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1905년 5월 15일 1,033명의 한국인들이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이국땅 멕시코에 이민 와 지옥의 농장에서, 태양이 불덩이처럼 끓는 혹서 아래서 노예처럼 일했고, 그리고 죽어갔다. 꿈에도 못 잊을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그리고 우리에게서 잊혀졌다.
그들이 인천항을 떠나고 얼마되지 않아 일본은 을사보호조약을 체결, 조선의 외교권을 완전히 박탈했고, 1910년에는 한일합방으로 조선을 완전히 식민지화했다. 그로부터 멕시코의 한국인들은 우리들로부터 완전히 버려졌고 멀어져 갔다.
아마도 이번 멕시코이민 100주넌 기념행사에서 가장 언론의 주목을 끌거나 사람의 시선을 끈 분은 뭐니뭐니해도 고흥룡 할아버지(멕시코 이름
아순시온 코로나)일 것이다. 1905년생이시니 올해로 꼭 100세이시다. 생각해보면 사실 난 이 분하고 참 인연이 많다. 1980년대 필자가
멕시코에 유학하고 있을 때, 오로지 개인적인 관심으로, 또는 어떤 누를 수 없는 사명감같은 것으로 멕시코 이민조사를 홀로 하고 있었을 때,
메리다에서 제일 먼저 본 분이 바로 고흥룡 할아버지였다.
1986년 메리다에 갔을 때, 고흥룡 할아버지는 필자가 머문 호텔을 수소문해서 몸소 찾아오셨는데, 이분은 순전히 한국에서 온 필자하고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어서였던 것이다. 이 분(당시 한국나이로 82세셨다)과 대화하다가 이 분의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는데,
1986년, 1987년 두 번에 걸쳐 100세가 넘은 1세동포 김순이 할머니(1885년생으로서 1905년 제물포항을 떠났을 떄 20세 꽃다운
어린 신부였다)를 만난 것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추억이다.
쿠바의 헤로니모 림 선생님은 실질적인 쿠바한인사회의 지도자시다. 이분은 몇 년전 재외동포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고, 지금
그분의 아드님인 넬슨 림씨는 재단 초청 유학생으로 한국에 와 현재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늘 그렇지만 이 78세의 노인께서 손수 운전하시면서
우리들을 안내했다. 이번 여행길에서 우리들은 아바나, 마탄사스, 그리고 카르데나스에 거주하는 쿠바한인 이민후손분들을 만났다. 아바나 거주
동포분들의 만남 자리에는 동포 한 분이 일부러 김치를 담가 유리병에 가지고 오셨는데, 필자는 이렇게 오래 한국하고 절연되어 있어도 한국문화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 쿠바 카르데나스 시 거주 한인이민 후손들. 이 자리에 이광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사진가운데)이 함께했다. | ||
마탄사스에서 차로 30분정도 되는 엘볼로 농장(Finca El Bolo) 입구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기념비가 하나 세워져 있다. 쿠바에
거주하는 한인이민 후손들을 쿠바도착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진 비이다. 이 기념비는 밴쿠버의 한인 장로회 교단 연합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1921년 한인들이 최초로 도착한 마나띠 항구에 세워진 기념비도 캐나다 한인동포들의 지원으로 세워진 것을 볼 때, 이렇게 보이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활동하시는 동포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무관심의 역사를 우리 민족사의 한 장으로 온전히 자리매김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그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멕시코 쿠바=서성철기자(재외동포재단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