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한가위와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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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한가위와 추석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0.09.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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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추석을 순우리말로는 가위 또는 한가위라고 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기만 하여라.’ 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한가위가 넉넉하고, 행복한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하면 추석입니다. 설날도 명절이지만 아무래도 최대의 명절은 추석입니다. 추석이 왜 최대의 명절일까요? 추석에는 추수를 통해 곡식이 넉넉하고, 과일이 넉넉합니다. 풍요로운 시기입니다. 또한 추석은 모든 가족이 모여서 추수의 기쁨을 나누는 때이기도 합니다. 가족이 모이는 날이기에 행복한 날입니다. 가족이 모여서 조상께 감사를 드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추석은 감사의 날이고 조상의 날이기도 한 겁니다.  

한가위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나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의 3대 임금 유리이사금 9년에 한가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야기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라의 6부를 둘로 나누어 7월 16일부터 한 달 간 매일 밤 10시까지 길쌈을 해 그 후 8월 15일이 되어 진 쪽에서는 술과 음식을 마련해 이긴 쪽에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노래와 춤과 온갖 오락이 벌어졌으니 이를 일러 가배(嘉俳)라고 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이 가배라는 말에서 가위, 한가위가 생겼다는 주장입니다.  

신라의 가배가 현재의 추석으로 이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추수를 감사하던 축제와 가배가 만나서 현재의 추석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석은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날입니다. 추석을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하는 이유입니다. 가운데라는 표현이 중세국어에서는 비읍 순경음이 들어간 단어로 나옵니다. 따라서 가배와 가운데라는 표현이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가배라는 말에서 가운데라는 의미를 찾는 노력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배(嘉俳)에서 가위로 바뀌는 과정은 추론이 가능합니다. 지금도 경상도 방언에서 비읍 발음이 우로 바뀌는 예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덥다와 같이 비읍 불규칙 용언이 그렇습니다. ‘더워’를 [더버]라고 발음하는 것입니다. 가운데의 예처럼 중세국어의 비읍 순경음이 우로 바뀌는 예도 설명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경상도 방언에서 아직도 비읍 발음이 남아있는 어휘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가배와 가위가 방언의 차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언어의 변화를 찾아가는 게 흥미롭기는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배의 의미를 삼국사기의 고사에서만 찾아보면 ‘갚다’는 말과의 관련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갚는다는 말은 남에게 빌린 것을 도로 준다는 의미입니다만,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은혜를 갚다와 같은 표현에서도 널리 쓰입니다. 길쌈에 져서 빚이나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추석이 조상의 은혜를 갚는 날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있는 추론으로 보입니다.
 
가배의 의미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한가위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가위라는 말이 현대어에도 동음이의어로 쓰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물건을 자를 때 쓰이는 ‘가위’입니다. 또 다른 것은 ‘가위 누르다’라는 표현 속에 보이는 어휘입니다. 저는 이 중에서 가위 누르다 속에 나타나는 가위에 주목해 보았습니다. 전에 제가 쓴 글에서 가위는 귀신이나 신에 해당하는 우리말이었을 가능성을 찾아보았습니다. 가배와 한가위가 관련이 있는 것처럼 가위와 귀신을 나타내는 가비, 개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 것입니다. 도깨비나 허깨비 등에 흔적이 보입니다. 도깨비는 ‘돗 + 가비’로 나누어 볼 수 있고, 허깨비는 ‘헛 + 개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가비, 개비를 귀신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도깨비나 허깨비는 좋지 않은 귀신일 수 있지만 귀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가배나 한가위라는 말이 귀신, 신을 나타내는 ‘가위’와 관련이 있는지는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만 추석이 돌아가신 조상을 기억하고 모시는 날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연구해 보겠습니다. 올해는 추석이 되어도 가족도 친척도 제대로 만나기 어렵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추석은 감사의 날이고 기억의 날입니다. 추석에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께 감사하고, 옛 추억을 떠올려보는 귀한 시간이기 바랍니다. 혹시 뵙기는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사진도 보고 비디오도 보면서 추억을 가족이 함께 나누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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