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오스트리아 슈타인브룩 야외 오페라 극장에서 한국인 성악가 3명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데뷔한 테너 신상근 경희대학교 교수와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 하우스 등에서 활약한 바리톤 한명원 한양대학교 교수, 비엔나 폴크스오퍼 전속 테너 유준호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공주는 잠 못들고’의 아리아로 널리 알려진 지아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테너 신상근은 남자주인공 카라프 타타르국 왕자역을, 바리톤 한명원은 중국 황제의 세 신하 중 핑 역을, 테너 유준호는 퐁 역을 각각 맡아 한국 성악인의 명성을 선양했다.
이들이 선 무대는 비엔나에서 남동쪽으로 약 7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세인트 마르가레텐 마을의 유명한 슈타인브룩흐 야외극장이다. 이 극장은 옛 합스부르크 왕가가 비엔나의 쇤브룬 궁전과 비엔나 국립오페라 극장을 건축할 때 사용한 화강석 채석장이었다.
거대한 바위 병풍 조각처럼 펼쳐진 절벽 앞 무대와 그 앞에 설치된 4,200석의 좌석을 내려다보고 노래하는 무대이다. 하늘엔 별이 빛나고 천연동물로 지정된 새들이 공연 중에 날아들기도 하는 낭만적인 곳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잠시 진정된 지난 7월 14일부터 8월 21일까지 공연된 <투란도트>는 타데우스 슈트라스베르겍 연출, 부다페스트 필하모닉과 비엔나 오케스트라 필하모니 합창단 협연에 쥬세페 핀지가 지휘했다.
남자 주인공 카라프 왕자 역은 트리플 캐스트로 테너 신상근과 레오나드도 카이미, 미케일 쉐샤베리드제이, 핑 역은 더블 캐스트로 바리톤 한명원과 빈센조 타오르미나, 퐁 역 역시 더블 캐스트로 테너 유준호와 엔리코 카사리가 맡았다.
테너 신상근은 공연을 마치고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옛 채석장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 감동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독일 도르트문트 극장과 다름슈타트 극장에서 카라프 왕자 역을 맡았던 경험과 독일 에를푸르트 야외극장에서의 오페라 <토스카> 주연 경험이 이번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서 여러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테너 신상근은 “왕자의 큰 수염이 공연 중 바람에 날려 떨어지려고 해 애를 먹었고, 넓은 무대의 철제 계단에 긴 옷이 걸려 넘어질 뻔한 고충도 있었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을과 연말에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카르멘>과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할 예정이라고 말한 테너 신상근은 내년에 국립오페라단과의 오페라 <아틸라> 외에 독일 라이프치히 오페라와의 <카르멘>과 <라 토스카>가 예정돼 있다고 밝혔다.
핑 역으로 호평을 받은 바리톤 한명원은 “11년 전 중동 오만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한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역으로 나온 소프라노 마르티나 세라핀과 류 역의 소프라노 도나타 롬바르디를 다시 만나 함께 노래한 것이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투란도트와 카라프 왕자에게는 질이 좋은 황금 마이크를 주고 그 외의 배역들에겐 다소 질이 낮은 마이크를 주는구나 하고 보조역들이 웃었다”고 공연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고음이 연속되는 퐁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는 평을 받은 테너 유준호는 “동양인들을 좀처럼 잘 넣어주지 않는 유럽의 오페라단에서 한국인 가수 3명을 한 무대에 세워준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한국인 성악가들의 실력 인정이자 국력 신장의 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녀 류가 제 3막에서 섬기던 왕과 왕자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아리아 ‘당신은 얼음에 싸여 있군요’를 부를 때 채석장의 새들이 무대로 날아든 광경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