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입양인 시민권 법안’ 통과를 위해 한인사회가 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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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입양인 시민권 법안’ 통과를 위해 한인사회가 다 함께
  • 서승건 재외기자(애틀랜타)
  • 승인 2020.12.0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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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건 재외기자
서승건 재외기자

우리가 외면했던 한인입양인들의 슬픈 삶 이야기

지난 2012년 미국에서 추방돼 한국에서 생활하던 김상필(43세·미국명 필립 클레이)씨가 5년 후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한국계 국제입양인들의 합법적 신분 취득과 사후 관리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상필 씨는 1984년 입양 당시 양부모가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지 않아 무국적자 신분으로 성장했다. 이후 범법행위로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무국적자 판정을 받아 강제 추방됐다. 그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자신에 관한 기록과 부모를 찾으려 5년여 동안 전국을 돌며 애를 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경기도 고양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한호규(38세·미국명 몬티) 씨는 2009년 11월 4일 한국으로 추방됐다. 미아로 등록돼 8세에 입양을 갔던 몬티는 두 번의 파양을 거듭하며 학대로 얼룩진 삶을 살았다. 그는 트럭 운전사로 생활하고 있었으나 트럭에서 마약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고 곧바로 추방 재판에 회부됐다. 몬티의 추방 재판을 맡은 미국의 판사는 서류상 문제로 미국 시민이 아니라며 그를 추방했다. 완전한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해 군대에 자원, 걸프전까지 다녀온 그에게는 잔인한 판결이었다. 한국으로 추방된 몬티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가 버려진 아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친어머니는 잃어버린 아들을 30년간 찾아 헤맸었다.

한인 입양인 아담 크랩서의 경우 미국 정부는 20년 전 이미 복역을 마친 그의 범죄기록을 문제 삼았다. 아담의 나이 17살 때의 기록이었다. 아담 크랩서(한국명 신성혁 혹은 신송혁)는 1979년 3월 8일 두 살 터울의 누나(한국명 신성애 혹은 신송아)와 함께 기독교 집안에 입양됐다. 따뜻하고 유복한 가정을 꿈꿨던 남매는 지하실로 끌려 들어가 채찍질을 당하는 등 폭력에 시달렸다. 결국 노숙자 생활을 하던 어린 아담은 입양 당시 한국에서 가져온 성경, 고무신, 그리고 인형을 되찾기 위해 크랩서 부부 집에 몰래 들어갔다. 17세의 아담은 크랩서의 신고로 주택침입죄로 그렇게 범죄자가 됐다. 그 사건으로 20년이 지난 2015년 아담은 추방 재판을 받게 됐다.
 

우리는 여지껏 한인입양인들이 우리와 한핏줄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왜 그랬을까?

엘라(김양애·1955년생)는 어린 시절부터 양부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했다. 그녀의 양부는 엘라의 딸에게까지 성추행을 시도했으며 그에 대한 상처로 엘라와 딸은 사이가 멀어지고 유일한 가족인 남편마저 사망했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 시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엘라의 양부모 또한 국적취득 문제를 방치했다. 

2007년 9월, 13개월 된 혜민이가 미국 양어머니에게 살해됐다. 생후 7개월 때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기독교 입양단체를 통해 카이리 부부에게 입양된 지 6개월 만이었다.

2008년 3월 미국 아이오아 주에서 한인 입양아동 4명이 둔기로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됐다. 양아버지 스티븐 스펠은 부인과 한국에서 입양한 아들 2명, 딸 2명을 둔기로 수차례 머리부위를 때려 죽였다. 스펠은 인근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불이 난 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수는 2010년 미혼가정에서 미숙아로 태어나 위탁가정 등에서 지내다 만 3세가 지난 2013년 10월 미국으로 입양됐다. 입양된 지 3개월 만인 지난 2014년 2월 3일 숨진 채 발견됐다. 현수는 미국 국가안보국(NSA) 직원이던 양아버지 브라이언 오캘러핸에게 맞아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인사회는 한인 입양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2020년 4명의 한국계 미 연방 하원의원이 탄생했다. 소속 정당이 다르지만 한인사회가 직면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초당적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인사회는 한국에서 입양된 입양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권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는 입양인들의 시민권 취득을 위한 ‘입양인 시민권 법안’의 통과를 위해 다함께 힘을 합쳐야 할 시점이다.

