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터키에 대한 아랍 국민의 저항감의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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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터키에 대한 아랍 국민의 저항감의 내력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 승인 2020.10.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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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프랑스 원정대가 이집트인에게 끼친 영향

1798년 프랑스가 이집트를 침략했다. 프랑스인들은 이집트에 대한 탐험대라고 했으나 역사가들은 프랑스의 3년간 침입은 프랑스가 이집트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군대(원정대)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런 군사 원정대가 이집트인들에게 끼친 영향력이 너무 컸다는 점이다. 

이집트에 대한 영향은 지도층에 대한 영향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서민과 농부들에게 프랑스 원정대가 끼친 영향력이다. 프랑스군이 군사력, 과학 기술, 행정 제도에서 이집트를 앞섰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입에 대해 저술을 남긴 알자바르티(al-Jabarti)의 책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 그것은 이집트 농부들이 프랑스인들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집트는 맘룩조(1250-1517)가 오스만 터키에 의해 망했고 맘룩의 말기에는 이집트인들의 삶은 비참했다. 과도한 세금으로 국민은 고통을 받았고 이집트의 대외무역이 망가져 갔다. 프랑스가 이집트에 들어온 이유 중의 하나는 이집트와 프랑스의 무역이 중단된 것 때문이었다. 

터키군대의 이집트인들에 대한 적대 행위

그런데 프랑스군이 이집트를 떠난 뒤 이집트인들과 오스만 터키 군대가 서로 대화를 나눴는데 이때 터키군이 이집트인 쉐이크(종교인)에게 적대적인 말을 했다. 터키인들은 “너희 이집트인들은 무슬림이 아니다. 너희들은 너희 국가를 기독교인들이 다스리기를 원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기독교인들을 쫓아낸 무슬림들이다. 우리가 기독교인들을 여기서 쫓아냈다.”고 했다(알샤르끄 알아우사뜨, 2020,9,21, khalid al-bari). 

이 이야기는 이집트인과 터키 군인들 간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이다. 터키군대는 이집트인들에 대해 적대 행위를 계속했다. 그리고 이집트인들이 터키인보다 프랑스인들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반감이 생겨서 이집트인들에 대해 못된 짓을 했다고 터키군은 자신을 정당화했다. 

그래서일까? 이집트인들이 사용하는 말 중에는 ‘또즈’라는 말이 있다. 터키말로는 소금이란 뜻인데 이집트 국경에서 소금을 밀반입하는 이집트인들을 검문하던 터키 군인들이 사용하던 ‘또즈’라는 말이 이제는 터키인을 혐오하는 의미가 돼 이집트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칼리드 알바리는 그의 기고에서 “이집트 농부들이 프랑스인(기독교인)을 만나고서 그들 마음속에서 ‘사랑’을 발견했으나 터키군(무슬림)을 만나고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썼다. 그는 정치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한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사랑을 얻으려고 할 때 무슨 일을 하는가? 터키인들의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 비난받을 일이었다고 했다. 

상대방의 감정과 바라는 일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터키인들의 태도는 사랑이 아니고 자기 소유를 옹호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과거에 오스만 터키인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지금도 아랍어 사용지역에서 그들의 정치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아랍 지역에서 터키인들은 지금도 터키의 국익을 위하여 일해 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랍인들이 터키를 돕지 않을 때 터키인들은 ‘이슬람의 형제(ikhwah islamiyyah)’라는 말을 상기시킨다고 했다.

그러나 칼리드 알바리는 일방적으로 ‘강요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무슬림간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감사가 없다고 했다. 칼리드 알바리는 터키는 물론 이란이 아랍 국가에게 이처럼 ‘강요된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항상 일방적이었다고 했다. 터키의 에르도안과 이란의 하메네이는 그들의 연설에서 그리고 그들을 대신하는 사람들을 통해 똑같은 말을 아랍에 들려주고 있었는데, 그 말은 “우리의 역할이 여러분의  역할보다 더 값어치가 있다”는 말이었다. 

이라크의 내전 중 궁색한 문학가들이 전선으로 뛰어들어
 
이집트의 학자 샤우끼 다이프(2010-2005)는 그의 책 ‘자힐리야(이슬람 이전)시대’에서 쑤을룩(Su‘lūk)을 “생활의 짐을 지는데 도움이 되는 돈을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이라크인 작가 다우드 알파르한도 이런 뜻풀이로 '지금 아랍 인구의 3/4은 쑤을룩이고, 쑤을룩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찰리 채플린'이라고 했다. 

2008년에 이집트에서 편찬한 아랍어- 아랍어 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아보니,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자’라고 뜻풀이 했고 예문에는 ‘아랍의 쑤을룩은 아랍의 도적’이란 말이 있었다. 약탈을 일삼아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쑤을룩이다. 아랍 혁명이 일어났을 때 이웃집 차를 훔쳐가고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박물관의 유물과 유적이 도난당하고 가전제품이 강탈당하고 상가와 은행이 털렸다. 쑤을룩은 법을 안 지켰는데 아랍의 시위 속에는 항상 이런 쑤을룩이 있었다.  

하지만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살았던 많은 작가와 시인들은 자신들을 쑤을룩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했다. 물론 이런 시인들이 남을 해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법을 어긴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보면 그 때 쑤을룩이란 단어는 궁색하지만 인간적 도의를 지켰던 사람을 가리켰을 것이다.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하기 전에는 이라크 시인들 중에 쑤을룩이 있었으나, 점령 이후 그들은 이미 시인이 아니었고 돈 있는 민병대원이 돼버렸다.
 
하지만 어찌 이라크뿐이겠는가? 아랍 혁명을 거치면서 아랍인들의 인간성이 변했다는 연구 발표가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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