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변화하는 아랍(2) : 아랍 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의 평화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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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변화하는 아랍(2) : 아랍 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의 평화 협정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0.08.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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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 평화협정 이후의 각국 반응

1979년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으나 이슬람주의자에 의하여 1981년 사다트 대통령이 시해됐고, 1994년 요르단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수상이 유대 극단주의자에 의하여 1995년 살해됐다. 2018년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안의 부칙 1조에 따라 이스라엘에게 빌려준 땅 나하라임(Baqoura)과 알가므르(Tzofar) 땅의 사용을 갱신해 주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2020년 8월 13일 아랍 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이 평화협정(일명 이브라힘 합의)을 맺었고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하기로 했다.

이번 이스라엘과 아랍 에미리트 평화협정에 제일 먼저 환영의 메시지를 낸 걸프 국가는 바레인이었고, 오만은 정부가 환영의 뜻을 표했으나 종교기관의 그랜드 무프티(파트와를 발령하는 다르 알이프타의 최고 무프티)가 간접적으로 비난의 목소리를 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에미리트와 우호친선관계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라말라의 파타흐가 아랍 에미리트는 팔레스타인 민족의 국가적, 종교적, 인도주의적 의무를 업신여긴 것이라고 비난했고, 가자지구의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국민의 등에 비수를 꽂는 배신행위라고 비난했다.

이란 외무부 장관은 팔레스타인 국민과 무슬림들에게 치욕적인 거래라고 비난하고, 이스라엘과 무역을 해 왔던 터키의 외무부 장관은 이스라엘- 아랍 에미리트 평화협정을 비난하고 역사와 중동의 민족이 아랍 에미리트가 한 일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잊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집트 대통령은 이번 합의를 환영하고 중동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노력이라고 평가했고, 요르단 외무부 장관은 이번 합의로써 요르단 강 서안의 일부를 병합하려는 이스라엘의 계획이 포기되는 것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이번 합의가 이 지역의 안정과 전세계에 유익을 주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환영했다.

그리고 2020년 8월 16일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는 평화협정 후 직통 전화서비스를 시작했고, 아랍 에미리트의 APEX라는 국가 투자회사와 이스라엘의 TERA 그룹이 합의하여 코로나 19에 대한 연구에 제휴하기로 서명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에 대한 비난이 적었던 이유

지난번 글에서 “변화하는 아랍: 의식구조와 종교성의 변화”(2020.7.31.)에 이어서 이번에는 아랍의 정치-외교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스라엘 주재 미 대사는 이스라엘과 아랍 에미리트 간의 평화협정(잇티파끼야 알쌀람)을 “이브라힘 협정”이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아브라함의 아랍어 명칭이 “이브라힘”인데 가톨릭을 비롯한 일부 종교인들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아브라함의 종교(공일주 저서, 아브라함의 종교 2019년판 참조)라고 부른다.

미국 대통령은 이번 협정을 “역사적인 외교적 업적”이라고 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협정이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언론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두터운 얼음이 깨졌으니 다른 아랍 국가들도 아랍 에미리트의 발자국을 따라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랍 국가들 중에서 이미 이집트와 요르단이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요르단과 이집트 국민들이 모두 이스라엘에 대하여 우호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카타르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스라엘과 협력 관계를 갖고 상호 방문을 허용하였지만 아직까지 평화 협정에 서명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서 아직까지 그다지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슬로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 정치인들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때로는 우호적으로 때로는 적대적으로 오락가락하자 아랍 청년들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식상해 하던 참에 이번 협정이 이뤄졌다. 더구나 아랍에미리트가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하는 것을 대대적으로 반대하는 국가들이 적은 것은 코로나 19시대에 각국이 자국민 보호에 열중하고 있고 또 과거에는 아랍 민족주의라는 대의가 살아 있었으나 지금은 자국의 국익을 우선하는 정책으로 아랍 정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랍 에미리트는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주변 아랍 국가들의 어려운 경제 형편을 가장 잘 챙긴 나라로 유명한데, 한마디로 자주 도움을 받았던 아랍 국가들이 아랍 에미리트를 함부로 비난하는 논평을 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70년간 교착상태에 빠진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

중동의 평화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었다. 그러나 2014년 이슬람 국가 조직(IS)이 이라크를 중심으로 테러를 하자 아랍의 언론에서 팔레스타인 문제가 적게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서로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전투적으로 나가자는 하마스와 이스라엘과 어느 정도 온건한 태도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풀어가자는 파타흐로 나뉘고 결국 이 두 집단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평화의 로드맵 실현에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결국 지난 70년간 팔레스타인 국민들은 정치적인 해법을 찾는데 실패하였다. 팔레스타인 정치인들이 “진실의 힘”을 강조한 나머지 “힘의 진실”을 잊고 있었다고 사우디 정치 칼럼니스트 압둘라 알우타이비가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과의 대화에서 팔레스타인 측은 “목표”가 정해지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청년들이 시위와 봉기 중에 사망했고 더구나 아랍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자국의 이익을 구현하는데 이용했다. 이집트의 나세르 이념과 이라크, 시리아의 바아스당 사회주의 그리고 비아랍 국가인 이란과 터키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용했다. 심지어 터키의 에르도안 정부는 이스라엘과 동맹관계를 갖고 군대와 군수 산업에 협력했다.

팔레스타인이 1993년 서명한 오슬로 협정 그리고 80년대초 사우디 파흐드 국왕이 제안한 파흐드 평화안(mashru’ Fahd lil-salam) 등 팔레스타인에게 여러 차례 기회가 왔건만 팔레스타인은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fawat al-Fursah)”이다. 오늘의 팔레스타인 지도층이 한 번은 그들이 주장한 원칙에 휩쓸리고 또 한번은 현실적인 입장에 서는 등 오락가락하는 태도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70년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들의 문제를 푸는데 아랍국가들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는데 특히 국민의 기본 생활, 직장, 정권, 대사관 등에서 부유한 걸프 국가의 도움을 많이 받아왔다. 팔레스타인 국민들은 자신들을 지원하는 국가의 간섭 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선택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자꾸만 지도부가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었고 심지어 하마스는 이란의 도움까지도 받았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가자 지구를 무력과 살인으로 점령했다.

아랍 청년들은 아랍국가들이 정치적인 문제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용하는 것을 보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열정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두 부류로 나뉜 것도 이들이 각각 이란, 터키, 카타르 그리고 정치적 이슬람 집단의 원조를 받으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걸프 아랍 국가들은 수년간 이스라엘과 대항하기 위하여 아랍국가들과 오랫동안 뜻을 같이 해 왔으나 이제는 이란의 위협에 걸프 국가들이 대동단결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의 일부 정파들은 이란과 공개적으로 동맹을 맺었다.

아랍 지역과 아랍의 주변 세계가 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지난 70년간 많은 굴곡이 있었다. 아랍 국가들이 지금은 민족주의나 범아랍주의에 관심이 없고 자국의 이익과 국민들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현대 자국민 우선 시대”(‘asr al-dawlah al-wataniyyah al-hadithah)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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