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니족과 시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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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니족과 시시족
  • 김제완기자
  • 승인 2005.01.24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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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살기' 21세기형 이민모델인가
몇해전 빠리에 유학중이었던 작가 권지예씨는 "니서울 니빠리 ni seoul ni paris"라는 말을 사용해서 주목을 끌었다. 프랑스어의 부정전치사를 붙여 서울도 아니고 빠리도 아니다는 뜻을 가진 말을 만들어 유학생들의 현실을 설명했다.

빠리에 있다가 방학을 이용하여 서울에 오면 2주가 지나지 않아 번잡스러운 생활에 지쳐 다시 돌아가고 싶고, 변화가 없는 빠리에서는 활기있는 서울을 그리워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이 말에 담아냈다.  이렇게 양도시를 겉도는 사람들을 '니니족'이라고 불러보자.

지금부터 약 10년전쯤 호주 캐나다 이민사회에서 "즐거운 지옥, 심심한 천국"이라는 말이 회자됐었다. 이말처럼 이민자나 유학생들은 서울의 즐거움과 지옥스러움 그리고 빠리의 심심함과 천국스러움등 네가지 부면의 이쪽저쪽을 부딪치며 생활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니니족과 반대로 서울의 즐거움과 빠리의 천국스러움만을 취할 수는 없을까?  최근들어 이같은 생활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런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니(ni)의 반대말인 시(si)를 붙여 "시서울 시빠리 si seoul si paris"라는 말도 사용해 볼만하다. 서울도 좋고 빠리도 좋다는 이 부류의 사람들은 '시시족'이 된다.

시시족은 두 도시를 생활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21세기형의 새로운 이민생활 방식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은 다양하다.

90년대 이래 우리는 세계화시대 그리고 인터넷이 만들어낸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더구나 5년후쯤이면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가 등장해 빠리와 서울간을 6시간에 주파하게 된다. 서울 부산간 차량 이동시간에 불과하다. 이렇게 나날이 공간과 거리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 바뀌고 있어 지구촌이라는 말이 생소하지 않게 됐다.

'두 도시 살기'를 구현하는 시시족이 본격적으로 출현하면 전통적인 이민의 개념도 바뀌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한 곳에서 뿌리를 뽑아서 다른 곳에 심는 것을 이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포공항에서 떠나는 이민자들과 남은 친지들이 헤어지면서 눈물바람을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조금더 먼곳으로 이사하는 정도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외교부의 정책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지난 60년대 이래 외교부의 동포정책은 소위 현지화정책이었다. 그나라에 가면 그나라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일단 한국을 떠나면 그나라에서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 옳다는 관점이 깔려있다.

그로부터 시대는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이미 '두 도시 살기' 현상의 전조는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러기 아빠의 경우도 한가족이 두도시에 나뉘어 산다는 점에서 이같은 현상의 한 유형으로 꼽을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보인다. 최근 들어 역이민이 늘고 있는데 그중에도 가장만이 한국에 와서 생활하는 경우가 눈에 띈다. 이 경우는 기러기 아빠와 구별해서 "뻐꾸기 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러기 아빠나 뻐꾸기 아빠는 공히 경제문제가 존립의 전제이다. 두 도시중에 한쪽에서 벌어서 다른 한쪽에서 소비하는 의존형은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없다. 두 도시 생활은 서로 연관성를 갖으면서도 독립적이어야 한다. 서울에서는 빠리를, 빠리에서는 서울을 사업대상으로 하는 모델이 바람직하다. 뻐꾸기 아빠는 양쪽 도시를 다 겪었다는 점에서 기러기아빠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

두 도시 살기가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정착하려면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이중언어, 문화의 차이등 많은 과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더 많이 살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욕구에 부응하고 있어 시시족들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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