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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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2.01.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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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박물관은 왜 갈까요? 박물관의 전시물은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은 영원한 삶의 증거입니다. 우리 삶이 영원하다고 할 때, 그 시작은 기억에 있을 겁니다.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행복합니다. 박물관은 조상들의 간절함이고, 우리 조상의 삶 그 자체입니다. 박물관에서 선조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박물관에서 간절함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은 많습니다. 특히 종교적인 상징물은 저마다 사연이 있을 겁니다. 상징물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사람이나 만든 사람, 그 앞에서 기도한 사람이나 모두 간절함이 있습니다. 그 속에 담긴 사연은 눈물에 눈물을 부를지도 모릅니다. 그 모든 사연이 이루어졌기 바랍니다. 아니 사연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간절함에 서로 따뜻했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박물관에서 겉모습을 봅니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을 봅니다. 물론 아름다움을 보는 게 잘못은 아닙니다. 당연한 것이겠죠. 하지만 저는 아름다움에 더하여 그 간절함에 귀 기울이기 바랍니다. 그러면 박물관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겁니다.

전에 불교국가에서 온 제자들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었습니다. 우리나라 유물에는 불교적인 것이 많습니다. 저는 종종 조선시대에도 불교국가였다면 우리 불교 유적은 정말 대단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조선은 유교 국가로서 우리를 발전시켰지만 불교문화의 쇠퇴를 가져온 것은 사실입니다. 어느 곳이든 자기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옛 모습을 없애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전쟁으로 귀한 문화재가 사라진 것도 아쉽습니다. 외적의 침입도 문제지만 우리끼리의 다툼으로, 특히 한국 전쟁으로 불타 없어진 유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황룡사 9층탑을 실물로 보았다면 어땠을까 늘 아쉽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박물관에는 불교유물이 많습니다. 특히 부처님이 많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정성이 가장 깊이 들어간 게 종교적 유물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반가사유상 앞에 제자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얼마나 적막하면서도 고고한 분위기인지, 깨달음의 순간은 무엇인지 저의 느낌을 설명하고 있을 때, 제자들은 조용히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반가사유상을 유물로 보고 있는데 제자들에게는 부처님이었던 겁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장면입니다.

그 후 저는 종교적 유물을 만나게 되면 가벼운 묵상이나 참배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일본 교토에서 만난 반가사유상 앞에서도 잠깐 앉아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어떤 종교의 유물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성당에서도 기도를 합니다. 그들의 간절함을 보고, 저의 간절함을 봅니다. 그러면 박물관은 살아있는 모습으로 저에게 대답합니다. 박물관은 예전의 모습을 전시해 놓은 곳이 아니라고. 박물관은 우리 앞에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살아있다고. 박물관은 간절한 마음이 만나는 곳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박물관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공간입니다.

며칠 전에 미세먼지로 세상이 뿌옇고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날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습니다. 사유의 방에서 두 분의 반가사유상을 만났습니다. 사유의 방은 2021년 11월 12일부터 우리나라의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된 공간입니다. 삼국시대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반가사유상 두 분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깊은 사유의 공간이네요. 잠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습니다.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남을 시간이었습니다. 살아있는 박물관에 가 보세요. 맑고 행복한 위로를 경험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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