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세계도자실’과 ‘일본실’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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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세계도자실’과 ‘일본실’ 개관
  • 이현수 기자
  • 승인 2021.01.2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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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집트실을 시작으로 2년에 걸친 세계문화관 조성 완료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선보이기 위해 세계문화관에 ‘세계도자실’과 ‘일본실’을 개관했다고 1월 25일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용산 새 박물관에 ‘아시아관’을 신설한 바 있다. 이후 2019년에는 ‘아시아관’을 ‘세계문화관’으로 개편해 첫 번째 세계문화 전시실로 이집트실을 열었고, 중앙아시아실, 인도·동남아시아실, 중국실을 개편한 데 이어, 올해 ‘세계도자실’과 ‘일본실’을 꾸밈으로써 세계문화관 조성을 완료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도자실 전시품. (왼쪽부터) 백자 청화 사슴무늬 접시(중국 명 1610~1630년), 커피포트(일본 에도 1730~1750년), 델프트 도기 주전자와 화로(네덜란드 1775~1778년경)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도자실 전시품. (왼쪽부터) 백자 청화 사슴무늬 접시(중국 명 1610~1630년), 커피포트(일본 에도 1730~1750년), 델프트 도기 주전자와 화로(네덜란드 1775~1778년경)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도자실은 동서교류의 대표적인 산물인 도자기를 주제로 동서 문화가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 일본실은 가깝지만 먼 이웃인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무사(武士)’에 초점을 맞춰 전시했다고 박물관은 설명했다.  

박물관에 따르면, 세계도자실은 특정 지역의 문화를 소개하는 것에서 벗어나 세계의 여러 문화가 교류하는 양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동서교류의 대표적인 산물인 도자기는 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주제이다. 

도자기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해 한반도와 일본을 비롯해서 동남아시아에 전해졌고, 아라비아반도까지 수출됐다. 신안 앞바다에 침몰한 신안선은 14세기 일본으로 향하던 무역선으로 당시 교역 상황을 잘 보여준다. 

16세기 이후 포르투갈에 의해 해상 무역로가 개척되면서 동양과 서양의 교류 폭이 넓어졌고, 중국의 청화백자에 열광한 유럽인들은 처음에는 이를 왕성하게 수입했다. 유럽 왕실은 자신이 원하는 문양을 넣은 자기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들은 단순히 수입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모방하기 시작했고,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18세기 초에는 드디어 독일 마이센에서 제대로 된 자기를 만들게 된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며 자기를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췄고 세계 자기 생산의 중심지가 유럽으로 옮겨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러한 도자기 동서교류사를 담기 위해 네덜란드의 국립도자박물관과 흐로닝어르박물관에서 유럽의 도자기를 차용했다. 네덜란드는 과거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고 동서무역을 주도한 국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2019년에 네덜란드 국립도자박물관에서 열린 ‘Sunken Treasure(침몰선전)’ 특별전에 박물관 소장품인 신안선 출토 도자기를 10개월간 출품하는 등 상호 신뢰를 쌓아왔으며, 코로나19로 직원 왕래가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비대면 영상회의로 출품 관련 업무의 대부분을 처리했다. 세계도자실은 2022년 11월 13일까지 약 2년 간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도자실 전시품. (왼쪽부터) 백자 청화 사슴무늬 접시(중국 명 1610~1630년), 커피포트(일본 에도 1730~1750년), 델프트 도기 주전자와 화로(네덜란드 1775~1778년경)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일본실 전시품. 갑옷과 투구(에도 시대 1603~1868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일본실은 ‘무사(武士)’에 초점을 맞춰 내용과 시설이 대폭 개편됐다. 본래 귀족들에게 고용된 신분에 불과했던 무사들은 차츰 영향력을 키워 중앙 권력을 장악하고 지배 계급이 됐다. 1192년 최초의 무사 정권인 가마쿠라 막부가 세워진 뒤 1868년 에도 막부가 멸망할 때까지 약 700년 동안 무사는 일본의 지배계급이었다. 

그러나 무사들은 무력만을 앞세운 지배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일본 문화와 예술을 후원해 각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흐름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는 ‘전사(戰士)’라는 자아를 유지하면서 ‘통치자(統治者)’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혹자는 일본 ‘무사’ 계급의 영향력을 조선의 ‘선비’에 비유하기도 한다. 따라서 ‘무사’에 대한 이해는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를 위해 일본실에는 칼과 갑옷 등 무사를 상징하는 무구와 함께 무사 계급의 후원으로 발전했던 노(能), 무사의 미학을 반영한 다도, 무사 계급의 여성이 결혼할 때 지참하는 마키에 혼례도구, 그리고 다이묘가 도쿠가와 쇼군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고급자기 ‘나베시마’를 전시했다. 

신영호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부장은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며 지배자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던 무사 계급의 면모를 새로운 일본실에서 확인하기 바라며, 이를 통해 여전히 먼 이웃인 일본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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