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베이루트 항구 폭발사고 이후의 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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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베이루트 항구 폭발사고 이후의 레바논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0.08.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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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이름뿐인 기독교 대통령, 정치적 실권은 시아 무슬림에게

레바논은 한 때 중동의 스위스라고 불리었던 아름다운 항구도시였고 페니키아 문명이 꽃피웠던 곳이다. ‘레바논’이란 이름의 나라로 독립되기 전에는 시리아와 하나였던 땅이다. 중동에서 유일하게 대통령은 1943년 이후 지금까지 마론파 기독교인이었고 총리는 순니 무슬림 그리고 의회는 시아파 무슬림이 맡았는데 현재는 이란의 지지를 받는 나비흐 베리가 의장이다.

레바논 의회는 1922년 프랑스 위임 통치 하에 국회의원 선거법이 발효되면서 ‘레바논 대표자 의회’가 시작됐는데 당시 레바논의 종파와 교단에 의석이 분배됐다. 마론파가 10명, 순니와 시아 무슬림이 6명, 그리스 정교회가 4명, 드루즈파가 2명 그리고 그리스 카톨릭과 소수 종파에도 한 명씩 대표가 할당됐다. 

1926년 ‘국회’라는 이름으로 변경될 때 당시 레바논 헌법에서는 종파 소속에 따라 16명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1990년 9월 헌법에서 의원 선거법을 개정했는데 1991년 55명의 국회의원을 임명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따이프에서 열린 국민 화해 문서를 레바논 의회가 1989년 비준했는데 그 문서에는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이어야 하고 국회의원 수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각각 동수로 해 전체 108명으로 정했다. 

레바논 내전 종식을 선언한 1989년 알따이프 합의가 서명된 뒤, 실질적으로 레바논 의회는 128명의 의원으로 증가했고 독립 이후에는 줄곧 기독교인 의원 수가 무슬림들보다 많았으나 알따이프 합의 이후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의원 수를 각각 절반씩 배정했다. 

레바논 의회가 입법권한을 갖지만 정부 정책과 국정 사안에 대해 종합 감사를 할 수 있었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도 의회가 하는데 2014년 미쉘 술라이만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이후 2016년 미쉘 아운을 대통령으로 뽑을 때까지 대통령직은 공석이었다.
 
이 글에서 레바논 의회를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본 것은 레바논 의회 형태가 프랑스 식민통치 시절에는 기독교인 다수로 시작됐으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따이프에서 종파 간 화해라는 명분으로 서명한 자리에서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각각 동수로 선출됐다. 그러나 그 이후 시리아 군대가 레바논에 들어가 온갖 국정 농단을 저지르고 이란의 혁명 수비대가 보낸 ‘히즈불라’는 1980년대부터 레바논 남부에서 세력을 키우다가 베이루트로 진입해 레바논의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지난 8월 4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전 레바논 특별 법정에서는 2005년에 암살된 순니파 총리 라피끄 알하리리의 암살 사건을 8월 7일에 다루기로 돼 있었다. 그의 아들이자 전 총리였던 사아드 알하리리도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법원은 8월 7일 이 사건의 혐의가 있는 4명에 대한 재판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폭발물이 터지자 재판은 열리지 못했다.

폭발 사건에 대한 비난이 히즈불라에게 

아랍의 순니파 언론들은 하나같이 이번 레바논 폭발 사건의 발단이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받은 히즈불라(알라의 당, 헤즈볼라가 아니고 아랍어 발음은 히즈불라)에게 있다고 비난하고 시민들은 현 정부가 사퇴하라고 한다. 

특히 프랑스 대통령이 사고 현장을 방문한 주변에서 시위를 했던 레바논 시민들은 레바논 정부에게 지원금을 보내지 말고 국민들에게 직접 분배해 달라고 요구했다. 금년 1월에 선임된 현 순니파 총리 하산 디얍(영어 이름은 디압이지만 아랍어 이름은 디얍)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그 역시 시아파 히즈불라의 압박을 받아왔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고 시민들이 주장한다. 

전 총리 라피끄 알하리리의 암살 혐의를 받는 4명이 모두 시아파 히즈불라에 속한다고 아랍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8월 7일 진실과 정의가 밝혀지는 날이 될 것이라고 그의 아들 사아드 알하리리가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는데, 폭발 사고로 인해 진실이 언제 밝혀질지는 아직 모른다. 물론 4명의 피의자가 재판정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며, 재판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도 그들에게 있다고 정부 당국이 발표했었다.
 
이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하리리의 지지자들과 히즈불라의 지지자들 간에 극심한 분열과 논쟁이 이어졌었다. 라피끄 알하리리는 2004년 총리직을 사임했고 그 당시 레바논에는 시리아 군대가 전국에 배치돼 레바논 정치를 사사건건 통제하고 간섭했다. 그가 암살된 이후 시리아 군대가 레바논에서 떠났고 그 뒤 히즈불라가 레바논 정치에 부각돼 왔다.

레바논, 총체적 난국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화상회의에서 레바논을 국제사회가 빨리 도와주자고 촉구한다. 일부 레바논인들은 프랑스의 식민지 국가가 됐으면 한다. 그만큼 히즈불라의 무장 활동과 정치적 압박이 거셌다는 것이다.

걸프 산유국들은 몇 년 전부터 레바논 경제가 기울기 시작하자 레바논에 경제 지원을 하자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돈을 풀지는 않았다. 어차피 레바논을 도우면 순니 아랍 국가들의 적인 이란에 속한 히즈불라 손에 들어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 레바논은 코로나19, 정치와 경제의 부패와 부조리, 히즈불라 무장 세력의 압박, 대규모 거리 시위 그리고 국민들을 고통으로 몰고 있는 초인플레이션이 문제이다. 히즈불라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가 시리아 국민들을 살해할 때 그를 도왔고, 사우디아라비아 민간인을 공격한 예멘의 후스를 도왔다. 

히즈불라 때문에 레바논 원조를 망서리는 아랍국가들

많은 아랍국가와 서방 국가들이 지난주에 이어서 이번주에도 레바논을 돕겠지만 히즈불라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외국 특히 순니 아랍국가의 원조는 제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레바논을 돕겠다고 했는데 레바논 정부가 아닌 레바논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주 레바논에서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필자와 잘 아는 대학 총장이 베이루트 소재 대학교 건물의 유리창이 깨진 사진들을 여러 장 보내왔다. 베이루트 폭발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건물들의 유리창이 산산 조각난 사진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인터넷에서 레바논 어느 대학교수의 일상을 적은 글을 읽으면서 레바논 국민의 생활이 심각하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레바논의 화폐 가치가 달러화와 비해 심하게 추락하고 있다. 식료품을 비롯한 물가가 통제되지 못하고 있고 레바논 국민들의 월급은 예전과 동일하여 인플레가 심한 물가 때문에 구매력은 예전 같지 않다. 

레바논 국민의 절반 이상(55%)이 빈곤층 이하의 삶을 살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한끼를 먹기가 어렵다고 한다. 레바논에는 현재 150만명의 시리아 난민과 5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살고 있다. 코로나 이후 수많은 일용근로자들이 수입이 없어지고 붕괴되는 경제 속에서 부도가 난 회사에 다니던 직원들이 길거리로 내 몰리고 있다. 지난주 베이루트 폭발로 사망한 유가족과 실종된 사람 그리고 부상을 입고 치료 중인 레바논 사람들에게 국제 사회의 도움이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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