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산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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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산으로 가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1.12.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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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우리는 이야기를 하다가 주제에서 벗어난 말을 하거나 방향에 맞지 않는 말을 할 때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는 표현을 합니다. 정답과는 상관없는 방향을 향하는 것이기에 길을 잃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길로 가지 않고 산으로 가면 엉뚱하고 틀린 게 됩니다. 회의가 산으로 가면 답은커녕 회의 자체가 진행이 안 되는 겁니다. 속담에 있듯이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간 것입니다. 이렇듯 산으로 간다는 말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일을 자의든 타의든 그만둔 사람도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원을 떠돌기도 하지만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년을 하면 본격적으로 산으로 갑니다. 산에 가면 뭐가 있냐고 하지만 아무튼 산으로 갑니다. 산은 내가 갖고 있던 것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을 때 자연스레 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산으로 간 사람이 많았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곳에 비해 산은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건강한 곳이 산입니다. 

우리는 산에 길을 잃어서도 가고 길을 찾으려고도 갑니다. 종교에서는 깨달음을 얻거나 신의 계시를 받기 위해서도 산으로 갑니다. 산에 가서 하늘의 계시를 받는 장면은 익숙한 모습입니다. 험하고 깊은 산에 가면 얻어지는 것이 많습니다. 힘들면 힘들수록 다시 태어남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산으로 간다는 것이 수행을 의미하기도 하고 신을 만나는 행위가 되기도 합니다. 

신라의 화랑이 산천을 다니며 깨달음을 얻었던 것은 그런 이유일 겁니다. 바람 따라 흘러 다녔기에 풍류(風流)라고도 했습니다. 단순히 노는 것이 풍류가 아닙니다. 산을 다니는 겁니다. 산을 오르고 자연을 느끼는 것이 풍류이고 도입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기에 도라고 했을 겁니다. 화랑을 다른 말로는 국선(國仙)이라고 했습니다. 선(仙)은 산을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산을 오래 다니면 신선이 됩니다. 

종교의 많은 수행처가 산속에 있습니다. 여러 사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산속에 자리하기도 했겠으나 기독교의 수도원도 그렇고 불교의 많은 절도 깊은 산속에 있습니다. 저는 종종 기도를 드리러 산에 오른 사람들은 산에 오르면서 이미 기도가 이루어졌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산에 오르면서 간절한 마음이 깊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만, 약초를 캐는 사람이 약초를 먹는 사람보다 건강한 건 뜻밖의 진리입니다. 병에 걸린 사람에게 제일 좋은 처방은 약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약초 캐는 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약초와 독초를 구별하며 새로운 지식을 얻고, 약초를 캐기 위해 산을 오르고 땀을 흘립니다. 어느새 머리도 새로워지고, 몸도 새로워지고, 마음도 새로워집니다. 무엇보다도 집착이 옅어지고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 더 이상 아픈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혼자 산에 오르는 이도 많습니다. 부부나 친구가 함께 산에 오르기도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더 열심히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산에 오르는 것은 참 다행한 일입니다. 살면서 길을 잃어 산에 갔는데 산은 또 다른 길이 되었습니다. 산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길을 찾습니다. 산에서 만난 하나하나가 깨달음이 됩니다. 다음 산이 기다려지고, 다음 계절이 기대됩니다. 건강은 덤으로 주어진 행복입니다. 

길을 잃고 세상이 싫어서 산을 올랐는데 오히려 사람을 사랑하고 위로하게 됩니다. 산에 오를수록 사람이 그립습니다. 산에서 만난 사람에게 기쁜 인사와 걱정의 안부를 나눕니다. 앞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을 향하는 것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나와 함께 지나간 것이 과거(過去)이고, 아직 내 앞에 오고 있는 것이 미래(未來)입니다. 지금 내가 모습을 내보이며 살고 있는 것이 현재(現在)입니다. 저는 산을 걸으며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현재를 느낍니다. 산을 또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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