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같이’라는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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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같이’라는 가치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3.03.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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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우연히 발음이 닮거나 같은 말은 말장난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코미디의 좋은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빚어내는 즐거운 세상이지요. 물론 소리가 같아서 생기는 수많은 오해도 있을 겁니다. 말은 이해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오해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말을 즐거운 쪽으로 사용하는 세상이기 바랍니다. 오해도 즐겁기 바랍니다.

가끔 저는, ‘같이’라는 말과 ‘가치(價値)’라는 말이 닮아 있음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같이 하는 것이 기쁨이 되고, 가치 있다는 것을 발음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이’라는 말은 ‘같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따라서 같이는 같다는 뜻입니다. 같이라는 말 대신에 ‘함께’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함께의 어원은 하나라는 뜻입니다. 하나라는 말이 바로 같다는 말인 것입니다.

같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장면은 하나가 되는 순간이고 둘이 같아지는 순간입니다.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을 공감(共感)이라고도 하고, 동감(同感)이라고도 하며, 동정(同情)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나와 상대의 감정 사이에 틈이 없습니다. 같은 마음을 지녔기에 고맙습니다. 어쩌면 고맙다는 말조차 필요 없이 하나입니다.

같이가 가장 가치 있는 순간은 아마도 같이 울어 줄 때일 겁니다. 같이 울어 주는 것만큼 감정이 일치할 때가 없습니다. 혹시 지나친 노력으로 거짓 울음을 울 수 있을지 모릅니다만, 그것은 그야말로 지나친 겁니다. 저는 같이 울어 주는 것은 나와 하나인 사람이 내게 보여주는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능적으로 나와 함께 울어 줄 사람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겁니다. 장례식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도 역시 함께 우는 사람입니다.

‘같이’가 폭발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순간은 아마도 같이 ‘욕’을 해 주는 장면일 겁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같이 화내고 같이 흥분하며 내 편을 들어줍니다. 평소라면 욕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 욕을 함께 쏟아냅니다. 그래서 종종은 욕을 함께 해 주는 그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이 고맙다는 말과 동의어(同義語)임을 가슴깊이 느끼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나보다 더 심하게 욕을 같이 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 편이 분명 있다는 안심을 줍니다. 

욕은 모욕이나 치욕과 관련이 있는 표현입니다. 내가 당한 모욕(侮辱)과 치욕(恥辱) 앞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따지는 사람은 불편합니다. 내가 당한 모욕에 분개하며 더 크게 돌려주자고 외치는 사람이야말로 가까운 사람입니다. 물론 그대로 돌려줄 예정도 아닙니다. 그 순간 같이 화내고, 같이 욕을 해 주는 거죠. 그러면 속이 시원해집니다. 마음도 좀 가라앉습니다. 그러고 나면 내 잘못이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성적인 판단은 이때부터 필요합니다. 감정(感情)의 시간에서 이성(理性)의 시간으로 넘어 온 겁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감정의 시간에 이성을 앞세워도 곤란하고, 이성이 필요한 시간에 감정을 쏟아내어도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같이는 가치가 됩니다. ‘같이’는 서로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고, 힘이 되는 가치입니다. 같이는 수많은 장면에서 ‘빛’이 됩니다. 때로는 같이 밥을 먹어 주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함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때로는 그대가 이 세상에 함께 살아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같이’의 가치인지? 나도 같이의 가치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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