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미래여 우리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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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미래여 우리가 간다
  • 유인형
  • 승인 2004.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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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무료하고 탄력을 잃어가는 즈음엔 여행을 떠난다. 다낡은 청바지를 입고 배낭을 어깨에 걸친다. 보통 3인 가족이 함께 떠나는게 안심이다. 돌발사고시나 낯선 곳을 찾아갈 때의 불안감을 털어내는데 서로 의지가 된다.
어제는 맨턴 캠핑장을 찾아갔다. 운이 좋게 파킹장이 있었다. 어둑어둑 해지는 초행길을 달릴 때엔 긴장감이 스며든다. 가끔 모텔이 나와도 ‘NO VACANCY’불빛이 보인다. 황금주말엔 빈방이 거의 없다. 예약하는 관습도 서출지만 스케줄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부담이다.
트렁크에 개인 천막과 야영도구를 싣고 간다. 잠자리를 만들면서 신나게 떠들면 어느새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
바비큐가 끝나자 바로 캠프화이어다. 통나무 불꽃에 빨려든다. 송진타는 냄새속에 타타타하는 소리가 즐겁다.
가까운 곳에서 파충류들의 짝짓기가 소란스럽다. 커피잔을 들고 초롱초롱 빛나는 별빛속에서 북두칠성을 찾아낸다.
생기발랄한 모닥불 앞에선 어린 아이처럼 편안하다.
‘모닥불 피워놓고….’여인네들의 합창이다. 무기력했던 삶에서 재충전이란 이런 분위기일까. 개인 천막의 슬리핑 백속으로 들어갔는가 싶었는데 벌써 해가 솟는다. 레스부리쥐 쪽으로 달린다. 온통 밀밭이 펼쳐진다. 지평선의 밀밭을 달리면서 코끝이 시원한 초원의 향기를 맡는다. 곡창지대의 초록빛 지평선위로 흰구름이 둥실 떠있다. 태고의 원시림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국인 체질로 개간사업은 어려워도 엘크 농장이나 고등채소 재배에 손을 대고 있다. 겨울이 길고 추운 지방이기에 새로운 난방시설로 수익성이 높은 버섯재배에 파고 든다. 전문 인력이 건너와 원자재에다 일차가공인 제조업분야가 전망이 밝다. 하지만 한국적인 일자리란 없다. 남의 땅에서 남의 말로 사업을 해나가는 건 몇배나 힘겹다. 그래도 서비스업에서 제조업분야로 개척해야할 때다. 투자이민으로 건너와 똑같은 시행착오는 곤란하다. 우리끼리 경쟁관계가 아닌 서로 공존의 일자리를 넓혀 나갈 전문성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2번에서 5번 프리웨이로 들어선다. 타운의 샛강에는 흰 거위 때가 한가롭다. 이곳엔 몰몬교 본부가 있다. 하얀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지은 본당에 들어가 본다. 단정하게 깍은 머리와 검은 넥타이, 흰 불라우스에 검은 치마를 입은 신자들이 인상적이다.
기독교처럼 많은 종파도 없다. 서북으로 우크레아인들의 정교회, 동쪽지역엔 프랑스계 대성당이 우뚝 서 있다. 동남에서 온 민족들에게는 부처님 사원이 있고 인도계의 힌두교와 중동쪽으로 온 알라신 교회가 있다.
철저하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나라다. 여러 인종들 중에서도 성질이 급하고 목에 힘주길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게 코리언의 특성이다. 다른 건 몰라도 어느 교회에 나가느냐가 제일 궁금하다. 좁은 한인 커뮤니티 안에 수많은 종파가 들어와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를 연다. 믿을수록 마음이 넓어지고 실천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세들인 부모를 따라 2세들이 교회에 함께 나서지 않는다. 꼭 언어 관계만은 아닌 것같다. 한인회 참가도 부정적이다. 만났다하면 서로 동포들 흉보고 깍아내리는 병폐가 있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겐 뒷자리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절대 비겁한 짓거리며 두말할 것없는 폐쇄적 커뮤니티로 보인다. 이렇게 나가다간 한인회 자체가 분해되어 동화되는 게 아닐까. 어느 도시엔가도 차이나 타운을 만드는 중국인들의 공동생활과 질서의식은 어디서 오는 걸까. 가장 교육수준이 높고 개인적인 돈벌이가 앞섰다는 코리언들인데.
이땅의 캐나디언들은 친절하고 보수적이다. 환경보호와 사회봉사 정신은 대단하다. 폭력적인 데모는 아예 없고 노사간 갈등해소도 합리적이다. 풍요로운 자원과 넓은 땅에서 스며든 여유 때문일까. 원만하고 느긋하다. 하지만 약속시간 5분전을 철저히 지키는 것처럼 누가 보건말건 교통신호도 엄수한다. 
우리 2세들 중에서 이 나라의 RCMP 국립경찰이 탄생되고 있고 사관학교를 지망하기도 한다. 경찰과 군인이 되는 건 이들에게 가장 큰 명예다.
몽타냐 국경지대에 들어섰다. 이곳에서도 운좋게 캠핑장을 잡아 개인 천막을 쳤다. 이곳에선 천막안에 음식물을 보관하면 안된다. 붉은 곰인 그리조리는 깊은 산속에 살지만 흑곰은 가끔 캠핑장 쓰레기장을 찾는다. 냄새에 민감해 천막안으로 들어와 가끔 사고가 나기도 한다.
카메룬 등산길에 아내와 손을 잡고 올랐다. 오랜 해외생활속에 적응하다보니 우리 여인들도 행동하길 좋아한다. 어디라도 부부가 함께 한다. 화려한 풀꽃이 피어있고 예쁜 새집이 보이기도 한다. 새둥지 속엔 노란 입의 세계가 입을 벌린다. 입속에 먹이를 나눠주는 어미새. 아늑하고 평화롭다. 가지각색의 색깔로 반사되는 풍경을 바라본다. 아주 작은 물방울이 모여 바위들을 뚫어 큰 터널을 만들었다. 보잘 것 없는 미미한 물방울도 모여서 막아서는 바위를 뚫어버린다.
청아하고 순수한 물을 바라보다가 하산한다. 275마일의 산행길을 잘 표시해놓았다. 며칠간 신성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우린 아직도 155마일의 분계선이 살벌하다. 멀잖아 국립공원이 되어 등산길로 다가오리라 생각된다.
아주 부드러운 낙수물이 거대한 암벽을 뚫지 않던가. 더 이상 민족혼을 분열시킬 순 없다. 계곡을 흔다는 물소리를 뒤로하고 내려온다. 오후엔 유람선을 탄다.
캐럴덤산(2831m)과 소피산(2519m) 사이에 거창스런 호수가 있다. 수심이 수백미터라 하니 으스스한 원시성이 남아있다. 미국경선 표식도 관광자원으로 남는다. 한바퀴 돌아오는 사이에 벌써 저녁노을이 물속까지 파고든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맥과 호수를 바라보다가 오묘하고 강열한 섭리를 일깨운다. 이 환상적인 자연 속에 원주민들은 토속적인 말한마디만 남겼다.
‘OMKISKIMI!’
아름다운 호수라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도 이 지구촌에 왔다가 한바탕 큰 색깔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적어도 한국청년이라면 영리만 쫓으려 하지말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린다는 비전을 품는다. 푸른 미래여, 우리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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