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을사늑약을 막기 위한 고종 황제와 헐버트의 눈물 어린 전보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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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을사늑약을 막기 위한 고종 황제와 헐버트의 눈물 어린 전보 교환
  •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
  • 승인 2020.11.1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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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고종황제와 특사 헐버트가 을사늑약 저지 위해 분투한 내용 담긴 뉴욕타임즈 기사 발굴해 최초 공개

1905년 12월 13일자 ‘대한제국 조약을 부인하다’와 다음날인 14일자 ‘대한제국 황제의 특사, 미국 국민에 호소’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는 2020년 11월 17일 을사늑약 115주년을 맞아, 고종 황제와 고종이 비밀리에 미국에 특파한 호머 B. 헐버트(Homer B. Hulbert)가 을사늑약을 막아보고자 분투한 내용이 담긴 <뉴욕타임스> 1905년 12월 13일자와 14일자 기사 전문을 발굴해 최초로 원문과 번역문을 공개한다.

헐버트는 최초의 한글 교과서를 저술하며 잠자고 있던 훈민정음을 깨운 한글자강운동의 선구자이자, 대한민국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건국훈장과 금관문화훈장을 모두 수훈한 민족의 은인이다. 

이번에 발굴해 번역문과 함께 공개하는 기사는 뉴욕타임스 1905년 12월 13일자 <대한제국 조약을 부인하다>와 14일자 <대한제국 황제의 특사, 미국 국민에 호소>이다.  

고종 황제, 헐버트 특사를 미국에 파견  

고종 황제는 1905년 10월 을사늑약을 막아보고자 일본 몰래 헐버트를 미국에 특사로 파견해 자신의 친서를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에게 전달해 일본의 침략을 막아달라고 호소하기로 결심했다. 이는 1882년에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 ‘만약 제3국이 조약 일방에게 부당하게 또는 강압적으로 간섭할 때에는 조약상대국은 원만한 타결을 가져오도록 주선한다.’는 소위 선위조처 조항이 있기 때문이었다. 

헐버트는 여행 도중 일본이 친서를 강탈할까봐 친서를 미국공사관 외교행랑 편에 워싱턴으로 미리 보낸다. 이때 미국 공사는 헐버트의 방미 목적을 일본에게 알리고, 당황한 일본은 을사늑약을 하루빨리 해치우기로 결심한다. 

헐버트는 1905년 10월 21일 비밀리에 서울을 출발해 일본 요코하마에서 배편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이어서 기차로 워싱턴으로 갔다. 백악관에 들러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지만 백악관은 국무부를 통하라고 하고, 국무부는 헐버트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 

미 국무장관 헐버트 특사 면담을 고의로 지연

백악관과 국무부는 서로 핑퐁을 치며 헐버트를 외면하다가 일본이 서울에서 을사늑약을 해치운 뒤인 1905년 11월 25일에야 미국 국무장관이 헐버트를 만나준다. 이때는 이미 미국이 일본이 발표한 을사늑약의 완결에 대한 성명을 접수하고, 미국은 곧바로 을사늑약을 승인하고 제일 먼저 공사관을 서울에서 도쿄로 철수했다. 

헐버트를 만난 국무장관은 헐버트에게 도리어 “당신은 미국이 일본과 문제가 있기를 바라오?”라고 호통을 친다. 헐버트는 이는 국가 간 조약에 대한 신의의 문제라고 항변하지만 국무장관은 헐버트의 항의를 묵살해 버린다.

을사늑약은 국제법적 효력이 없다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 직후 워싱턴에 있는 헐버트에게 전보를 쳐 자신은 을사늑약에 서명하지 않았기에 조약이 무효이니 미국을 설득해 을사늑약을 뒤집으라고 요청한다. 고종은 전보를 중국 지푸(지금의 엔타이)에서 친다. 일본이 전보 내용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중국에 사람을 보낸 것이다. 헐버트는 이 전보를 1905년 12월 11일에 받아 12월 14일에 미국 국무부에 제출했다. 이 전보는 을사늑약이 고종의 의사가 아니라는 증거로서 을사늑약은 국제법적 효력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뉴욕타임스> 12월 13일자 및 14일자 기사에 의한 역사 발굴 

그런데 이번에 <뉴욕타임스> 1905년 12월 14일자 기사를 보니 헐버트도 고종에게 답신 전보를 쳤다. 헐버트는 미국 행정부가 대한제국 황제의 친서 수령을 거부하고 황제의 특사인 자신을 무시한다며 지금까지 자신은 비밀하게 행동했으나 이제부터는 자신의 방미 목적을 언론에 알리겠다고 고종에게 답한다. 그러면서 미국 행정부가 아닌 미국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겠다는 의중을 고종에게 전한다. 

또한 헐버트는 <뉴욕타임스>와 회견하며 일본이 한국에서 저지르는 만행을 고발했다. 특히 일본인들이 강압적으로 한국인들의 부동산을 빼앗자 한국인들이 부동산 권리증을 들고 헐버트를 찾아와, 부동산 명의를 헐버트 이름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일본인들에게 부동산을 뺏기지 않기 위함이었다. 헐버트는 그리하여 자신 명의로 된 부동산이 자그마치 5만 에이커라고 했다. 

헐버트는 일본은 사실상 한국을 지배하고 있으며 한국인들에게는 어떠한 인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본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대한제국은 당분간 노예처럼 종복의 길을 가야할 것 같다고 한국인의 앞날을 불길하게 예고했다. 

을사늑약을 저지하려는 고종 황제의 투쟁 증언
 
이번에 발굴한 <뉴욕타임스> 기사는 고종 황제가 헐버트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미국을 움직여 일본의 보호조약을 막아보려고 끝까지 투쟁하는 고종의 의지를 증언하고 있다.

또한 고종이 자신은 보호조약에 서명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무효라는 점을 헐버트를 통해 미국에 통고하고, 헐버트가 <뉴욕타임스> 등 언론을 통해 조약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공표함으로써 을사늑약이 국제법적으로 명백히 무효라는 사실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재삼 확인시켜 주고 있다. 

특별하게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것은 고종 황제와 헐버트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서울과 워싱턴에서 눈물의 전보를 통해 을사늑약을 막아보려 몸부림치는 모습이다. 

특히 미국이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위반하고 한국을 냉대하자 이에 저항하며 분노하는 헐버트의 뜨거운 한국 사랑은 우리 역사에 마땅히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을사늑약을 저지하기 위한 고종 황제와 헐버트 특사의 눈물 어린 투쟁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뉴욕타임스 1905년 12월 13일자 <대한제국 조약을 부인하다> 기사 전문 보기

뉴욕타임스 1905년 12월 14일자 <대한제국 황제의 특사, 미국 국민에 호소> 기사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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