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살만 루슈디의 책과 살인 미수에 얽힌 뒷이야기
상태바
[기고] 살만 루슈디의 책과 살인 미수에 얽힌 뒷이야기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2.08.19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라는 인명을 보면 아랍 무슬림들의 이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두 달 전, 1947년 인도 봄베이의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고 14살 때 영국으로 가서 럭비(Rugby)에서 학교를 다녔다. 나중에 캠브리지에 있는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그 후 영국 시민이 됐고 그의 이슬람 신앙이 점차 사라져갔다고 BBC 신문(2022.8.13.)은 전한다. 2007년 그의 문학적 공헌 때문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살만 루슈디는 4번 결혼해서 2명의 자녀를 두었다.

살만 루슈디의 소설 '악마의 시'(사탄적인 구절들) 

1988년 출간된 그의 네 번째 소설 <The Satanic Verses>의 우리말 번역은 <악마의 시>인데 일본어 번역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중국어로 번역된 책은 <악마의 시편>이지만 사실 이 책을 읽어보면 ‘시’도 아니고 ‘시편’도 아니다. 원래 Verse는 시의 한 구절이란 말도 있지만 꾸란의 한 구절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책의 아랍어 번역은 ‘아야트 샤이따니야(’āyāt shaiṭāniyyah)’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사탄적인 구절들’이란 말에 가깝다. 따라서 <악마의 시>란 책 제목은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그의 책 제목은 꾸란의 오류를 폭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슬림들은 이 책이 이슬람을 조롱하고 이슬람 신앙이 약한 사람을 이슬람에서 떠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책이 출간된 그 다음 해 시아파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살만 루슈디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 그리고 2022년 8월 12일 하디 마따르(Hadi Matar)가 미국 뉴욕에서 살만 루슈디의 얼굴, 목, 복부를 흉기로 찔렀다.
 
하디 마따르의 부모는 레바논의 무슬림이었고 레바논 남부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히즈불라가 주둔하는 야룬(yaroun) 남쪽에 살았다. 그는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고 두 명의 누이와 어머니와 함께 뉴저지에 살았다. 친구가 없고 평소 내성적이었던 하디 마따르는 2018년 레바논에 사는 그의 아버지를 만난 후 그때부터 이슬람에 더 심취해갔다고 그의 어머니가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NBC 뉴스는 하디 마따르가 이란의 이슬람 혁명 수비대와 시아파 극단주의에 호의적이고 동정적이었다고 전했다. 이슬람혁명 수비대는 테러를 지원한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살만 루슈디에 대한 파트와

사실 파트와는 이슬람국가의 법정에서 판사가 내린 판결과 다르다. 무프티(파트와를 발령하는 자)가 결정한 파트와는 이슬람법의 판결 중에서 설명이 요구되는 법적 질문에서 모호한 것을 분명하게 해준다. 다시 말하면 파트와는 분명치 않은 법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파트와는 법적 구속력이 없으나 현대 무슬림들은 특정 인물에 대한 파트와가 언론이나 SNS를 통해 삽시간에 전파되므로 그 파급력이 크다. 

많은 무슬림들은 <사탄적인 구절들>(일명, 악마의 시)은 꾸란과 이슬람을 모욕하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인도에서는 금서가 됐다.
 
당시 이란의 최고 지도자였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슬람 종교를 모욕한 살만 루슈디를 처형하라는 파트와를 1989년에 모든 무슬림에게 발령했고 현상금으로 300만달러를 내걸었다.
 
