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칼바람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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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칼바람을 지나며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1.02.0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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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비유는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표현입니다. 비유를 들으면 금방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게 비유의 위력입니다. 바람을 비유하는 말 중에서 ‘칼바람’은 너무 강력해서 놀랍니다. 바람을 칼이라고 한 겁니다. 바람이 지나가면서 내 살을 베어 버리거나 찢을 것 같은 두려움도 생깁니다. ‘살을 에는 추위’라는 말에도 비슷한 감각이 느껴집니다. ‘에다’는 칼 따위로 도려내듯이 벤다는 의미입니다. 칼바람과 에는 추위는 한 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추위입니다. 그래서 칼바람은 두려움의 비유가 되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좀 추워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따듯한 곳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일 겁니다. 한 데에서 추위를 견디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매서운 추위는 그야말로 무섭고 두려울 것입니다. 가족 중에 누구라도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겨울 추위가 야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지나갑니다. 쌩하고 지나가는 바람에서 우리는 칼을 봅니다. 마치 얼음장이 날카롭게 깨어져 바람결을 따라 날아드는 모습입니다. 바람은 원래 소리가 무서운 법인데, 소리가 모습으로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바람이 상처가 되기 때문일 겁니다. 날카로운 소리에서 날이 선 칼을 봅니다. 

그래도 겨울바람이 일 년 내내 계속 되지 않음은 희망입니다. 바람을 맞고 선 소나무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몸을 기울이고, 그러면서도 세상을 향합니다. 오랜 시간을 견디며 자라납니다. 소나무가 겨울의 상징이 된 것은 겨울바람의 추위에도 푸르게 서있는 모습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소나무를 보면서 인고(忍苦)의 세월을 떠올립니다. 고통을 말없이 이겨낸 대견함에 보고만 있어도 감동이 옵니다. 

소나무의 껍질을 보면서 저는 다시 칼바람을 떠올렸습니다. 칼바람에 상처 입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다 터 버린 손등이나 살갗의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갈라진 모습이 고통의 상징으로 다가옵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갈 듯이 갈라진 모습에서 우리는 때로 아름다움을 봅니다. 참 묘한 일입니다. 지식과 감정의 차이를 느낍니다. 안쓰러움이 감동이 되는 일도 많습니다. 참 어려웠을 겁니다. 힘든 세월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 이겨냄이 고맙습니다.

얼마 전 가까운 분에게서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나무의 사진과 글을 받았습니다. 여기저기 잘리고 꺾인 모습이었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겨낸 멋이 있었습니다. 글을 보내신 분은 비워냄을 이야기했습니다. 겨울나무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간에 스스로를 맡긴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운 시간도 즐거운 시간도 지금이라서 의미가 있습니다.

인고의 시간은 지나고 나면 멋이 되는데, 지내는 동안은 칼바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는 사람에게 겨울은 참으로 잔인합니다. 그래서 남보다 먼저 고통 속에서 칼바람을 맞은 이들이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칼바람을 지난 이의 가슴이 말없이 서 있는 소나무처럼 쓸쓸하지만 따듯합니다. 칼바람이 불수록 서로의 따듯함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 바랍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옵니다. 세상의 이치가 참 놀랍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겨울에는 좀 추워야 한다고 했을 겁니다. 물론 봄에도 꽃샘추위가 있을 겁니다. 또 다른 어려움도 오겠죠. 그러나 겨울바람과는 다른 봄바람이 불 것이고, 하나 둘씩 꽃이 피어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칼바람을 이겨낸 서로가 더 고맙겠죠. 아, 갑자기 매화, 동백이 보고 싶고, 개나리, 진달래가 보고 싶네요. 어서 칼바람을 지나가게 하고, 꽃 피는 봄이 오면 따뜻한 햇살 가득 맞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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