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홍익인간(弘益人間)도 모르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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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홍익인간(弘益人間)도 모르는 한국인
  • 김탁 한뿌리사랑 세계모임 대표
  • 승인 2021.06.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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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념에 홍익인간을 지우고 민주시민으로 대체하자는 국회의원이 있다
김탁 한뿌리사랑 세계모임 대표<br>
김탁 한뿌리사랑 세계모임 대표

예전에 철도청에서 운영하던 기차를 타보면 어김없이 차내에 나타나서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열차 내에서 독점적인 판매권을 가진 재단법인 홍익회 소속 판매원이었다. 국사시간에 홍익인간(弘益人間)은 고조선의 건국이념이라고 배웠는데 하필 이런 상행위에 홍익을 붙였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훗날 돌이켜보니 공익재단이라면 사용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근자에 몇몇 국회의원들이 우리나라 교육이념에서 뜻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홍익인간’을 빼고 ‘민주시민’을 넣자는 법을 발의했다가 여론의 지탄을 맞고 며칠 만에 철회했다고 한다. 문제는 법안을 발의한 주체가 반민족 단체도 아니고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 여당 국회의원 12명이라는 사실이다. 큰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었는지 언론에서도 대수롭지 않은 해프닝으로 치고 국민의 관심사에서도 멀어지는 것 같아서 한마디 해야겠다. 

“때를 만나면 더벅머리도 성공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사회에서 무슨 짓을 하다가 정치바람을 타고 국회의원까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대표자로서 너무도 한심한 수준의 역사의식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 아닌가 한다. 

임기 4년짜리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국 최고의 지성인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민으로부터 국정을 위임받은 대표자로서 기본적인 역사의식과 민족사상에 대한 소양은 갖추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이고 의무이다. 

여의도 정치수준이 국민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홍익인간을 지우자는 발상은 역사의식이 메마른 정치꾼의 민낯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다. 
 
어찌됐건 한국인치고 그 뜻을 잘 이해하든 못하든 간에 ‘홍익’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인은 홍익인간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 무엇으로 이롭게 한다는 것인지 참 모호하다. 

절간이나 교회에 가면 복을 구하고 천당에 데려가 달라고 비는데 이것도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 넓게 보면 홍익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인식의 한계에 부딪치면 법안을 발의하기 전에 전문가한테 자문을 구하던지 깨우치려고 노력을 했어야 했다.
 
홍익인간에서 ‘홍익(弘益)’은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롭게 하는 홍익의 대상은 인간만이 아니다. 인간세상(人間世上)의 준말로 새겨야 원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세상은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 즉 금수와 초목을 포함하는 지상(地上)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홍익인간은 뒤에 따라 붙는 재세이화(在世理化)까지 포함해서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있으면서 이치로써 교화한다’는 의미로 새겨야 한다.

그러면 무슨 이치로써 교화한다는 것인가? 하늘의 가르침, 즉 천도(天道)를 인간세상에 널리 펴서 교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삼국유사>에 전하는 환웅천왕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하강하여 신시(神市)를 개천(開天)한 진짜 목적이다. 

나라를 건국하는데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세상을 교화하기 위해서 건국했다는 나라는 세계 역사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BC 2333년에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도 이러한 건국이념을 계승하고 위로는 하늘을 섬기고(敬天) 아래로는 백성을 사랑했다(愛人). 

천도와 홍익인간의 개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내용이 최치원 선생이 쓴 ‘난랑비 서문’에 있다. 신라의 화랑이었던 난랑(鸞郞)이 죽자 그를 추모해 쓴 비문이다. 화랑제도는 고구려의 조의선인처럼 평소에는 명산대천을 찾아 견문을 넓히고 심신을 수련하다가 국난이 발생하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선도(仙道) 무사조직이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이다(國有玄妙之道 曰 風流).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하게 갖추어 있으니 
기실은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다(說敎之源 備詳仙史實內包含 三敎)
군생(群生)을 두루 다함께 교화하는 것이다(接化群生).”

풍류(風流)는 술 마시고 시를 짓고 유희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밝달’의 음을 한자로 ‘바람風’과 ‘달月’을 취하여 풍월이라고 표현한 것인데 통일신라 말기에 풍류로 와전된 것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밝달도’를 가물가물하게 아득(玄)하고 깊고도 묘(妙)한 도라는 의미로 ‘현묘지도(玄妙之道)’라고 했다.

유불선을 두로 섭렵하고 고려 말 수문하시중을 역임하신 이암 선생은 <태백진훈>에서 현묘를 이렇게 정의했다.
 
