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에세이>내가 먼저 열고 풀어버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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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에세이>내가 먼저 열고 풀어버린다면
  • 임용위
  • 승인 2004.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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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렇게 또 한 해가 간다.
멕시코의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멕시코 날씨가 영하로는 기온이 떨어진 적도 없고 또 그럴 리도 없어서, 한국의 한겨울 한기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추위라고 말 할 사람들은 많겠지만, 사시사철 포근하고 온화했던 것에 익숙해져 있는 시티의 많은 동포들에게는 요즘 같은 싸늘한 냉기가 적지 않게 고통스러운 듯 보인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유난히 쌩쌩한 한기가 엄습하고 있는 덕(?)으로 의류업계에 종사하는 상인 동포들이 여느 해의 대목 철보다는 짭짤하게 재미를 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소식을 전하는 동포들은 “추울 때는 춥고, 더울 때는 더워야 사람 사는 기분이 나는 것 아이냐”고 하지만, 한번 걸린 독감이 쉬이 잠잠해 질 줄 모르고 끝도 없이 콜록거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도 결코 반가운 소식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극성의 추위와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는 한인사회는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지 제각각의 길을 성실하게 닦아가고 있다. 한인회가 현지 정부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향상시켜 나가기위해 분주한 일정을 보내는 일이 그렇고, 대사관이 한층 목전에 다가와 있는 한국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에 고삐를 늦추지 않는 점 등이 또 그렇다. 대표적인 두 기관이 문화행사(서예전 및 한류 행사)를 소홀히 하지 않는 점이 돋보이고 이를 눈여겨보는 대다수의 동포들이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점 등이 또한 보기가 좋다.
그렇게 그렇게 또 한 해가 간다. 참으로 빠른 세월의 화살을 누가 저지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엊그제, 2000년의 밀레니엄을 맞는 감격에 들떠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건만, 벌써 2005년을 우리는 코앞으로 맞이하고 있다. 급변하는 세상사에 적응해 살면서 뛰든 튀든 간에 우리는 어느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함께 이 세월의 질곡에 메 달려 살아야 한다. 그 세월들이 짊어지고 흩뿌려낸 파장 속에서 굴복하는 사람, 정복한 사람들이 확연히 구분(특히 재외 동포사회에서는)되어 지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지만, 대다수의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사는 가운데 낙오되고 일어서는 동포들의 그 모습들을 여유롭게 바라볼 틈이 없다.
여유롭게는 아닐지언정, 한번쯤 나와 함께 걷고 있는 옆 사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정녕 없는 것일까. 소중하고도 귀하다고 느끼면서도 가족조차 거들떠 볼 틈이 없는 사람들에게 ‘여유’를 말하기는 좀 그렇고도 그러한 게 사실이다. 평소 느긋한 것만 같은 나 자신도 실제로는 그렇게 여유롭지를 못하니 하는 말이다.
한인사회의 많은 종교단체가 ‘송년의 밤’이라는 명목을 가지고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들이 많아지는 요즈음이다. 해당 종교단체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그 단체가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서 소속에 상관없이 동포들을 초대해 서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열리고 풀어진 마음들이 멕시코 한인사회의 새해 모습으로까지 이어져 갔으면 좋겠다. 어떠한 이해로서 만났든 간에, 어떤 소속으로 출발했던 간에, 내가 가는 발길이 한인들이 모이는 곳이고, 한인들이 모이는 곳이면 나는 언제든 아무 거리낌 없이 갈 수 있는 그런 멕시코 한인사회였으면 좋겠다.
2005년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먼저 열고 풀어버린다면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임용위/재멕시코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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