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김영옥 등 한국전쟁 영웅 영상, 뉴욕서 송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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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김영옥 등 한국전쟁 영웅 영상, 뉴욕서 송출
  • 서정필 기자
  • 승인 2023.04.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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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한미연합사, 대한민국 자유 수호 및 한·미동맹 기여한 10대 영웅 선정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사령부가 함께 선정한 한국전쟁 10대 영웅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4월 20일 정전협정과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한미연합사령부와 함께, 맥아더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을 비롯한 참전용사 10대 영웅을 선정하고 이에 대한 영상을 제작해, 현지시간 20일 0시부터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송출하기 시작했다.

선정된 10대 영웅은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 ▲밴 플리트 부자(父子) ▲윌리엄 쇼 부자(父子) ▲딘 헤스 공군 대령 ▲랄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 ▲백선엽 육군 대장 ▲김두만 공군 대장▲ 김동석 육군 대령 ▲박정모 해병대 대령 등이다.

보훈처는 “양국 참전용사들의 위대한 헌신을 기억하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물론, 앞으로도 굳건한 한미동맹을 이어가자는 의미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10대 영웅의 모습을 담은 30초 분량의 이 영상은 타임스퉤어에 있는 삼성과 엘지 전광판을 통해 하루 680회씩 송출된다”라고 설명했다.

먼저 맥아더 총사령관은 전쟁에서 아군 지휘는 물론,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해 전세를 역전시켜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이다. 당시 맥아더 총사령관은 조수 간만의 차 등으로 인한 작전 수행의 어려움과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감행, 성공을 거뒀다.

밴 플리트 부자는 2대에 걸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 밴 플리트 장군은 미8군 사령관으로 참전해 “승산이 없는 전쟁이니 동경으로 철수해야 한다”라는 참모의 건의에도 굴하지 않고 전선을 지킨 명장이었다.

아들 제임스 밴 플리트 2세는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1952년 4월 임무 수행 중 적의 대공포 공격을 받고 실종됐다. 그를 찾기 위한 적진에서의 수색을 아버지 밴 플리트 장군이 아군의 인명 손실을 우려하며 중단시키기도 했다. 참전을 앞두고 “전우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편지를 남겼던 청년 밴 플리트는 그렇게 실종 전사자로 남게 됐다.

윌리엄 쇼 부자 또한 2대에 걸쳐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했다. 윌리엄 쇼는 선교사로 주한 미군 군목으로 자원입대해 한국 군대에 군목제도를 도입했으며, 그의 아들 윌리엄 해밀턴 쇼는 하버드에서 박사과정 수학 중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미 해군에 재입대(앞서 제2차 세계대전 참전)했다. 인천상륙작전 시 정보장교로서 작전 성공에 공을 세웠으며, 서울 수복 작전을 위한 정찰 임무 수행 중 적의 총탄을 맞고 28세의 꽃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 했다.

딘 헤스 공군 대령은 1950년 7월 대구기지에 도착한 이후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 양성 훈련을 포함해 1년여 동안 250회에 걸쳐 전투 출격을 하는 등 한국 공군의 대부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1·4후퇴 당시에는 중공군의 진격으로 위험에 처했던 서울의 전쟁고아 950명과 고아원 직원들을 구출, 제주도로 피난시키는 등 따뜻한 인류애를 실천했다.

랄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은 1950년 11월, 청천강 북쪽의 전략적 요충지인 205고지 점령 때 수류탄에 맞고도 작전을 지휘하는 등 중공군에 맞서 활약했다.

심각한 부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됐음에도 대원들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남겨두고 떠날 것을 명령한 것은 그의 투철한 군인정신을 보여준 일화로 유명하다.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은 재미교포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후 전역한 뒤 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의 나라를 구하겠다”며 미군 예비역 대위로 자원입대했다. 이어 1951년 5월 구만산·탑골 전투와 금병산 전투에 참전, 사기가 떨어진 부대원을 독려해 승리로 이끌었다.

지난 2018년 한국인 이름을 딴 미국 최초의 고속도로인 ‘김영옥 대령 기념 고속도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에서 국군 제1사단을 지휘해 칠곡군, 가산·동명면 등지를 아우르는 다부동 전투에서 미군과 함께 북한군 3개 사단을 격멸했다. 백선엽 장군은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고 가라”는 말을 남김으로써 임전무퇴(臨戰無退)의 군인정신을 실천했다.

김두만 공군 대장은 6·25전쟁 중 대한민국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을 달성, 김신 장군 등과 함께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에도 참여했다. 승호리 철교는 미 공군이 500회 출격했지만 폭파하지 못했던 철교를, 저고도 폭격으로 14회 만에 폭파해 적 후방 보급의 요충지를 차단하는 전공을 세웠다.

김동석 육군 대령은 1950년 9월, 미8군 정보 연락장교로 서울탈환작전을 위한 결정적인 적군 정보를 수집, 유엔군사령부에 제공함으로써 서울탈환작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박정모 해병대 대령은 서울탈환작전 시 소대원을 인솔해 시가전을 전개하고 중앙청(당시 정부청사)에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년을 맞아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을 선정하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70여 년 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10대 영웅을 비롯한 참전용사들의 위대한 희생과 헌신이 굳건한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음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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