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大濟 파문으로 풀이한 한국사회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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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大濟 파문으로 풀이한 한국사회의 딜레마
  • 이민호
  • 승인 2003.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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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陳大濟 파문으로 풀이한 한국사회의 딜레마
- '이중국적'보유는 한국에서 죄?
- '이중국적'과 '도덕성'의 상관관계는?
- 한국언론이 말하는 '국민정서 불일치'의 본질은?  ]

                                                             통일일보 이민호 ggilsan@kornet.net

盧武鉉 정부의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을 맡은 진대제(陳大濟)씨의 '이중국적'시비가 사회적 논쟁의 도마위에 올랐다.  진퇴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盧대통령은 "악의가 없는 만큼 문제삼지 않겠다"고 했으나, 정치권과 주요 언론들의 사퇴요구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개각때마다 홍역을 앓고 있는 '이중국적'시비에 한국여론은 왜 요동치는지, 문제시되는 국민정서 불일치-공직자의 도덕성은 대체 무엇인지, 과연 한국언론의 보도는 공정한 지 자체 분석해봤다.

陳장관이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것은 한국적 풍토에서 봤을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과거 YS정권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던 박희태(朴熺太) 현 한나라당 총재권한대행은 딸의 이중국적 문제로 취임 1주일만에 사퇴했고, DJ정권때도 송자(宋梓) 교육부총리와 장상(張裳)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식들의 이중국적 문제로 스스로 물러나거나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 때마다 장관들은 '이중국적을 악용했다'는 여론의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과연 이번 陳大濟 파문이 첫 번째 예외사례로 기록될 지 주목된다. 문제시되는 陳장관 관련 의혹은 장남의 이중국적 및 병역면제, 본인의 주민등록 문제로 요약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객관적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미국시민권자로 IBM연구원이었던 陳씨는 87년 三星電子로 스카우트되면서 가족을 이끌고 한국으로 귀국한다. 그의 가족은 재외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거소등록증'(재외동포법 적용, 주민등록증 대체 신분증)을 발급받아 서류상으로는 '국외이주'상태를 유지했고, 78년생인 그의 외아들은 98년 미국국적 보유를 근거로 병역면제를 받으면서 한국국적을 자동상실하게 된다. 진씨 본인은 2001년 6월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으로 공직에 취임하면서 미국국적을 포기하고 주민등록을 했다.
이같은 사실정황을 두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중국적을 아들 병역문제 해결을 위해 악용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한다. 또 투표나 주민세 납부 등 의무는 면제받으면서도, 한국과 미국에서 권리는 향유한 '이중생활자'라고 치부해버린다. 朝鮮-中央-東亞日報 등 한국의 메이저언론들은 陳장관 기용에 대해 「新정부 인사검증 시스템 부실」「도덕성의심받는 부적격 장관」이라고 일제히 비판하고, 연일 그와 관련한 각종 의혹들을 제기하며 사퇴압력을 가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이중국적 보유(미국 시민권 보유)자체를 문제삼아 그에 대한 자격 시비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공직자로서의 도덕성을 이중국적과 결부시키는 보도는 사실이 확대 왜곡됐거나 명백한 오보인 경우가 종종 목격됐다. 예를 들어 그가 한국에 거주하면서 미국 시민권을 활용해 예비군 훈련을 받지 않았다던가, 주민세도 납부하지 않았다는 등.
"87년 삼성전자에 5년 계약직으로 귀국, 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대비해 시민권을 갖고 있었다"는 진장관의 해명대로라면 그는 이 기간동안은 예비군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됐다. 진장관이 귀국후 주민등록을 했다면 91년까지 예비군 훈련을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삼성과 재계약을 한 92년이후에는 이미 만 40세가 넘어 예비군 편성대상에서 자동 제외됐으므로 '한국 거주기간동안 예비군훈련을 안받았다'는 보도는 확대 과장됐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제기한 세금문제도 "소득세와 주민세는 급여에서 원천징수됐고, 1년에 1번 부과되는 인두세형태의 주민세는 세대주인 부인이름으로 모두 냈다"(6일 陳장관 기자회견)는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언론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추측보도다.  '주민세도 안냈다'는 보도는 일반국민들에게 1년에 수십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의 사장이 미국시민권을 악용해 세금을 탈루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2가지 보도사례는 한국인들이 혐오하는 병역기피와 탈세를 문제삼으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쩌면 한국언론이 즐겨 사용하는 '국민정서 불일치'란 표현은 그가 이중국적자 신분을 악용했을 것이란 가정하에 나온 당연한 귀결일 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이중국적 보유를 통해 명백히 법을 어겼거나 악의적으로 활용했다는 증거는 아직까지 입증된 바 없다. 제대로 된 도덕성 검증을 위해선 그가 해명한 발언의 진위 여부에 초점을 둬야 하지만, 이와 관련한 후속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도덕성 검증 여부보다는 이중국적 보유 자체를 더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의심이 가며, 그렇다면 중세유럽에서의 '마녀사냥'식 보도일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이중국적'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뿌리깊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자제들의 병역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혹은 국내대학의 재외국민 특례입학을 위해 이중국적을 취득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적발됐고, 최근에는 미국시민권을 얻기 위해 원정출산이라는 기형적인 작태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국적자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이들이 실리만 취하고 법망을 피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하지 않는 편법을 사용했다는 데 있다.
문제는 이런 불순한 목적의 이중국적자때문에 외국에서 영주 또는 장기체류하고 있는 대부분의 선량한 재외동포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국사람들의 600만 재외동포에 대한 인식이「의무는 이행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받으려는 이기적인 존재」로 보편화돼 있는 것도 악의적인 이중국적자들의 행태 탓이 크다.
전문가들은 21세기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선진 정보를 얼마나 빨리 국가자산화하고 이를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盧武鉉 정부도 동북아중심(HUB)국가건설을 위해 韓商-韓民族 네트워크를 육성 발전시켜나가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전세계에 흩어진 한민족을 네트워크화해 정보창고로 쓴다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陳장관은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HP(휴랫팩커드)를 거쳐 IBM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돼 64Mb, 128Mb, 1Gb D램 개발을 주도한 한국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낸 핵심멤버다. 미국이민 1세로써 삼성전자의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장,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오른 그의 이력은 재외동포사회가 모국에 다시 애정을 갖게 하는 케이스가 될 수도 있다.
해외에서 성공한 고급두뇌가 陳大濟 파문을 보고 모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혹시 한국행을 결심했다가 이중국적자라는 이유로 도덕성에 낙제점을 매기는 한국사회가 무서워 티켓을 반려하지는 않을까?
陳장관은 현정권의 인수위가 설치돼있던 올 초부터 수차례 언론들에 의해 정보통신부 장관후보로 하마평에 올랐던 인물. 그에게 도덕적 흠결이 있다면 그 때 언론들이 지면을 통해 검증할 수 있었을 텐데, 인사가 발표된 뒤 연일 터져나오는 한국언론의 의혹제기가 '뒤통수치기' 또는 '정권 길들이기'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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