미국 내 소수계 커뮤니티 입장에서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 117회 회기에는 한인 정치인 4명이 연방 하원의원으로 국회에 진입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기회에 한인단체들과 각 지역 한인회가 동참해 다함께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역할을 통해 입양인 시민권 법안이 통과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바이든 “나는 한국인 입양아를 미국인으로 인정하는데 노력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연합뉴스 기고문에 “나는 더 나은 삶을 일구기 위해 미국으로 와 열심히 일하는 이민자 가정을 지원하면서 일생을 싸워왔다. 모든 사람을 존엄하게 대하고 낯선 이들을 반기며 약한 이들을 보호하는 게 나의 원칙이다. 나는 망가진 이민 시스템을 고칠 것이고 등록되지 않은 한국인의 시민권을 위한 로드맵을 제공할 것이며, 수만명의 한국인 입양아를 미국인으로 인정하는데 노력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현재 미국 내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해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입양인들은 미 전국에 3만5천여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한인 입양인은 절반이 넘는 1만8천여명으로 가장 많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2001년 외국에서 태어난 입양인이 입양가정의 부모 중 최소 한명이 미국 시민일 경우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하는 소아시민권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제정일 2001년 2월 27일 기준으로 만 18살 미만의 입양아동들에게만 적용됐기 때문에 2001년 2월 27일 기준으로 18살이 넘은 성인들 수만명은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 법의 허점을 보완하고자 소아시민권법 제정 당시 성인이 된 해외 입양인들에게 자동적이고 소급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입양인 시민권 법안이 2016년부터 매 회기마다 발의됐다. 그러나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 통과에 실패했다. 2019년 5월에 민주당의 애덤 스미스 하원의원이 발의했고, 상원에도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있는 상황이다.
 

미주 한인사회가 해야할 일

입양인 시민권 법안 발의와 관련해, 한인 1.5세인 최석호 캘리포니아주 의원이 발의한 결의안 '무국적 입양아에 대한 시민권 부여'는 한국으로 강제 추방된 한인 입양인 아담 크랩서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바탕으로 추진됐으며,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해외에서의 입양 절차를 간소화하고 입양인들에게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욕 주의회에서도 피터 구 뉴욕시의원과 김민선 미주 한인이민사박물관장은 지난 1월 13일 뉴욕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방의회에 상정된 ‘입양인 시민권 자동부여 법안’의 통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해 뉴욕시의회 차원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고도 양부모의 부주의 등으로 인해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한인입양인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 한인사회에서 입양인 시민권 법안의 절실함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인사회 차원에서 공공외교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이번 기회에 입양인 시민권 법안의 통과를 위해 한인사회 대표 단체인 미주총연의 역할도 중요한 부분이다. 각 지역 한인회와 뜻을 모아 공공외교의 역할을 통해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각 지역 주의회와 관련된 정보를 각 지역 한인회와 공유해 주의회와 친한파 의원들에게 이 메일을 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동남부한인회연합회도 동남부 지역의 입양인들을 위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최대한 많은 공동발의자들을 참여시켜 주의회 내에서 법안이 발의, 통과되도록 노력해 무국적자인 한인입양인들의 삶을 지켜줘야 한다.
 

“나는 미국을 위해 싸웠다. 미국은 나를 위해 싸워야 한다”

1982년 한국에서 태어나 1984년 미국에 입양된 리아(37) 씨는 미국에서 35년을 살았다. 학교를 마치고 미 해군에 입대해 10년 동안 복무했다. 그는 군복무 중이던 2007년 자신이 속한 부대가 이라크로 파견갈 때 시민권이 없어 갈 수 없었다. 아직도 그가 시민권이 없는 것은 미국에 입양된 직후 양부모가 귀화 절차를 끝내지 않은 채 이혼해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그의 현재 법적 신분은 미국 영주권을 가진 한국 국적자이다. 리아 씨는 2019년  11월 13일 미국 연방의회 건물에서 열린 ‘입양인 평등을 위한 전국연대’ 발족식에 참석해 자신의 삶을 소개하고 “나는 미국을 위해 싸웠다. 미국은 나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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