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아무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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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무나 한다
  • 여호길
  • 승인 2005.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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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줌마들이 돈 거 아니요?”

불법체류중국동포들이 자원봉사를 다닌단다. 일찍이 강릉재해복구현장에서도 활기찬 불법체류중국동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폭풍 “매미”가 지나간 마산수재복구현장에서도 불법체류중국동포들이 쓰러진 비닐하우스 해체작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향에서도 그들은 밭머리에 붉은 기발을 꽂아놓고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억척스레 대채전을 만들었고 산허리를 잘라 인수로를 파며 낭만의 젊은 시절을 보냈다.

오늘 그들도 이 나라의 일원이 되어 방방곡곡에서 온 자원봉사자들 속에 합류되었다.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제주도도 아니요. 이북의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도 아니요. 두만강 건너 이 나라 사람들이 '간도'로 이름한 땅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 나라에 와서 쓴 소리를 단 소리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물론 이 나라 국적도 없다. 여권도 이미 만기 된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붙은 봉인은 “불법체류” 넉자이다.

때론 그 넉자를 중국의 어느 소수민족 이름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 이름은 이미 한국의 “소수민족”으로 정착된 지 오래된 일이지만. 그리고 가끔씩 착각도 한다. 봉사가 끝나고 상경할 때면 “와! 우리 서울이다.”며 좋아한다. 물론 그 사람들이 서울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지만 서두. “불법체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우리 서울”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래서 사랑도 아무하고나 한다. 한국에 와서 괴상망칙한 사랑까지 다 본 그들이지만 그들이 이번에 선택한 사랑은 선 후천적 장애로 기저귀를 차고 밥조차 제대로 떠 먹지 못하는 장애인들이란다.

“한번 좀 끼워 주세요.”

몇 달 째 소식이 샌다고 끼워주지 않던 사람들이 드디어 마음을 움직였다. 날더러 베니엘의 집으로 오란다. 베니엘의 집에 들어서 보니 아줌마 아저씨들이 한참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 쪽에서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쫓아다닌다는 눈치다. 그 평온한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하마터면 “별일 아닌 걸”로 착각할 번했다.

잡히면 당장 강제 추방당되는 동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우리 서울”같은 대답이다.

“그냥 하는 거지요. 뭐”

그러다가 길가에서 잡혀 강제 추방되면 그 때는 자원봉사를 한 것도 후회하지 않을 가고 물으니 이번에도 역시 “서울사람”들이다.

“잡히면 가면 되지요 뭐.”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나는 그들과 “대화”가 되지 않아 이번에는 베니엘의 집 박 상준원장을 찾았다.

“글쎄요. 뭐라고 해야 할지. 이분들이 꾸준히 찾아주어 고마운 것은 물론 한국인으로써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장애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오니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나는 이들 자원봉사 조직자들에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경위를 물었다.

“글쎄요. 한국에서 중국동포들의 이미지가 너무 구겨져서 자원봉사를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모두들 즐거워하고 보람도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무분별한 운동에 참여해서 희생양이 되고 있는 동포들이 안타까워 자원봉사단체인 ‘재한 동포회’를 내왔고 여러가지 봉사활동도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사람"들과 작별하고 돌아서니 어쩐지 마음이 든든해진다. 발걸음이 거뜬해 지고 오랜만에 어깨에 기운을 줘본다. 그래, 사랑은 아무한테서나 받을 수는 없지만 '간도'에서 온 중국동포들이 사랑하고 싶는 마음은 그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닐가. “재한동포회” 자원봉사단체로써는 이름이 좀 거창하지만 “서울사람”들이 그 정도 거창하지 않고서야 쓸 말인가.


2005년 2월 14일 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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