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몸소와 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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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몸소와 손수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0.12.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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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몸소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손수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몸소는 직접 제 몸으로라는 뜻입니다. ‘친히’와 비슷하게 쓰입니다. 물론 친히에서 ‘친(親)’은 한자입니다. ‘손수’라는 말도 몸소와 비슷하게 쓰입니다. 굳이 설명을 달리하자면 손수는 직접 제 손으로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 사용에서는 손이나 몸이나 거의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손도 몸이고 몸도 손인 셈입니다. 

그런데 손수는 ‘손’과 ‘수’의 복합어처럼 보입니다. 특히 손 수(手)라는 한자가 있어서 우리말 손과 한자어 수가 합쳐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몸소와 손수는 사실 같은 구성입니다. 손수의 옛말은 ‘손소’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수라는 한자에 끌려서 손수로 발음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원을 혼동하기 쉬운 우리말 어휘입니다. 어려워서 공부에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보통 몸소나 손수, 친히라는 말을 들으면 나이 드신 분이나 지위가 높은 분이 생각납니다. 직접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직접 하는 모범적이거나 존경스러운 모습을 떠올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나 아랫사람이 몸소, 손수, 친히 어떤 일을 한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원래 하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몸소는 대접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그것을 물리치고 하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데 직접 하니까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몸소 어떤 일을 하면서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일은 원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이거나 내가 해도 되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 다른 사람이 해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점점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손도 멈춰있습니다.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습니다. 밖에서도 집에서도 동작이 느려집니다. 누군가의 양보나 배려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몸소의 반대말은 의존이고 게으름입니다. 살면서 몸소 하는 일이 줄어든 것을 출세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관점이란 게 보통 그렇습니다. 가방도 자기가 들지 않고, 운전도 자기가 하지 않습니다. 물도 직접 떠 마시지 않습니다. 커피도 안 타죠. 청소는 어떨까요? 자기가 머무르는 공간이지만 청소는 해 본 지 오래입니다. 도대체 직접 하는 일이 없습니다. 물론 전문가는 전문 분야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몸소 자기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왜일까요?

몸소가 더 빛을 발하는 장면은 굳이 본인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할 때입니다. 길거리를 청소하고,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힘들어 하는 사람을 돕는 모습은 몸소나 손수가 세상을 향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이죠. 누구나 몸소 먼저 나서서 하려고 하고, 서로를 도우려 한다면 세상은 밝아질 겁니다.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모습에서 우리는 몸소의 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도 세상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고, 더 사랑하여야 할 겁니다. 그게 참다운 몸소의 미학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미국에 계신 선생님께 코로나 19에 어떻게 지내시냐고 안부 글을 올렸더니 몸소가 가득한 답이 왔습니다. ‘작은 일도 몸소 하며 자질구레한 일들에 훌쩍훌쩍 날이 갑니다. 울기도 몸소, 그립기도 몸소, 괜찮기도 몸소, 동지가 다가오며 해가 짧아지니 자주 밤길도 몸소 걸으며 다 좋은 세상이 참 기쁘고 고맙습니다.’ 몸소가 한가득이어서 더 기뻤습니다. 선생님이 건강하시다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몸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저도 몸소 하는 일을 늘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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