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욕으로 돌아오는 콜린 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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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뉴욕으로 돌아오는 콜린 파월
  • 안동일
  • 승인 2004.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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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일 논설위원장
모처럼 맨해턴에서 세모를 맞게 되었다. 맨해턴의 세모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어제 발표된 미 여행협회의 여행자 설문 조사에서도 새해를 맞기 위해 가장 가고 싶은 곳 순위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뉴욕 맨해턴이 차지했다.

맨해턴, 정확히 말하면 그 중심가인 브로드웨이 42번가 일대 타임즈 스퀘어에서 열리는 새해 맞이 행사는 매년 많은 이들을 미 전역 뿐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불러들이고 있다.

한국에 입시한파가 있듯이 이 무렵이면 뉴욕은 꼭 세밑 한파가 몰아 닥친다. 그래도 사람들은 맨해턴으로 몰려든다. 사람 구경하기 위해 그리고 새해가 시작하는 새벽 0시에 독특한 악센트로 ‘해피 뉴 이어’를 외치며 사랑하는 연인, 혹은 배우자, 친구와 입을 맞추기 위해 그곳에 간다고 한다.

그렇다.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크리스탈 공, 그게 맨해턴 새해맞이 행사의 명물이라면 명물이다, .

높이 매달려 있다가 정확히 0시 1분전부터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는데 사람들 모두 큰소리로 숫자를 합창하듯 거꾸로 숫자를 세는 그 모습이야 말로 장관이다. 올해는 퇴임하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행사 주빈으로 나서 이 크리스탈 볼 카운트 다운의 보턴을 누르게 되어 있다.

콜린 파월, 그는 뉴욕의 빈민가 출신으로 입지전적인 출세로 뉴요커들의 자랑인 된 인물이다. 네오콘이라 불리우는 강경파들에 둘러 쌓여 시련을 겪어야 했다는 그.
필자는 그의 이름을 들으면 대뜸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네오콘들 그리고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유태인들의 압력에 밀려 자신이 주도하다 시피 했던 회의에 못 가게 되면서 사무실 책상을 발로 차 발가락을 크게 다쳤다는 일화다.

몇해 전 9.11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인 8월 말, 남아공 더반에서 유엔 인종차별철폐회의가 열렸었다. 그런데 회의 직전 미 정부는 불참을 공표했다. 그 회의는 세계 곳곳에 여전히 뿌리깊이 남아있는 인종차별이며 종교 갈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세계 160개국의 국가 원수 및 외무장관 급의 대표들을 위한 자리로 마련됐으나 미 국무 장관의 불참 결정으로 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맥이 빠져 버렸던 것이다.

미국이 그 회의에 불참키로 한 주된 이유는 이스라엘 때문이었다. 유대 민족주의인 `시오니즘' 이 회의에서 다뤄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건국의 바탕이 된 시오니즘이 오랫동안 살아온 땅을 잃고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게 된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 나라들에게는 인종차별 운동으로 보여 질 수밖에 없었던 것.

친 이스라엘 정책을 강하게 펴온 부시 대통령은 그 회의에서 시오니즘이 제기되는 것을 반대했으며 끝내 국무장관 회의불참을 결정했다. 미국은 그 무렵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의 일방적인 거부, 미사일방어체제 강행 등 일방주의를 강공 드라이브하고 있었다.

파월은 그때 자신의 의지를 꺾으면서 애꿎은 책상다리에게 화풀이했다지만, 미국의 독선적 일방주의는 보름 뒤 9.11 사태라는 미증유의 비극으로 한 획을 그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 뒤 그어지고 있는 새로운 획이 바람직하게 그어져 가고 있는지는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정이지만 그때 그 회의에 파월이 갔더라면 9.11은, 그리고 이라크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게 필자의 오랜 생각이다. 그 파월이 몇 년 뒤 다시 일반 뉴요커로 돌아오면서 새해 맞이 카운트다운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서남아시아 일대의 지진 해일 사태까지 겹쳐 지구촌의 세밑이 그 어느 때 보다 뒤숭숭한 이때, 그나마 합리주의적이었다는 파월이 누르는 새해 보턴이 지구촌에 희망과 화합이 그려지는 단초를 제공했으면 하는 소망을 지니고 목도리를 두르고 딸아이의 손을 잡고 타임즈스퀘어에 나가 목청껏 카운트다운을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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