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한국인회, 제103주년 3‧1절 기념식 개최
상태바
북경한국인회, 제103주년 3‧1절 기념식 개최
  • 이나연 재외기자
  • 승인 2022.03.04 16: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념식 후 김진곤 주중한국문화원장이 ‘천도교와 3‧1독립운동’을 주제로 강연
중국 북경한국인회는 3월 1일 오후 2시 반, 베이징 조양구 왕징에 위치한 북경한국인회 사무실에서 3‧1절 기념식과 역사강연을 개최했다. (사진 이나연 재외기자)
중국 북경한국인회는 3월 1일 오후 2시 반, 베이징 조양구 왕징에 위치한 북경한국인회 사무실에서 3‧1절 기념식과 역사강연을 개최했다. (사진 이나연 재외기자)

중국 북경한국인회(회장 박기락)는 3월 1일 오후 2시 반, 베이징 조양구 왕징에 위치한 북경한국인회 사무실에서 3‧1절 기념식과 역사강연을 개최했다.

주중한국대사관, 재외동포재단, 민주평통 베이징협의회가 후원한 이날 기념식에는 북경한국인회 임원들, 주중한국대사관 유창호 총영사, 현명훈 영사, 손성호 교육관, 독립유공자 김동진 선생의 딸 김연령 씨, 서만교 민주평통 베이징협의회장 등 베이징 지역 한인단체장들과 베이징에서 유학 중인 한인 대학생들, 진덕용 대한상공회의소 중국사무소장, 박기철 강원도 중국본부장 등 기관장들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국민의례, 박기락 북경한국인회장의 개식사, 이수빈 북경한국총학생회장의 독립선언서 낭독, 서만교 민주평통 베이징협의회장과 김연령 여사(독립유공자 김동진 선생의 딸), 송철호 북경한미약품 부회장의 만세삼창, 유창호 주중한국대사관 총영사의 기념사로 진행됐다. 

중국 북경한국인회는 3월 1일 오후 2시 반, 베이징 조양구 왕징에 위치한 북경한국인회 사무실에서 3‧1절 기념식과 역사강연을 개최했다. (사진 이나연 재외기자)
중국 북경한국인회는 3월 1일 오후 2시 반, 베이징 조양구 왕징에 위치한 북경한국인회 사무실에서 3‧1절 기념식과 역사강연을 개최했다. (사진 이나연 재외기자)

박기락 회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처럼 오늘 기념식이 역사를 기억하고 애국정신을 되새기며 순국선열을 기리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오늘 기념식은 코로나19 장기화로 교민사회가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 교민들과 대사관, 각 교민단체, 유학생이 함께 진행하는 행사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유창호 총영사는 기념사를 통해 “독립 투사들의 비전과 열정은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 근간이 된 정신이다. 어려운 시국에도 해외에서 베이징 교민들이 독립 투사들의 의지와 열정을 비전으로 삼고 실천해 나가서 자랑스럽다. 3.1절 행사를 개최한 북경한국인회에 감사하다”고 했다. 또, "국제정세와 올해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에서 3·1절 103주년이 더 뜻깊게 와 닿는다"고 했다

기념식 후에는 김진곤 주중한국문화원장이 ‘천도교와 3‧1독립운동’을 주제로 역사강연을 했다. 

중국 북경한국인회는 3월 1일 오후 2시 반, 베이징 조양구 왕징에 위치한 북경한국인회 사무실에서 3‧1절 기념식과 역사강연을 개최했다. (사진 이나연 재외기자)
중국 북경한국인회는 3월 1일 오후 2시 반, 베이징 조양구 왕징에 위치한 북경한국인회 사무실에서 3‧1절 기념식과 역사강연을 개최했다. ‘천도교와 3‧1독립운동’을 주제로 강연하는 김진곤 주중한국문화원장 (사진 이나연 재외기자)

김 원장은 강연을 통해 “3·1운동을 주도한 33인의 민족대표 중 15명은 천도교인, 16명은 기독교인이었고, 2명은 만해 한용운과 일제의 불교 왜색화에 저항했던 백용성 스님이다. 민족지도자들의 종교적 분포의 의미는 그분들이 믿었던 종교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이분들이 모두 종교계의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소위 말해 천도교의 교역자, 기독교의 목사와 장로, 불교의 스님들이 3‧1운동의 주역으로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3‧1운동에 참여한 천도교, 개신교, 불교 중에서 이를 가장 먼저 준비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천도교이다. 3‧1운동과 관련된 천도교 유적으로는 우이동 삼각산 자락에 위치한 봉황각과 종로구 수운회관 정문 오른쪽에 있는 ‘독립선언문 배부터’ 기념비이다. 천도교 3대 교주로서 33인 민족대표 명단에 맨 먼저 이름이 오른 의암 손병희는 봉황각을 짓고 천도교 지도자들을 양성하면서 그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었고 항일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봉황각을 통해 483명의 지도자가 배출됐는데 그 중 14명이 손병희와 더불어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해 3‧1운동의 최선봉에 서게 된다. 천도교에 의하면 3‧1운동 당시 천도교 인구는 300여만 명이었는데 이는 전체 인구 1600여만 명의 20%에 육박한다”고 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