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벤자맹 조아노 재외프랑스인협회 한국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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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벤자맹 조아노 재외프랑스인협회 한국분회장
  • 김제완기자
  • 승인 2005.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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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정’에 이끌린 프랑스 사나이

▲ 재외프랑스인협회 한국분회 벤자맹 조아노 회장 한국인들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든 백명만 넘으면 한인회를 만든다. 150여개국에 걸쳐 한인회는 그 숫자만도 1천개가 넘는다. 프랑스인들도 이와 비슷한 조직을 가지고 있다. 우리와 다른 것은 재외프랑스협회(ADFE)라는 단일한 조직이 있고 각나라 각도시에 분회가 있다는 점이다. ADFE는 1980년에 한국분회는 지난 96년 만들어졌다. 한국어 유창 토론도 가능벤자맹 조아노씨는 재외프랑스인협회 한국분회 회장이다. 그가 지난 3월15일 종로경찰서 부근의 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북한 새터민(탈북자의 새이름) 돕기 운동의 일환으로 ‘남남북녀’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겠다는 것이다. 이 전시회는 3월21일부터 나흘간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열렸다. 출품작은 시가의 50%에 판매하며 전액 새터민돕기 기금으로 사용된다. 작가 80명이 참여했는데 이중에는 4명의 음악가와 시인도 포함돼 있다. 참여작가중에는 이응노 홍순명씨등 프랑스출신의 이름도 보인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즉석인터뷰를 청했다. 조아노씨는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부근에 있는 프랑스이름의 빵집에서 다시 만났다. 이른 봄의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에 사는 프랑스인들은 무얼 하고 사는지 그리고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가 기자의 주요한 관심이었다. 그는 한시간여동안 유창한 한국말로 설명했다. 벤자맹 조아노씨가 한국에 온 것은 94년으로 올해 10년이 넘었다. 프랑스 징병제도에는 군입대해서 8개월을 복무하는 대신 18개월동안 대체복무하는 제도가 있다. 그는 서울프랑스학교 교사를 자원해 1년반 근무하고 병역을 필했다. 그뒤 프랑스인에게 없는 한국인의 특유한 ‘정’에 끌려 한국에 남게됐다. 정(情)을 불어로 무어라고 하는가고 묻자 ‘아펙시옹...’ 하더니 이내 알맞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병역을 마친뒤 알리앙스프랑세즈와 홍익대 불문과에서 5년동안 불어와 라틴어를 강의했다. 그사이에 틈틈이 개인교습으로 한국어를 배웠다. 지금은 고급의 한국어를 구사할 정도가 됐다. 기자회견때 간단한 프랑스 말은 직접 한국어로 통역하기도 했다. 현재 파리사회과학대학원(EHESS) 인류학 박사과정에 적을 두고 있다. 논문 주제는 일제시대 한국 시에 나타난 한국의 상상구조. 한국에 거주하면서 한국 관련 주제를 한국의 대학이 아닌 프랑스대학에서 논문을 쓰는 것이 이색적이다.그는 중앙일보에서 펴내는 월간지 ‘NEXT’지에 격월로 한국 주제의 칼럼을 기고하며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에 한국문화를 주제로 석달동안 연재를 시작했다. ▲ 북한 새터민 돕기 일환으로 ‘남남북녀’전시회를 열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조아노 회장.(사진 중앙)
‘두남자...’ 책 펴내 선풍

새로 준비하는 연재는 어떤 주제인가 묻자 프랑스와 한국의 요리를 비교하면서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느릅나물의 쓴맛은 프랑스 요리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인데 이런 맛에서 그는 무언가 의미있는 문화적 해석을 찾아낸다. 파란 느릅나물을 빨간 고추장에 찍어 먹는 색깔의 보색대비 같은 것에도 주목한다.

그리고 매운 고추를 심심한 밥과 함께 먹는 것도 음양의 조화로 설명한다. 이것이 그에게는 고차원의 웰빙으로 해석된다. 요리에 대한 생각이 많은듯 요리가 가장 좋은 문화적 아이템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인의 밥상을 잘 관찰해보면 철학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하긴 우리 일상의 식생활이 외국인에게는 새롭고 신기하게 보일 만하다. 조아노씨는 이에 머물지 않고 어떤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할 줄 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지식인이다. 동시에 식당을 두개 경영하는 사업가이다. 이런 양면성은 식당을 내고 그 경험을 책으로 펴낸 것에서 잘 드러난다. 5년전에 이태원에 낸 프랑스식당을 운영하면서 주방장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프랑스 요리와 문화에 대한 책을 펴냈다. ‘두 남자, 프랑스 요리로 말을 걸어오다’라는 이 책은 지난해 발간되자마자 한국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식당 이름은 작가 생떽쥐베리의 애칭인 르 셍텍스 Le Saint-Ex로 정했다. 장사가 잘되자 길건너에 라 플란차 La Plancha라는 식당을 하나더 냈다. 코리아타운에 한국식당이 있고 차이나 타운에 중국식당이 있듯이 프랑스인들이 밀집해 사는 방배동 프랑스인타운에 식당을 낼 만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문화적 게토’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말 한마디로 대신한다. 그가 원한 것은 한국과 프랑스 문화가 만나고 교류하는 자리였다.

조아노씨는 서울에 와서 10년넘게 생활하면서 프랑스인회 회장과 식당 사장등의 신분을 얻었다. 그리고 한국어로 된 책을 펴내고 주요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등 서울에서 활동은 아주 왕성하다.

저술과 기고 활동때문인지 그의 한국어는 아주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특히 그의 식당이 위치한 이태원 동네를 소개할 때는 말에 힘이 들어갔다. 이태원이 한자로 ‘異胎院’인 것도 그리고 조선시대때부터 외국인이 거주하던 곳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한국 .문화 음식에 큰 관심

셍택스가 위치한 해밀턴호텔 뒤편의 비탈진 거리에도 인도네시아 태국 그리스 중국식당등이 몰려있다. 이 동네는 잠재적인 가능성이 크다며 앞으로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조아노씨는 프랑스 와인의 주산지인 보르도지방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주저없이 자신이 술꾼이라고 말한다. 69년생이므로 서양나이로는 올해 35세나 36세이지만 그는 스스럼없이 ‘한국나이로 37세’라고 말한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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