“비어있는 듯하나 빈 바가 없고, 밝으나 따로 밝은 바가 없고, 굳세지만 굳센 바가 없는 것으로 삼신일체(三神一體)의 무기(無機)와 더불어 한 몸이 된 것을 현(玄)이라 하고, 비어있음이 없으나 비어있고, 밝은 바 없으나 밝고, 굳센 바 없으나 굳세어 능히 스스로 정신이 변화하여 선하고 아름답고 완전해지는 것을 묘(妙)라고 한다. 이것은 일체가 된 삼신이 하는 바이며 능히 천하만세에 통하는 것이다.(虛焉而無所虛 明焉而無所明 健焉而無所健者 與三神一體之無機 爲同體者 曰玄, 無所虛而虛焉 無所明而明焉 無所健而健焉 能自神而化之爲善美完全者 曰妙, 此一體三神之爲 能通於天下萬世者也).”

번역이 부족한 듯하여 원문을 첨부해 두었으니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한 분들은 스스로 자득하기 바란다.
 
이러한 ‘현묘지도’를 펴는 구체적인 행위를 ‘군생(群生)을 두루 다함께 교화하는 것이다(接化群生)’라고 했다. ‘접화군생’은 유 불 선 삼교를 포함하는 ‘현묘지도’로서 세상의 모든 군생을 가르치고 변화시켜 천상과 같은 지상선경(地上仙景)을 만드는 것을 이름이니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표현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중국, 일본 등 동양은 물론 서양의 어떤 나라도 가지고 있지 않는 유일무이한 건국이념을 가지고 있다.
 
천상과 지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하늘과 인간이 공동의 노력으로 하늘을 본따서 지상천국이라는 이상향,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홍익인간에 담겨있는 것이다. 선도사상에서는 이것을 ‘신인합발(神人合發)’이라고 표현한다.
 
서기전 5세기에 플라톤이 제창한 가장 이상적인 철인정치(Aristocracy) 개념을 그보다 2,000년을 앞서서 건국이념으로 구체화시킨 민족이 배달 한민족이다. 만약에 플라톤이 동방의 배달국과 고조선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가 추구했던 이상국가의 표본으로 삼았을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가장 이상적인 지배체제는 철인정치이고, 그 다음이 몇몇 철인들이 공동으로 다스리는 과두정치, 그 다음이 일반 국민이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정치이다. 최악의 정치는 민주정치가 타락한 중우정치라고 했다. 

이런 고차원적인 이념을 지우고 서양의 근대 정치이념인 한낱 민주시민을 넣자는 것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의 발상이다. 역사를 외면하고 근본을 망각한 한국의 건달정치 수준이 빚어낸 참사이다. 이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였다면 고조선의 건국이념을 훼손한 혐의로 의원직을 사퇴하고 국민 앞에 사죄했어야 할 중대한 국기문란 사건이다.
 
산업혁명에 먼저 성공한 서양이 동양을 앞서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여년이다. 그 이전의 문명사를 보면 동양이 서양을 압도했다. 중국사, 인도사,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나라는 조선왕조가 공리공론으로 날밤을 새우는 주자학에 머물다가 근대화에 뒤쳐졌다. 서세동점의 참혹한 발길에 차여 조선이 망하고 일제치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서양을 따라잡는 것이 곧 근대화라는 신념으로 부지런하게 서양으로부터 과학문명과 산업기술, 민주정치 제도를 배웠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여기까지이다. 그동안 우리는 소중한 우리 것을 의도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폄하하고 애써 무시했다. 역사와 고유사상이라는 나라의 근본을 잃고도 무엇을 잃은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홍익인간을 지우자는 교육법 개정안 발의는 근본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철지난 민주가 아니다. 정치적인 의미의 민주시민은 홍익인간이라는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에 이미 담겨있다.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국민만을 위한 교육이념을 넘어서 대외정책으로 활용해도 세계 지도국으로서 국격을 높일 수 있는 훌륭한 대외정책이 될 수 있다. 

홍익은 세계정치를 주도하는 미국이 제시하는 인권외교보다 훨씬 고차원적이고 심오한 철학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 조상들이 전해준 홍익인간이라는 위대한 인류의 정신유산을 간직한 우리는 문화민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할 책임이 있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국혼(國魂)을 다시 찾아 세계중심국으로 도약해야 할 때이다. 서양이 자랑하는 천년 로마제국이 울고 갈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2,000여년을 존속했던 고조선 역사에 우리의 국혼이 담겨있다. 근대 조선이 낳은 천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했다. 홍익인간이라는 국혼을 잘 가꾸고 지키는 것이 아(我)를 보존하는 길이다. 조상이 물려준 역사에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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