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이민 100주년] 에네켄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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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이민 100주년] 에네켄 르포
  • 서성철(재외동포재단 차장)
  • 승인 2005.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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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기념행사 맞아 한인후손 티후아니 .쿠바 등서 메리다 방문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1905년 5월 15일 1,033명의 한국인들이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이국땅 멕시코에 이민 와 지옥의 농장에서, 태양이 불덩이처럼 끓는 혹서 아래서 노예처럼 일했고, 그리고 죽어갔다. 꿈에도 못 잊을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그리고 우리에게서 잊혀졌다.

그들이 인천항을 떠나고 얼마되지 않아 일본은 을사보호조약을 체결, 조선의 외교권을 완전히 박탈했고, 1910년에는 한일합방으로 조선을 완전히 식민지화했다. 그로부터 멕시코의 한국인들은 우리들로부터 완전히 버려졌고 멀어져 갔다.

▲ 멕시코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비 그로부터 100년 후 그들의 후손들이 멕시코 전역으로부터 이 뜻깊은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로 왔다. 저 멀리 티후아나 동포분들은 단체로 버스를 대절해 메리다로 왔고, 심지어 오기 어려운 쿠바한인 이민후손분들도 어렵게 멕시코로 와 이 날을 함께 했다. 물론 3세, 4세들이야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들에 온다는 의미도 있지만 나이드신 2세분들, 예를 들어 티후아나 한국명예영사인 페드로 디아스 코로나씨 같은 분들은 어린 시절을 보낸 이곳에 많은 향수를 가지고 계실 것이다. 무엇보다도 필자를 감동시켰던 분은 티후아나에서 오신 마리셀라 김 할머니시다. 작년에 필자는 멕시코 현지 이민조사로 티후아나를 방문하여 이 분을 뵈었었는데, 80이 넘은 이 할머니를 멕시코이민 100주년 공식기념행사장인 메리다 극장에서 다시 만나 감격의 포옹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장님이시다. 마리셀라 할머니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고, 가슴속에 남아있을 이곳의 공기, 향기(사람 채취까지 포함해서)를 느끼고 싶어 멕시코 최북단 티후아나에서 최남단 메리다까지 고향길 4,300킬로미터를 달려왔을 것이다. 유카탄 반도의 한인후손들은 이제 누구도 에네켄 노동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멕시코에서도 에네켄 잎을 보는 것도 그리 흔히 않다. 시간이 지나면 에네켄은 박물관이나 식물원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메리다시 중심부의 몬테호 거리에 최근 거대한 에네켄 조각이 세워졌다.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으로 세워진 멕시코이민 100주년 기념비이다. 피라미드 모양의 기단 위로 에네켄(용설란과의 열대식물. 이 에네켄 잎을 자르는 일이 한국인 노동자들의 일이었고 이 식물의 가시 때문에 많이들 울었다)의 날카로운 잎 두개가 형상화되어 있고, 이 두 에네켄 잎은 말발굽 모양을 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 기념비를 조각한 사람에 의하면 이것은 향후 한국과 멕시코의 우호 및 발전적인 미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번 멕시코이민 100주년 기념을 통해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옛 메리다 한인회관의 복원 개관식도 그중의 하나였다. 보훈처의 지원으로 낡고 무너져가던 회관 건물을 말끔히 단장하여 박물관으로 바꾸었는데, 유감인 것은 옛 모습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곳을 여러 번 방문, 건물 중간에 우물이 있었던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을 포함해 옛 한인회관의 모습은 흔적을 찾을 길 없다. 물론, 당시 메리다 한인들이 일본에 뺏긴 고국을 무력으로 되찾기 위해 군사훈련장으로 쓰였던 숭무학교 건물 및 운동장도 초대형 쇼핑센터로 바뀌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 멕시코이민 100주년 기념식에서 소개받고 있는 1세동포 아순시온 코로나 할아버지(한국명 고흥룡), 사진왼쪽은 유카탄 한인회장인 3세동포 울리세스 박


아마도 이번 멕시코이민 100주넌 기념행사에서 가장 언론의 주목을 끌거나 사람의 시선을 끈 분은 뭐니뭐니해도 고흥룡 할아버지(멕시코 이름 아순시온 코로나)일 것이다. 1905년생이시니 올해로 꼭 100세이시다. 생각해보면 사실 난 이 분하고 참 인연이 많다. 1980년대 필자가 멕시코에 유학하고 있을 때, 오로지 개인적인 관심으로, 또는 어떤 누를 수 없는 사명감같은 것으로 멕시코 이민조사를 홀로 하고 있었을 때, 메리다에서 제일 먼저 본 분이 바로 고흥룡 할아버지였다.

1986년 메리다에 갔을 때, 고흥룡 할아버지는 필자가 머문 호텔을 수소문해서 몸소 찾아오셨는데, 이분은 순전히 한국에서 온 필자하고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어서였던 것이다. 이 분(당시 한국나이로 82세셨다)과 대화하다가 이 분의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는데, 1986년, 1987년 두 번에 걸쳐 100세가 넘은 1세동포 김순이 할머니(1885년생으로서 1905년 제물포항을 떠났을 떄 20세 꽃다운 어린 신부였다)를 만난 것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추억이다.

쿠바의 헤로니모 림 선생님은 실질적인 쿠바한인사회의 지도자시다. 이분은 몇 년전 재외동포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고, 지금 그분의 아드님인 넬슨 림씨는 재단 초청 유학생으로 한국에 와 현재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늘 그렇지만 이 78세의 노인께서 손수 운전하시면서 우리들을 안내했다. 이번 여행길에서 우리들은 아바나, 마탄사스, 그리고 카르데나스에 거주하는 쿠바한인 이민후손분들을 만났다. 아바나 거주 동포분들의 만남 자리에는 동포 한 분이 일부러 김치를 담가 유리병에 가지고 오셨는데, 필자는 이렇게 오래 한국하고 절연되어 있어도 한국문화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 쿠바 카르데나스 시 거주 한인이민 후손들. 이 자리에 이광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사진가운데)이 함께했다.
한인후손들이 가장 많이 사는 카르데나스 시에서 동포 한분의 집에서 조촐한 회합을 가졌다. 주중이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주로 노인분들, 그리고 여자분들이 많이 오셨었다. 우리들이 이분들로부터 받은 인상은 참으로 힘들게 사신다는 것이었다. 이광규 이사장께서는 이분들의 지금의 열악한 모습이 바로 100년 전 이곳에 온 그들 선조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라는 말에서 이분들의 상황이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쿠바는 모든 것이 어렵다. 약품이 부족하고 식량이 부족하다. 이분들의 삶은 쿠바의 전반적인 경제적 어려움에서 기인하지만 이방인으로서 겪는 어려움도 더 있을 것이다. 정부차원이건, 민간단체건 이분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촉구한다.

마탄사스에서 차로 30분정도 되는 엘볼로 농장(Finca El Bolo) 입구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기념비가 하나 세워져 있다. 쿠바에 거주하는 한인이민 후손들을 쿠바도착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진 비이다. 이 기념비는 밴쿠버의 한인 장로회 교단 연합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1921년 한인들이 최초로 도착한 마나띠 항구에 세워진 기념비도 캐나다 한인동포들의 지원으로 세워진 것을 볼 때, 이렇게 보이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활동하시는 동포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무관심의 역사를 우리 민족사의 한 장으로 온전히 자리매김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그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멕시코 쿠바=서성철기자(재외동포재단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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