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3개월 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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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3개월 전의 나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2.07.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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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나는 누구인가? 나란 무엇인가? 나의 변하지 않는 특성은 무엇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평생을 다해도 모자라는 진리의 길이라는 느낌입니다. 성자라고 하는 사람은 모두 이러한 질문을 던졌던 사람일 겁니다. 어릴 때부터 나를 만들어온 나의 역사가 나이고 나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 정체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일본 스님의 책을 번역하다가 인간의 세포는 3개월이면 모두 바뀐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자신(自身)에 대한 집착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는데 우리의 몸조차 ‘자신’이라고 하기에는 늘 바뀐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장 제목이 제 마음을 끌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야말로 세상을 사랑하는 시작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에 묘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아마도 이 말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 나머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폐단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3개월 전의 내가 지금의 나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변하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변화의 방향도 고민해 봐야 할 겁니다. 좋은 쪽으로 변화해야 하겠지요. 기껏 바뀌었는데 그게 더 나쁜 방향이라면 문제일 테니까요.

우리는 자신이 변하지 않는 존재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나에 매달려있는 것입니다. 과거에서 지나온 시간만큼, 현재에서 흘러가는 시간만큼 나는 변화한다는 사실을 잊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변화를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은 늘 변한다는 의미입니다. 변화함이 진리임에도 과거의 문제에 얽매여 사는 사람은 고통 속에서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될 겁니다.

저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불교의 성자 푼니카를 떠올립니다. 푼니카는 고아였고 하녀였습니다. 세상에 불만이 가득하여 늘 불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내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합니다. 늘 친절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자 푼니카의 현재가 바뀌고 미래가 바뀝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성자라는 칭송을 받습니다. 사람은 바뀝니다. 현재의 내 모습에 따라 좋게 바뀝니다.

사람들은 자라면서 스스로가 새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잊습니다. 어린 시절이나 청춘만이 젊고 빛나는 시절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앞으로 멋지게 나이 들어갈 생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새로워지는 게 아니라 잘 마무리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숲길을 걷다가 문득 놀라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봄에 새싹이 돋아 신록(新綠)이 되고, 여름에는 울창하고, 가을에는 하나 둘씩 낙엽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한여름에도 새싹이 돋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신록이었습니다. 꽃보다 더 빛나는 이파리였습니다.

3개월 전의 나는 이미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방금 전의 나도 없어지고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은 늘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붙잡고 지내는 내 과거의 기억만이 있을 뿐입니다. 추억은 추억으로 아름답겠지만 그래서 나를 바꾸지 못한다면 답답한 일입니다. 오늘도 나는 바뀝니다. 이왕이면 좋게 바뀌기를 소망합니다. 여름에 피어난 새 잎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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