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내다 지르다 치다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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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내다 지르다 치다 하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2.07.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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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오늘 글 제목에 나온 단어들은 모두 소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소리에 관한 것입니다. 소리는 말이 아닙니다. 말이 아니기에 의사소통을 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이 안 통할 때, 서로 감정이 맞지 않을 때 우리는 말이 아니라 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는 말은 그럴 때 쓰는 말입니다. 잔소리나 헛소리가 모두 소리를 소통의 관점에서 표현한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리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소리는 말 이전에 우리의 감정을 움직입니다. 물소리, 새소리, 휘파람소리, 노랫소리는 모두 맑은 느낌이고 시원한 느낌입니다. 묵은 감정의 때를 씻어가는 소리입니다. 소리에는 이렇게 느낌이 담겨있어서 감정을 표현할 때는 말보다 나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무언가에 막혀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스트레스 속에서 사는 것은 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리를 담아두고 살기에 몸은 답답해집니다. 달리 말하자면 감정이 몸 밖으로 잘 나가지 않기 때문에 먼지처럼 켜켜이 쌓입니다. 그 먼지가 핏줄을 돌면서 스트레스가 됩니다. 억눌린 감정을 푸는 방법은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대중 가수의 공연장에 가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소리 질러!’입니다. 소리를 지르는 것은 호응을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청중의 막힌 감정을 뚫어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공연을 보고 오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이는 모두 소리를 질렀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응원을 했는데 내 가슴이 오히려 시원해집니다. 소리 없는 응원이었다면 아마 더 답답했을지도 모릅니다.

소리를 지르는 것이 막힌 가슴을 푸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소리를 다른 사람을 향해 나쁜 감정으로 지르는 경우입니다. 응원이나 호응이 아니라 분노나 질책인 경우에 소리는 악을 쓰는 겁니다. 소리가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순간입니다. 이 경우 소리는 남에게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소리 중에는 뜻밖에 기쁜 소리도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소리는 노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판소리라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소리꾼’이라고도 합니다. 소리를 한 자락 했다고도 합니다. 소리를 한다는 말이 노래를 부른다는 뜻이기도 한 겁니다. 저는 소리를 하면서,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우리의 막힌 감정이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민요를 배우고 부르면서, 쌓인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리를 하였는데 감정이 맑아진 겁니다. 내 감정이 민요를 타고 흘러나와 눈물이 된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지 못해서 민요를 잘 못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큰 소리를 내야 노래를 부를 수 있는데 현대인들은 소리를 질러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소리를 질러본 지가 얼마나 되었나요? 우리는 소리를 지르는 것을 아예 잊어버린 느낌도 있습니다. 저는 요즘 민요를 배웁니다. 그리고 민요를 배울 때 가능한 한 큰소리를 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듣는 유일한 칭찬은 목소리가 크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 민요의 앞날에 가능성이 보인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의도적으로라도 소리를 질러 보면 좋겠습니다. 바닷가를 걷거나, 파도소리 앞에서, 바람 부는 언덕에서 소리를 쳐 봅니다. 이왕이면 기분 좋은 소리를 질러 봅니다. ‘야, 좋다!’, ‘힘내자!’ 소리를 한바탕 지르고 나면 한 뼘 더 커진 행복을 만나게 됩니다. 소리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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