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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리비우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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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리비우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의 일상 
  •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 승인 2022.04.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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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린 '폴란드-우크라이나 연합 종전 시위' 모습 (사진 심경섭 크라쿠프한인회장)
4월 24일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린 '폴란드-우크라이나 연합 종전 시위' 모습 (사진 심경섭 크라쿠프한인회장)

아침이면 우크라이나 리비우의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는 부산하다. 협업 중인 30개 구호팀에서 텔레그램으로 전국 각지의 전쟁 피해 상황과 현지 모습을 가감 없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내온다. 현장 상황은 참혹하다. 폭격 맞아 뼈대만 남은 건물, 새까맣게 타버린 집안 살림, 포탄을 맞아 움푹 패인 도로, 끊긴 다리 사이로 위험하게 빠져나가는 피란민의 모습 등.

전쟁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한 도시 (사진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전쟁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의 한 도시 (사진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구호팀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도시는 폐허가 돼 있고 물도, 전기도, 난방시설도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젊은이들은 전쟁터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거나 피란길에 오르지만 장애인과 병든 노인들은 구호차량이 오지 않는다면 사실상 자력으로 피신조차 할 수 없다.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에 남겨진 이들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망연자실해 하며 구호팀과의 대화 내내 목소리가 떨린다. “노약자를 집에서 보살피다 보니 외면하고 피란길에 오를 수 없었다”는 중년 여인의 고백은 울림을 준다. 그녀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탄식하듯 이렇게 말한다. “저 분 아니었으면 전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구호품은 당분간이나마 버틸 수 있는 삶의 원천이 된다.

드네프로 실내 체육관을 개조한 난민 보호소 (사진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드네프로 실내 체육관을 개조한 난민 보호소 (사진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교전지인 남부와 동부 전선에서 탈출한 실향민들은 1차 피신 집결지인 드네프로로 몰려들고 있다. 긴급상황에 몸만 빠져 나온 수천명은 잘 곳도 먹을 것도 부족하다. 실내 체육관 등을 급조한 난민캠프 내부는 매트리스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한켠에선 무료배식으로 허기를 달랜다.

고아원 지원사업을 해오던 어린이 구호단체 ‘희망의 발걸음’. 개전과 동시에 아사달은 친분 있던 ‘희망의 발걸음’ 이리나 원장에게 드네프로 지역의 어린이 구호사업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온 국민이 패닉에 빠져 있을 때 수도 키이우에서 교전지역과 멀지 않은 드네프로로 떠나야 했던 그녀의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드네프로 이리나 원장님이 보호 중인 아이들 (사진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드네프로에서 이리나 원장이 보호 중인 아이들 (사진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이리나 원장은 현재까지 ‘어린이 구호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밀려드는 피란민들로 난감해 할 때 한국의 ‘더 프로미스’가 협력해 1차 사업으로 피란민 3,500명에게 도움을 줬다. 피란민들은 드네프로주 다섯 군데로 분산돼 20~200명 수용 가능한 시설에서 임시 거주 중이다. 

드네프로 피란민 ‘긴급 구호팀’은 한국인 한의사 윤원장이 책임을 맡고 있다. 매일 200명을 대상으로 의식주 지원 및 기차역 무료 식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실향민 구제 현장엔 함께 연대하고 있는 방주교회가 있다. 일일 평균 90여명을 수용하고 있고 기차역에서 1~3천여명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는 모금된 성금과 구호품을 1차 피란지역에 ‘긴급 구호’로 지원하며 드네프로를 중심으로 한 인근 6~7개 지역의 고려인을 포함한 실향민 3,500여명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구호팀에 의해 구출된 피란민들 (사진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구호팀에 의해 구출된 피란민들 (사진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드네프로에서 2차 피신지로서 폴란드와 인접한 리비우까지의 거리는 1,000km, 차량으로 14시간 이상 소요된다고 구글맵은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파괴된 도로와 전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이상의 험난하고 고통스런 피란길이 될 거라는 것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전국 각지에서 전란을 피해 떠도는 실향민은 800만명 정도로 될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값지고 특별한 인연들이 맺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향민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동참하는 이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
  
전쟁초기 서부 리비우로 피란민들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자 한 때 방 두 칸짜리 60만원 상당의 아파트 월세가 400만원 이상 치솟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사달 대책본부 대표는 리비우 주민인 이라 씨의 집에서 하숙을 시작했다.

리비우 옷가게 사장 이라 씨는 피란민들이 필요한 옷을 직접 입어보고 골라가도록 가게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리비우 옷가게 사장 이라 씨는 피란민들이 필요한 옷을 직접 입어보고 골라가도록 가게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리비우 다운타운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이라 씨는 전쟁이 일어나자 자원봉사자 60명을 모집해 피란민들에게 무상으로 의복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에 아사달 대책본부도 그녀와 연대해 월 15,000명에게 의복을 지원했고,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현재는 하숙집 주인을 넘어 함께 봉사하는 동반자가 됐다.  

리비우 전역에 신경질적인 공습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사이렌 소리에 평온했던 리비우의 분위기는 다시 무겁게 가라앉는다. 도시 외곽 기차선로를 필두로 한 여러 곳에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이 있은 후, 곧이어 현장 사진들이 텔레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우크라이나 내에 안전지대란 없다. 

4월 25일 리비우 인근 기차역 미사일 피격 현장 (사진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4월 25일 리비우 인근 기차역 미사일 피격 현장 (사진 고려인협회 아사달 대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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