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잠을 청(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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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잠을 청(請)하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9.11.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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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잠은 내가 가만히 있어도 스르르 들기도 하고, 나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잠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욕구이기도 합니다. 가장 심한 고문 중에 잠을 안 재우는 게 있습니다. 정말 참을 수 없을 겁니다. 잠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찾아와서 곤혹스럽기도 합니다. 특히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찾아오는 잠, 그리고 회의시간에 스며드는 잠은 참 괴롭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는 수수께끼도 있습니다. 그만큼 견디기 힘든 게 잠입니다.

우리의 의지나 주변의 상황이 잠을 이기게도 합니다. 급한 일이 있거나 해결해야 할 일, 걱정거리가 있으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일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겁니다. 잠을 이겨내고, 잠과 거리를 둡니다. 그렇게 잠이 많던 사람이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기적 같은 일이지요. 사실 저는 밤은 잘 못 새웁니다. 혹시라도 밤을 새면 며칠 동안 크게 고생을 합니다. 자는 리듬이 깨지면 다른 곳이 아프기도 합니다. 저는 미리 서둘러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체질입니다.

그런데 정작 큰 문제는 잠을 자고 싶은데 잠을 못 자는 겁니다.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을 못 자는 것도 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불면증이 얼마나 힘든지는 못 자 본 사람은 다 압니다. 불면증은 다른 병을 부르기도 합니다. 깊은 잠을 못 자서 스스로를 가라앉게 합니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기도 하죠. 한없는 무기력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서점에 가면 불면증에 관한 책이 많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불면증을 이기는 방법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효과가 적습니다.

불면증에는 밤에 아예 잠을 못 이루는 경우도 있고, 새벽에 일찍 깨는 경우도 있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이에 따라 다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주로 나이가 많아지면 새벽에 일찍 깹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이가 많아지면 저녁에는 비교적 일찍 자는 편입니다. 새벽 기도나 새벽 공양에 할머니들이 많은 것도 다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이가 새벽에 기도를 한다면 대단한 것일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아침형 인간까지는 괜찮은데 ‘새벽형’ 인간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새벽은 고민의 시간이고,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많은 종교에서 새벽 여명(黎明)의 빛을 맞으며 수행을 하는 이유일 겁니다.

잠이 안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말에서는 잠이 안 오면 부탁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을 청하다’라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의 말입니다. 잠에게도 부탁이 필요한 겁니다. ‘청(請)’은 우리말에서 독특하게 쓰입니다. 한자어임에도 자연스럽게 여러 장소에서 사용됩니다. ‘청이 하나 있다, 청을 들어 달라, 청을 거절하다’ 등에서 독립적으로 쓰입니다. 물론 ‘청하다’처럼 ‘하다’와 함께 쓰이기도 합니다. 청은 부탁하다의 의미입니다. ‘청탁(請託)’의 줄임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탁도 나쁜 말이 아닌데, 뇌물이야기에 많이 나오다 보니 나쁜 말처럼 여겨집니다. 검은 것 옆에서 검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고 청탁(原稿請託)에서는 나쁜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부탁이라는 뜻입니다.

잠을 자야 생각이 정리되고, 심장이 제 속도로 가고, 머리가 맑아질 수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자라는 말은 달리 말하면 잠을 청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잠에게 부탁을 할 때는 자신도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우선 약속을 줄이고, 술을 줄이고, 생활을 조금 단순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흡을 가다듬는 연습도 잠을 청하는 좋은 자세입니다. 잠을 부탁하는 나의 자세를 생각해 봅니다. 좋은 생각을 하고, 고마운 일을 떠올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잠을 청하는 좋은 자세입니다.

오늘은 잠이 우리의 청을 들어주기 바랍니다. 생각해 보니 ‘편히 주무십시오.’라는 우리 인사말이 참 좋네요. 오늘 밤 잠을 청해 보세요. 그리고 편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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