1997년 코르다드(khordad) 재단이 현상금 250만달러를 추가했다. 그는 살해 위협 때문에 영국에서 숨어 살았고 경찰의 보호를 받았는데 1995년 공개석상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살만 루슈디의 처형에 대해 1998년 이란 대통령 무함마드 하타미가 “루슈디의 문제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발표했다. 1998년 UN에서 이란 외무부장관 카말 카라지는 영국 외무상에게 “이란은 루슈디의 생명을 위협하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1998년 9월 28일 세 명의 이란의 종교 지도자는 무슬림들은 살만 루슈디를 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8년 10월 4일 이란의 160명 국회의원들은 살만 루슈디에 대한 처형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강경 이란 학생 조직들은 33만3천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2012년 이란의 종교재단은 현상금을 330만달러로 올렸다. 2016년 이란 국영 매체는 그의 현상금으로 60만달러를 추가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살만 루슈디에 대한 파트와는 이미 발사된 총알이 조준판에 명중할 때까지 계속 날아가는 총알과 같다고 했다. 그에 대한 살해 위협이 수면 아래에 숨겨져 있다는 말이었다. 파트와를 발령한 사람이 죽기 전에 파트와를 취소하지 않으면 그가 죽은 뒤에도 살해 명령의 효력이 지속된다.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그동안 살만 루슈디에 대한 살해 위협을 비난했다. 영국에서 일부 무슬림은 온건한 반응을 보였으나 일부는 호메이니를 옹호했다. 이 책의 일본인 번역사는 1991년 살해당했다. 1991년 이탈리아 번역사는 이란인에게 칼에 찔렸고 노르웨이 번역사는 1993년 총에 맞았으나 이 둘 다 죽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이미 <악마의 시>란 제목으로 두 권의 번역서가 나왔지만 위와 같은 배경을 자세히 알았다면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았을 것 같다.  

무슬림들이 이 책에 분노하는 이유

첫째, 무함마드에 대한 그의 묘사가 무슬림의 신앙을 모욕한다는 것이다. 그의 포스트모던 소설 <사탄적인 구절들>에 나오는 두 명의 매춘부 이름에 무함마드의 아내들의 이름을 대신 사용했다.

둘째, 이 책에는 지브릴 천사를 저주하고 지옥에서 평생 살라고 하는 표현(I curse you, my Gibreel, may your life be hell)이 나온다. 하늘에 있던 꾸란을 무함마드에게 전달한 천사가 지브릴인데 무슬림들은 이런 영어 표현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

셋째, 이 책은 픽션의 작품이라고 하고 또 이름과 인물과 장소와 사건들이 저자의 상상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했으나 사실 아이샤, 지브릴, 자힐리야, 천사 아즈라일 등 무슬림들의 아랍어 용어들을 아주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슬람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이런 어휘들은 아랍 무슬림들이 사용하는 어휘들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Mahound’라는 단어는 중세 유럽인들이 무함마드라고 이해했다. 과거 유럽의 기독교 일부 작가들은 무함마드를 악마라고 비방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

넷째, 무슬림들은 살만 루슈디가 꾸란이 신적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꾸란을 글자 그대로 믿고 글자 하나 하나가 알라가 준 단어라고 믿는다. 그래서 꾸란의 한 단어만 읽어도 선행 점수가 올라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살만 루슈디는 2015년 한 인터뷰에서 “개인을 존중하는 것은 가능하나 그의 아이디어에 대해 회의적일 수도 있고 심지어 격렬하게 비판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견해는 꾸란이 알라가 주신 글자 그대로의 말씀(literal word)이라는 견해와 충돌한다(https://www. timesofisrael.com. 2022년 8월 14일자). 

사실 영어 literal이 무슬림의 이런 개념과 다르기 때문에(공일주 저 <꾸란해석> 2021년 참조) 우리가 금방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것을 자신들을 모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살만 루슈디의 사건과 파트와 폐해

레바논 언론인 나딤 까띠쉬는 살만 루슈디를 공격한 하디 마따르는 시아파 무슬림이라고 했는데 그가 공격 전에 이란의 혁명 수비대에 관심을 보였지만 실제 그들과 레바논에서 접촉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란 정부는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이번 범죄와 전혀 상관이 없다(알샤르끄 알아우사뜨 아랍어 신문, 8월 16일자)고 했다. 그의 공격 결정이 누구의 지시나 허락을 받았는지 또 그가 스스로 호메이니의 파트와를 따랐는지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다.

파트와는 개인과 사회의 위험성을 고려해 파트와 발령에는 세세한 규약과 지침을 뒀다. 파트와를 발령하는 자는 법적 출처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발령하기 전에 꾸란과 순나의 본문을 확인해봐야 한다.
 
그런데 이런 출처에서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이즈티하드(법학자의 법적해석)를 하게 되고 여기서도 발견되지 못하면 법학자들이 추출한 지침(qawa’id)과 법적 텍스트에 기반한 원리들(’usul)을 적용한다.  

