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황기환 지사, 독립운동 행적 자료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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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 황기환 지사, 독립운동 행적 자료 발굴
  • 서정필 기자
  • 승인 2023.04.0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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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황 지사 하와이 입항 및 1차 세계대전 참전 기록 등 확인, 공개
황기환 지사(왼쪽)과 프랑스 ‘레 카이에 데 드루아 드 롬’에 나온 부고 기사 (사진 국가보훈처)

2018년 방영된 TVN 인기 드라마 ‘유진 초이’ 역의 실제 인물인 故 황기환 지사의 독립운동 행적을 보여주는 미공개 자료가 공개됐다.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4월 3일 “황기환 지사의 후손 등을 찾는 과정에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과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하와이 호놀룰루 입항 자료를 비롯해 미국 및 프랑스 언론을 통한 독립운동 관련 자료 11점을 최초로 발굴했다” 며 해당 자료를 공개했다.

보훈처는 지사의 유해 봉환을 추진하며 후손을 찾는 과정에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과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자료에서 이들 자료를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황 지사와 관련된 자료는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과 ‘한국독립운동사자료-임정편’, ‘프랑스 소재 한국독립운동자료집’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활동 자료에 수록된 단편적인 문서가 전부였다.

따라서 이번에 발굴된 자료를 통해 황기환 지사의 행적과 독립운동 활동이 구체적으로 밝혀져, 황 지사 관련 연구가 지금까지보다 폭넓게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지사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프랑스에서 현지인들과 언론이 지사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사도 발굴돼 관심을 모은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그는 자신의 작은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노력에 그의 모든 정력을 쏟아 인간의 자유와 국제적 정의라는 대의에 영웅처럼 봉사했다. (중략) 극동의 믿음대로 그의 정신이 계속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애정 어린 존경과 조의를 표한다”

이는 꼭 100년 전인 1923년 10월 10일, 프랑스 언론 ‘레 카이에 데 드루아 드 롬’에 보도된 지사의 부고 기사 중 일부다. 국가보훈처는 최근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당시의 기사를 발굴했다. 

하와이 입항과 제1차 세계대전 참전

1886년 4월 4일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지사는 1904년, 19세가 되던 해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로 증기선(GAELIC호)을 타고 입항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918년 5월 18일 미군에 자원입대한 뒤 전쟁에 참전했다.

이 같은 사실은 1904년 하와이 호놀룰루 입항자 명부와 입항자 등록카드, 제1차 세계대전 미군 참전자 등록카드와 제1차 세계대전 미군 소집자 명단에서 확인됐다. 참전자 등록카드에서는 군번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사의 출생일과 하와이 호놀룰루 입항 연도는 이번에 최초로 발굴됐다. 또한, 첫 한인 이민자들의 하와이 도착 시기가 1903년임을 감안하면 황기환 지사의 하와이 이주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뤄졌고, 20년 넘게 해외에 거주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점을 볼 때 이는 황기환 지사의 해외 독립운동 시발점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프랑스에 배치된 황기환 지사는 전쟁터에서 중상을 입은 병사들을 구호하는 역할을 했고, 1918년 종전 이후에도 유럽에 남아 거주했다. 지사는 이듬해인 1919년 6월 파리로 이동해,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개최되는 평화회의에 참석하고자 파리에 온 김규식 선생을 도와 대표단 실무를 도왔으며, 임시정부의 파리위원부 서기장으로 임명돼 독립 선전 활동도 벌였다. 이어 1921년 미국에서 워싱턴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한 뒤 전 세계에 식민지 현실을 알리고자 미국으로 장소를 옮겨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미국·프랑스 언론을 통한 독립운동

지사는 해외 언론을 통한 조국 독립의 당위성과 일본의 부당함을 알리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에 발굴된 미국과 프랑스 언론 기사는 황 지사의 독립운동을 뒷받침하는 첫 해외 언론 기사다.

지사는 1919년 8월 23일자 프랑스 ‘라 프티트 레퓌블리크’, 8월 25일자 ‘뉴욕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는 일본의 ‘로이터 통신’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사는 ‘뉴욕 헤럴드’ 인터뷰에서 “일본이 문명화된 세계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고, 그 계획은 분명 실패할 것이며 한국인들은 절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이 한국을 일본의 일부로 고집하는 한 극동에서의 평화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황 지사는 그러면서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은 일본과 동등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며,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한국의 완전한 독립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뉴욕 헤럴드’ 인터뷰는 ‘라 파트리’, ‘라 리브르 파롤’, ‘봉수아르’ 등 프랑스 현지 언론을 통해 곧바로 재인용되며 확산,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알리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1921년 일본 왕세자가 프랑스 방문 시, 조선인이 암살을 계획한다는 소문에 조선인들이 감시받자 지사는 그해 6월 30일자 미국 언론 ‘시카고 트리뷴’을 통해 “조선의 국가적 신용도를 떨어뜨리려는 일본의 계략”이라고 역설하며 한국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이후 지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위원으로 조국의 독립과 해외 거주 한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을 이어오다, 1923년 4월 17일 미국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순국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이번에 발굴한 자료들은 조국을 사랑한 황기환 지사님의 삶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까지 감동을 준 사실은 물론 머나먼 이국땅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셨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라면서 “이제 그리던 고국으로 그 유해가 돌아오면 정부는 최고의 예우를 다해 영면하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보훈처는 이달 중 황 지사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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