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브라질 배우리한글학교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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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브라질 배우리한글학교의 특별한 이야기
  • 김동순 배우리한글학교 교장
  • 승인 2020.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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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기회로 삼은 배우리한글학교
김동순 배우리한글학교장
김동순 배우리한글학교장

30년 전에 시작된 배우리한글학교

전 세계가 코로나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세먼지 같은 바이러스 균이 정치, 경제, 문화 등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곳곳에 침투해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강대국의 의미도 사라지고 공해 없는 나라라고 자부하던 외딴 곳의 나라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백년대계의 교육 현장이 달라져 가고 있다. 선생과 학생이 있고 끄적거릴 칠판 하나만 있으면 학교라고 여겨진 시대도 있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좀 더 체계를 갖춘 대형 건물과 넓은 운동장이 있어야 학교는 존재한다고 굳게 믿어 왔다. 

이런 기본적인 환경이 늘 뒤떨어진, 그래서 아이들이 많이 오면 학교가 어려워지는 이율배반적인 한글학교가 30년 전에 이곳 브라질에 세워졌다. 바로 ‘배우리한글학교’다.

건물을 빌려 꾸미고 아이들을 모으고 고작 3년 정도 유지하면 또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 비좁아서 옮기고, 건물이 다른 이에게 팔려서 옮겨야 한다. 아홉 번 학교를 이전했고 한국교육원장님 여덟 분을 만나면서 30년을 끈질기게 버틴 셈이다. 

브라질한국학교(poli logos)에 주말 한글학교 교장으로 3년간 부임하면서 배우리한글학교를 잠시 접었지만 브라질한국학교가 결국 문을 닫게 되면서 다시 배우리한글학교를 열게 됐다. 운영의 어려움은 이렇게 또 메꾸어 나갔다. 세인트프랑스국제학교(ST.France School) 국어 교사로 채용돼 나름 넉넉한 보수를 받게 되니 학교 운영에 한 부분이 감당됐다. 개척교회의 한 층을 빌려 쓰기로 하고 수업 장소를 마련했다. 아이들이 다시 모이고 꽤 그럴싸한 환경 때문에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간 유지했던 학교는 개척교회가 문을 닫으며 또 위기를 맞았다. 학교 혼자로서는 도저히 그 큰 건물을 유지할 수가 없어 ‘이젠 정말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시설을 정리하면서 한편으론 끝을 예감하면서 2019년을 마무리하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방학에 들어갔다. 

배우리한글학교가 어찌 될지 바라보는 시선은 2020년이 되자 또 나에게 짐이 되기 시작했다. 사명처럼 나를 짓누르게 되니 해결 방법은 퇴직금으로 다시 학교를 마련하는 일이었고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자마자 다시 건물을 얻어 번듯하게 또 꾸렸다.

두 달도 못 채우고 2020년 3월 17일 코로나로 모든 학교의 출입이 막히며 배우리한글학교도 같은 상황에 봉착했다.

준비된 자에게 주는 고마운 혜택

상파울루한국교육원은 교육원대로 수업 마련에 고심했고 생전 듣도보도 못한 온라인 수업을 실시하는 대처 방안이 시급했다. 교육원에서는 5월 신속히 온라인 수업에 관한 연수를 했고, 배우리한글학교 역시 여러 가지 콘텐츠를 만들어 온라인 수업에 들어갔다.

코로나의 사태를 미리 알아 대비한 것처럼 2019년 12월 상파울루한국교육원(원장 오정민)으로부터 나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학생들의 보충학습 과제인 학습지를 만들어 브라질 전체 한글학교에 부교재로 사용하게 만들라는 신규 교육사업이었다. 사업 기획안을 만들어 재외동포재단에 보내고 승인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코로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때야 말로 가정에서 학습할 수 있는 학습지가 현장학습을 대신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알게 된 오정민 상파울루한국교육원장이 재차 재외동포재단에 청원을 했고 그 결과 예산의 3분의 1 정도의 후원을 받게 돼 모든 인력과 유지비를 절감해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매주 교육원 홈페이지에 올려 간접적인 교육 방법의 하나로 활용하게 된 학습지는 적절한 교육 대응 방침의 하나로 현재도 계속 실행 중이다.

상파울루한국교육원 홈페이지에 매주 올리는 학습지
상파울루한국교육원 홈페이지에 매주 올리는 학습지

배우리한글학교의 수업 방향은?