이런 모든 것을 고려했다면 그 답변을 못 찾는 일은 거의 드물지만 만일 못 찾았다면 이슬람 법에서 입법에 대한 일반적 경향에 맞는 것을 파트와로 결정한다. 이런 경우, 유익한 쪽을 택하고 해로움을 주는 것을 금한다(www.youm7.com/story/2017/10/6/3444089).
 
결국 잘못된 파트와가 발령되면 맹목적으로 따르는 무슬림 때문에 생명을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집트인으로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나깁 마흐푸즈가 이슬람을 모욕했다고 그를 찌른 이슬람주의자가 있었다. 이슬람 종교를 비웃음거리로 만든 살만 루슈디(75세)를 찌른 칼이 1994년 이집트의 소설가 나깁 마흐푸즈(82세)를 찌른 이집트 청년의 칼과 같다고도 했다(al-hurrah, 2022년 8월 15일자).   

정치적 음모인가? 이슬람법적 의무에서 온 살해미수인가?

이란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는 자신의 이름 앞에 ‘아야트 알라(’āyāt allah: 알라의 징표; 아야톨라)’를 붙였다. 그런데 살만 루슈드의 책 제목의 첫 단어가 ‘아야트(’āyāt)’였다. 이란의 최고 종교 지도자에게 붙여진 ‘아야트’가 살만 루슈드의 책 첫 단어와 동일한 것이 호메이니의 분노를 일으킨 것 같다고 주장하는 무슬림이 있다.
    
이번 사건 이후에 이란에서는 정치적 음모와 파트와에 대한 의무라는 주장 사이에서 논란이 많았다(www.aljazeera.net/news/2022/8/13). 이란의 뉴스 매체 파르스(Fars)는 “살만 루슈디에 대한 파트와를 실행한 하디 마따르를 모든 무슬림이 넓은 가슴으로 환영한다. 알라가 결국 승리하기 때문에 서구와 시온주의자와 모든 사탄들은 이슬람 종교와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www.farsnews.ir 2022년 8월 13일)고 했다. 

하디 마따르의 어머니는 데일리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디 마따르가 2018년 레바논을 다녀와서 더욱 더 이슬람 종교에 심취해 갔고 그의 어머니가 간혹 말을 건네려고 하면 그가 피했다고 한다.  

그러나 살만 루슈디에 대한 시아파 무슬림 호메이니의 잘못된 파트와가 있었고 그의 혁명은 보편적인 국가들이 지향하는 법 체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란계 미국인 아프숀(Afshon Ostovar)은 이란의 혁명 수비대는 최고 지도자에게서 직접 지령을 받는 전문적이고 계층적 조직이므로 이란 밖의 작전은 이란 정권의 최고위층의 승인을 먼저 받아야 한다고 했다고 레바논 언론인 나딤 꾸따이쉬가 전한다.

이란 외무부는 8월 12일 뉴욕에서 일어난 살만 루슈드의 살해미수 사건은 이란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으나 팔레스타인 언론인 바크르 오웨이다는 이란 정부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런지 몰라도, 분명한 것은 이란의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가 발령한 파트와가 전세계 무슬림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다(알샤르끄 알아우사뜨, 2022.8.17.).
 
사우디 칼럼니스트 파흐드 술라이만은 이란을 테러 국가라고 칭하고 호메이니의 파트와를 1997년 하메네이가 지지하였고 또 레바논의 하산 나쓰랄라도 지지했다고 하면서, 그는 이란이 카피르(알라와 무함마드를 믿지 않는자)를 단정하는 파트와나 암살 문화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아랍어 뉴스 매체(www.farsnews.ir/ar/news)는 살만 루슈디를 ‘무르탓드’라고 했는데 그 말은 ‘이슬람을 믿었다가 카피르가 된 사람’을 가리킨다.
 
더구나 이란의 카이한(kayhan) 신문은 하디 마따르의 잔혹한 살해 기도를 축하한다고 했고 이란의 많은 무슬림들은 살만이 칼로 찔린 것을 기뻐하고 있다고 하짐 싸기야는 전한다(알샤르끄 알아우사뜨, 2022년 8월 17일).  

데일리 메일 온라인 신문은 “하디 마따르가 외톨이(loner)였고 친구가 없었다”고 했다(www.dailymail.co.uk/news/article 2022년 8월 19일). 우리나라에는 이슬람국가에서 이주한 무슬림들이 전국 곳곳에 살고 있지만, 그들 대다수는 우리 문화에 동화되지 않은 채 살고 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