 대조하여 사실여부를 가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번 교회측의 소송제기는 일단 법원에서 두차례 다 기각되었다. 즉 제임스 안은 교회에 계속 출석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온 것과 같다.

◎ 증언서의 진실여부
우선 법원에 제출된 교인들의 증언서(Declaration)에 대한 양측의 주장을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강 목사의 증언은 "은혜로운 예배분위기 조성과 방송선교 목적으로 주일 예배 실황을 녹화하기로 당회에서 결의하였습니다." (6/30/02, 07/07/02 주보 참조) 로 되어 있다.
제임스 안측에서는 "예배를 녹화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주보에도 그렇게 공고를 하였더군요. 제가 가진 주보 2002년 6월 30일자, 또 7월 7일자 두번입니다. 그러나 기도실, 복도, 식당 등에도 녹화시설을 한다는 내용은 없었으며 이곳에도 설치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손을 대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강 목사를 반대하는 여러분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교시간에 그런 광고를 하였지요. 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누가 담당자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없었거든요. 이런 광고도 그냥
예배시간에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고 저희들이 질의를 하면 예배방해라고 하니 도대체 말이 됩니까? 또한 증언서엔 강 목사가 제임스 안에게 개인적으로 예배 도중에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그런 적도 전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거짓말이지요. 목회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해선 안되지요. 그리고 강화미 사모가 제임스 안 때문에 교인들이 거의 교회를 떠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임이에, 박봉주, 홍숙자는 현재도 교회 멤버입니다. 그 다음 김주 권사의 증언을 보십시오. 2003년 2월 13일에 서명한 증언서를 보면 제임스 안이 주일 교회에 오면  강 목사의 바로 맞은 편 예배의자 첫줄에 앉아 "아멘" 소리도 지르고 당회 감시를 한다고 하는데 실제 그 분은 현재 6개월 이상 교회 출석치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헤브론교회법에 따르면 이미 헤브론교회 교인이 아닌 셈이지요. 교인이 아닌 사람이 증언을 하는 것도 이상하거니와 이렇게 교회법이 고무줄처럼 운용되는 것도 우습지요. 또 Jum Nam Lee 씨의 2차 증언에 보면 제임스 안의 예배방해 행위가 2003년도에 들어와서도 새벽예배, 수요예배, 주일예배에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론 이 분은 1월 이후 새벽예배와 수요예배는 한번도 출석치 않고 있었는데 어찌 그런 사실을 아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니 어떤 힘의 사주로 볼 수밖에 없지요. Ki Soon Wi 씨도 새벽기도엔 한번도 나오지 않았고요. In Ja Kang, Heather Kim, In Soo Kim & In Suk Kim, Peter Chu 모두 마찬가지로 1월 이후 새벽기도와 수요예배는 참석치 않고 이렇게 증언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미 양심을 던져버린 것 아닙니까? 또 교인들이 일부러 자진하여 증언을 하였겠습니까? 강 목사는 왜 자신의 문제를 교인들에게 확산시키고 있는지 그것도 모르겠어요. 이미 저희들이 교회재정의 불투명성과 행정적인 불합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그렇게 쉽게 물러날 일이 아닙니다. 교회 내에서 사랑과 은혜가 증발한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반목과 질시만 조장되는 가운데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강 목사가 교인들을 경찰서에 자신을 구타했다느니 일을 방해했다느니 하며 두번씩이나 직접 리포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에서도 모두 기각되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5장 39절과 40절에도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왼편 뺨을 돌려대기는커녕 거짓으로 구타를 당했다고 경찰에 보고를 한다면 이건 너무 성경과는 다른 것 아닙니까? 다른 교인들이 보고 분해서 경찰에 달려가도 말려야 할 사람이 목사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그러는지 직접 달려가고 있습니다."라며 자세한 설명을 하였다.

◎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체재
교회는 한주간 세상에서 알게 모르게 저지른 죄를 회개하고 또 홍진의 때를 씻으러 가는 곳이다. 절대 주권자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영(靈)적으로 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자신이 미처 하지 못하는 이 사회에 대한 의무, 이웃에 대한 봉사, 가난하고 소외된 자에 대한 보살핌 등을 교회라는 작은 세계를 통해 실현하는 것이다.
무릇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에 한 개인이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또 여러 가지 다른 제약으로 인해 못 다하는 이런 책무를 조직을 통해 실현한다면 그만큼 살아가는 보람도 느낄 수 있다. 실제 그런 일들을 실천하는 것이 믿는 자들이 해야할 일들이요 교회의 사명이다.
그러나 「헤브론장로교회」는 이런 교회의 사명에서 너무 멀어져 있다. 이웃을 보살피고 소외된 자에 대한 관심을 갖기보다는 출석한 교인들끼리 교회측과 반대측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피기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법원에 제출된 〈Affidavit Of Support(Video Timeline Supplement)〉라는 서류를 보면 비디오 테이프에 포착된 교인의 모든 행동을 매 분별로 작성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임스 안 씨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03-07-2003자엔 5시 38분 15초에 제임스 안이 새벽 예배에 약간 늦게 참석하여 부적절한 소리로 "아멘"을 외쳤다. 다시 5시 49분 15초에 ·미스터 안은 강 목사의 예배 중의 사진을 계속 찍었다·조 장로가 미스터 안 앞에 서서 예배 중에 사진을 찍지 말라고 말했다.·미스터 안은 큰 소리로 "왜 당신이 예배 중에 내 앞에 서 있는가? 저리 가서 앉으시오! 곧 당신은 여기서 쫓겨나게 될 것이오. 왜 여기 서 있어요? 빨리 가시오!" ·제임스 안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조 장로의 사진을 또 찍었다. 등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짜도 3월 10일, 3월 11일, 3월 12일, 3월 13일, 3월 18일 등 계속적이다.
결국 "은혜로운 예배분위기 조성과 방송선교 목적으로 매주일 예배를 실황 녹화하기로 당회에서 결의한" 녹화시설은 이렇게 교인의 예배행위를 철저히 감시하여 소송자료로 가장 먼저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이 녹화시설이 예배분위기를 은혜롭게 하였는지는 교인 개개인의 느낌이겠지만 선교의 효과보다는 소송의 효과가 훨씬 앞섰고 제임스 안측에서 주장한 감시용이란 말도 설득력을 갖게 된 셈이다.

◎ 돈을 더 이상 낭비하면 하나님이 분노하실 터
마태복음 19장 21절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는 말씀이 있다.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는 생활인들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한다. 다만 자신의 경제활동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헌금을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교인의 헌금으로 교회의 재정은 편성된다. 교인들은 헌금할 때 마치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마음이다. 그곳에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않고 도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두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헌금을 하고 미국에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성의껏 모아 내는 자신의 헌금이 바람직한 곳에 가치 있게 쓰여지길 바랄 것이다. 가난한 자를 돕거나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어린이들에게 빵이라도 한조각 사주거나 아니면 복음이 차단된 곳에 신령한 복음이 전파되거나 하는 일들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소모적인 분쟁이나 아무 덕이 없는 감정싸움에 헌금이 사용된다면 교인들도 분노하겠지만 하나님이 더 먼저 분노하실 것이다. 교회는 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곳이며 교인들의 성금은 그야말로 피눈물의 축적물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법적 분쟁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의 낭비일 뿐이다. 하나님도 참지 못할 일을 계속 확대시킬 것이 아니라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지혜로운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바그다드의 전운이 이제 더 이상 타운에 맴돌아선 안되며 그 돈으로 굶주린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잠언 19장 17절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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