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림길 - 코로나19 이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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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림길 - 코로나19 이후 (3)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 승인 2020.05.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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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역사를 더듬어본 아랍인들의 팔레스타인 해방 

역사를 뒤돌아 보면 팔레스타인 분할안은 1947년에 발표된 이후에 일부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그 땅에서 나오게 한 후 이스라엘 사람들을 공격하자는 말을 했다. 그러나 사우디의 압둘 아지즈 왕과 일부 아랍인들이 현실성이 없다고 반대를 했고 팔레스타인에 지원군을 보내는 것도 흐지부지 돼 버렸다. 

1950년대에는 민족주의(까우미야)와 나세르 주의(나씨리야)와 좌익 정파(타이야르 알야사르)가 “강에서부터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자”는 구호를 외쳤다. 

1960년대에는 바아스당의 정파가 등장했는데 팔레스타인 해방을 두고 값을 올리려고 경매의 역사가 시작됐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 기간 동안에 팔레스타인 안에는 여러 분파(파싸일)들이 등장했고 각기 모토를 내걸고 서로를 죽이고 폭파하고 파괴하는 일을 일삼았다. 그리고 민간을 겨냥한 테러가 이어졌고 1967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이런 패배 뒤에는 여러 분리운동(인끼사마트)과 여러 슬로건들이 많아졌고 정치적 이슬람(알이슬람 알씨야씨)의 조직들이 생겨나고 또 다른 슬로건들이 추가됐다. 

이집트의 대통령 안와르 알사다트만이 현실적이고 이성적이고 실제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는 평화의 의도를 가지고 전쟁에 돌입했는데 이집트인들은 아랍이 1973년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한다(2020년 2월 2일 알샤르끄 알아우사뜨 지의 15면). 

그리고 사다트 대통령은 1979년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과 평화 협상에 돌입해 미국에서 캠프 데이비드 평화 협정을 이끌어냈다. 이로써 여러 슬로건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경매들이 거부되었다.
 
1980년대 아랍인들 중 경매자들이 팔레스타인에게 오슬로 협상보다 더 많은 이익을 주는 파흐드(사우디 국왕의 이름) 평화안을 거부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어쩔 수 없었다.
 
1993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음으로 오슬로 합의안(잇티파끼야 오솔로)에 동의했다. 그리고 요르단은 평화 협상(무아하다 살람)에 서명했다. 

20세기 첫 10년을 시작할 때에 “아랍 이니셔티브(무바다라 아라비야)”라고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안을 아랍 연맹이 동의했다. 21세기 초 이스라엘에서는 우익과 정착촌 건설 지지 정권들이 통치하면서 오슬로 협의와 맞지 않는 정책을 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파타흐와 하마스로 분리되면서 그 세력은 약화됐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평화안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 증거로 2006년에 실시된 자유선거에서 오슬로 합의안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60%이고, 파타흐와 그의 동맹 세력은 40%의 표를 얻었다. 

2007년 하마스는 쿠데타를 통해 가자 지구를 점유했다. 이 때부터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이스라엘의 정착촌을 지지하는 우익과 해방을 주장하는 이슬람주의 우익 간에 샌드위치가 돼 있었다. 지난 15년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안과 예루살렘 주변 지역에서 정착촌을 확대해 왔다.

아랍 무슬림이 본 트럼프의 평화안

세기의 거래에서 거래는 쌍방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하는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쌍방이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거래라서 팔레스타인이 빠져 있었다. 

두 번째는 아랍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1967년의 영토 경계를 유지하지 못한 평화안이라고 했다. 

셋째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때 동예루살렘에 팔레스타인 수도를 갖지 못하게 했다. 

넷째는 아랍인의 입장에서 보면 예루살렘의 문제(마스알라 알꾸드스), 정착촌의 문제, 치안 문제, 영토 국경 문제 이외에 팔레스타인 피란민의 문제(마스알라 알라지인)가 해결되지 못했다. 팔레스타인 난민은 1948년 팔레스타인 국민의 60%가 고향을 떠나거나 추방됐다.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의 영토가 된 지역에 살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다. 1967년에는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난민들이 추방됐든지 이주했든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금지해 왔다. 

다섯째,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제외한 요르단 계곡을 그들의 영토로 병합시킨 것은 요르단과의 협의가 필요한 내용이었다. 

여섯째, 강에서부터 바다까지 700만 명의 팔레스타인 국민이 사는데, 이 인구수는 이스라엘 국민의 인구보다 더 많아서 팔레스타인에는 가난, 실직, 부패가 심각하다. 

일곱째, 트럼프의 평화안은 트럼프의 재선과 네탄야후의 재집권을 위한 선거용이라고 일리야스 하르푸쉬는 주장한다. 

팔레스타인 수반의 입장

팔레스타인 대통령 마흐무드 압바스는 지난 4월 22일 TV에 나와서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서안의 땅 일부라도 이스라엘이 병합시킨다면,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 미국과 기존에 맺은 협약과 합의 사항은 무효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의 부동산을 보호하고 권리를 지키기 위한 필요한 조치와 결정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단 한 치의 땅도 병합한다고 발표하면 우리는 손 놓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의 방송 녹화가 미 국무장관이 “서안을 병합시키는 결정은 이스라엘에게 있다”는 말이 나오기 전인지 그 이후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덧붙여서 그는 코로나 19의 전염병 확산을 이용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땅에 자유스런 독립 국가를 세우고 수도는 동예루살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랍의 언론에서는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무시한 트럼프의 세기의 평화안은 아랍 지역의 상황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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