배우리한글학교는 내가 할 일과 네가 할 일을 따로 구분할 여유 없이 온라인 수업과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며 아이들의 흩어진 마음에 안정을 주어야 했다.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학교 월세였다. 학비도 받을 수 없게 되니 유지하기 어려운 건 나만의 일인 듯 싶었다. 모든 학교가 출입이 통제된 상황에서 배우리한글학교는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학교의 건물을 닫기로 하고...

다시 학교의 문을 닫기로 했다. 건물을 닫는 것이지 학교가 문을 닫는 것은 결코 아니라며 매일 주문을 왼다.

앞서 가는 자는 진리를 따르는 자라 했던가. 유일하게 학습지, 온라인 수업, 동영상 수업을 병행하는 학교로 소문이 나다보니 수업이 미비했던 학교의 학생들의 편입이 자연스러워졌고 특히 상파울루 이외의 지역에서 수업자 등록이 증가했다. 온라인 수업이 가져다 준 혜택이라 말하면 옳지 않은 표현일까?

온라인 수업과 동영상 촬영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용도의 건물로 다시 축소해야겠기에, 새롭게 마련했던 학교의 모든 시설물, 책걸상을 비롯한 식당의 식탁과 의자들을 신속히 처분해야만 했다. 난감했다. 마침 브라질한인회에서 책걸상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게 돼 선뜻 한인회에 기부했고 식당의 기물을 비롯한 나머지 시설물들은 선교지로 보냈다.

책걸상을 브라질한인회에 기증하며
책걸상을 브라질한인회에 기증하며

새로운 수업 형태의 한글학교

부담이 됐던 월세가 절감되니 영상 제작과 온라인 수업에 전문인 교사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온라인 수업의 형태를 확대하고, 시간도 조정해 주중에도 실시하고, 학습지와 동영상의 내용을 병행해 가정에서 쉽게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매주 교재를 만들어 이메일로 각 가정에 전송하고 있다. 

학습 보조자료로 상파울루한국교육원 홈페이지에 올리는 학습자료는 교과 내용에 관한 것 이 외에 역사, 생활회화, 문법, 토픽(TOPIK) 등 다양한 자료가 별도로 있으니 수업의 과제물이 더 풍성해졌다. 현재 이 학습자료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교사들도 보충 수업 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상태다.

배우리한글학교가 제작한 동영상 자료들
배우리한글학교가 제작한 동영상 자료들

이런 한글학교의 매력

학생들의 등하교를 도와줄 통학 버스도 없고, 넓은 운동장도 없고, 누구하나 간식거리, 점심식사를 도와줄 사람도 없고, 후원자도 없어서 늘 혼자 외로웠다. ‘보람을 두둑이 챙기자’는 나의 삶의 방식을 고집함에 만족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나의 학교생활은 바쁘면서도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수업의 형태가 달라지다 보니 아이들이 더 소중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집 안의 풍경과 아이들이 앉아 있는 책상을 보며 가정 방문이 따로 필요 없음을 알게 된다. 

브라질에 모든 현지 학교 시스템이 온라인이다보니, 학생들이 기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부모님이 일일이 학교를 데려다 주지 않아도 전화 연락 한 통이면 수업 참여와 출석 확인이 용이하다. 점심 식사를 해주는 시간과 노력 대신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준다. 손편지는 기본이다.

배우리한글학교 온라인 수업 모습
배우리한글학교 온라인 수업 모습

교사들은 가정에서 수업 준비를 하며 이메일과 카카오톡, 화상으로 회의하고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수업 진행에 관한 서류를 서면으로 제출해 받는다. 온라인 수업 장소는 하나의 만남의 장소가 돼 버린 셈이다.

전파를 타고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온라인 수업. 우리가, 아니 내가 35년간 해오던 대면 수업보다 좋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어쨌든 교육을 해야 하니까, 앞을 보며 살아가야 하니까...

‘이제는 끝이다, 정말 끝이다’ 했던 나에게, 학습지와 학교 운영에 대한 재외동포재단의 후원은 다른 길로 비켜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준 고마운 버팀목이다. 

전통은 세월의 셈이 아니다. 세월의 셈답게 그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전통의 힘인 것이다. 비대면 수업의 모범 사례로 새로운 교육의 모습을 먼 이국땅에서 실현하려는 브라질 배우리한글학교에 격려와 응원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모두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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