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비속어, 엿 먹으라는 말의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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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비속어, 엿 먹으라는 말의 오해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2.10.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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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엿을 먹어본 경험이 없다는 아이들이 늘어갑니다. 저도 엿을 먹어본 게 언제인지 아득하네요. 엿을 먹다가 잘못하면 이빨이 빠질까 봐 이제 무서워서 먹지 못합니다. 예전에는 입시를 앞두고 엿을 선물하기도 했었죠. 엿의 착 달라붙는 성질 때문에 생긴 풍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엿을 먹었다는 말이나 엿을 먹으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입 안 가득 엿을 물고 있으면 침만 질질 흘릴 뿐 말도 제대로 못합니다. 나를 엿 먹였다는 말의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엿 먹으란 말이 왜 욕이 되었을지도 쉽게 추론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엿이나 먹으라는 말로 상대를 화나게 만들었을 겁니다.

엿 먹다는 말에서 우리는 엿이 먹는 것이라는 점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목적어로 생각하는 겁니다. 엿을 먹는 거죠. 그것은 아마도 엿이라는 말이 다른 데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엿은 먹는 엿이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는 <엿먹다>라는 말에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봅니다. 엿이 먹는 엿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본 겁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먹는 엿이 아닌 엿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겁니다. 바로 <엿보다>와 <엿듣다>입니다. 이 두 단어는 먹다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기초적인 어휘입니다. 보다, 듣다, 먹다 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단어가 있을까요?

따라서 엿먹다의 경우는 엿듣다, 엿보다와 마찬가지로 먹는 엿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엿보다는 말은 ‘남이 보이지 아니하는 곳에 숨거나 남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여 대상을 살펴보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몰래하는 행위이고 그래서 부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엿듣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엿듣다는 사전을 찾아보면 아예 ‘남의 말을 몰래 가만히 듣다.’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몰래’라는 말을 설명에 넣은 것입니다. 몰래라는 말의 느낌이 부정적입니다. 불법적인 느낌을 주는 표현입니다. 역시 ‘엿-’이라는 접두사가 느낌을 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엿먹다도 마찬가지로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엿을 몰래, 숨어서의 의미를 담고 있는 접두사로 보는 겁니다. 그러면 몰래, 숨어서 먹으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됩니다. 음식을 먹을 때 한쪽 구석에서 몰래 먹는 것만큼 비참하고 서러운 일이 없습니다. 엿먹으라는 말은 한쪽 구석에 가서 먹으라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 겁니다. 나를 엿먹였다는 말도 나에게 한쪽에서 숨어서 먹게 시켰다는 의미가 됩니다. 굴욕적이지요. 

그런데 엿먹다, 엿보다, 엿듣다를 한 번에 놓고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능하겠지만, 엿먹다만 따로 놓고 보는 경우는 혼동이 생겼을 겁니다. 엿을 접두사가 아닌 명사로 착각을 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엿을 먹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욕처럼 사용하였을 겁니다. 

처음에는 욕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엿을 먹는 모습이나 엿이 이빨에 쩍 달라붙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서 욕이라 생각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엿 먹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이 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욕을 하면서 모욕한다는 느낌이 덜 들어서일 겁니다. 욕도 감정이 실려야 시원합니다. 의미가 안 다가오는 표현은 욕으로도 효과가 떨어집니다. 그리고 욕은 상대가 기분이 나빠야 욕으로 효용성이 극대화 됩니다. 상대의 부모 욕을 하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아무튼 엿먹다는 이제 욕으로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엿먹다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우리말 속에 수많은 오해가 있었겠다는 생각에 좀 웃깁니다. 이제는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늘고 있으니 몰래 숨어서 먹으라는 말이 욕으로는 안 느껴질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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