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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오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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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오름의 발자취
  • 박은숙 캐나다 해오름한국문화학교장
  • 승인 2019.11.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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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인 입양인 권익신장 및 입양단체 활동지원 컨퍼런스’ 발표문

본지는 지난 11월 7일 박은숙 캐나다 해오름한국문화학교장의 기고문 <캐나다 ‘한인 입양인 권익신장 및 입양단체 활동지원 컨퍼런스’를 다녀와서>를 게재했다. 해당 기고문은 박은숙 교장이 지난 11월 2~3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캐나다한인총연합회가 개최한 ‘한인 입양인 권익신장 및 입양단체 활동지원 컨퍼런스’에 참석한 후기이다.

기고문이 나간 후 해당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에 대한 독자들의 요청이 있어, 박은숙 교장의 발표문 전문을 게재한다.

박은숙 해오름한국문화학교교장은 지난 2006년부터 캐나다 밴쿠버에서 현지 동포자녀들과 한인 입양인 자녀 및 가정을 대상으로 한국어 및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해오름한국문화학교를 운영해오고 있다. 이 학교는 재외동포재단으로부터 토요한글학교로 지정됐으며, 한국 보건복지부로부터 해외 입양인을 위한 사후관리 사업 단체로 지정됐다.

이 발표문은 박은숙 교장이 지난 10여 년간 현지 한인 입양인 자녀 및 그 가족과 함께한 발자취에 대한 것이다.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밴쿠버 해오름한국문화 학교 박은숙입니다. 해오름 한국문화학교는 건강한 입양가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언어, 생활, 정신문화 교육을 통한 지지 프로그램 제공 및 문화교류의 일익을 담당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지도자로 발돋움을 목적으로, 개인 기업, 한국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입양원의 해외 입양인 사후 관리 사업 지원 및 자원봉사자들의 인적, 물적 자원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처음 우리 아가들과 만난 날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겠습니다. 제가 살던 지역에 입양아를 둔 부모님의 요청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던 중 성인 입양인 그룹이 마련한 ‘Big Family Day’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가들의 맑은 웃음과 부모님들의 표정에서 느낀 무한한 사랑에 이끌려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의 사진을 보내며 한글을 가르치고 싶다고 제안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가가호호 방문 지도를 시작했습니다. 한글 교육만을 위한 언어교육은 언어 환경이 취약한 서양인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연령과 성격, 건강, 그리고 재능을 파악하여 그림에 재능이 있는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통해 한글과 접목하였고,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는 노래로, 리듬으로, 때로는 전통 악기를 통해 뿌리 글자를 가르쳤습니다.

더러는 한국 마켓도 가고 음식 만들기를 통해 소통의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 양부모님들은 마음의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잠시 하다가 그만둘 경우 상실의 아픔을 아이들에게 줄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글 교육보다 심리적 불안감을 이겨낼 수 있는 정서적 안정과 사랑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몇 시간씩 운전하고 개별 방문 수업을 해 온 탓에 개인적 일상과 건강에 무리가 올 즈음, 6.25 참전 유공자회에서 사무실을 제공받아 모듬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현재는 아니지만 한인회에서 회관 무상 임대와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입양원의 입양인 사후관리 지정 사업으로 점차 한국문화학교로 자리매김해 갔습니다.

아이들은 화장실에 갈 때조차 부모의 손을 놓지 않았고 부모님과 떨어져 수업하는데 5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모님 역시 양육 과정 중 내 자녀가 입양인이라는 것 때문에 위험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차별받고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갈등이 뒤따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간 한국방송국, 로컬 신문, 방송에서 저희 그룹에 대한 인터뷰 및 취재 요청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응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개인적인 일상 존중과 보호 때문입니다.

매주 한글 교육 및 문화 활동 외에도 현지 한인사회의 명절이나 한인의 날에 참여하여 한국의 관습과 세시풍속을 몸소 체험하는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6.25 행사, 광복절 행사에 참여하여 역사의 산 증인인 6.25에 참전하신 원로 어르신들과 교류하며 한국의 정신문화를 달게 배웠습니다.

몇 년 전에는 Touch & Touch를 통해 성인이 된 입양인과 양부모와 함께 양육 자녀의 성장기에 겪는 어려움과 정체성 등을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인이 된 입양인이 자랄 때 받았던 상처를 양부모님과 이야기하고 양부모님 역시 아이들이 자라면서 느꼈을 어려움에 대해 서로 이해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양부모님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녀에게 입양 사실을 알리는 시점, 친부모를 찾고 싶은 지, 시도를 해 보았는지 혹은 친부모를 찾도록 도와주는 시점과, 입양인이라는 것 때문에 입은 사회적 편견에 의한 차별대우, 양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어드바이스와 바라는 점 등이었습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이런 활동을 통해 한국에 대해 좀 더 알고 유대감을 가졌다면 정말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모두 입양이라는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고 .. 지금같은 이런 대화를 할 기회도 없었고. 정말 너무 좋고 감동스러워요...” 라며

입양인들의 토론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녀에게 입양 사실을 알리는 것도 좋지만 어린아이들은 뭔가 억지로 요구되는 걸 싫어하고 그건 굉장히 큰 충격이자 도박이 될 수 있으므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아이들이 준비가 되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좋겠다.

2. 친부모를 찾는 것도 정체성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시기가 있지만 그 또한 아이들에게 결정권을 쥐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숨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3. 그리고 부모님들이 친 생부모를 찾아주는데 의무감은 갖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아이들의 생애를 사랑과 정성으로 감싸는 부모이지 않은가. 게다가 이런 그룹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인이라는 자존감과 정체성을 가지고 커 나가지 않는가.

4.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친부모를 찾을 생각을 하지만 내가 누구 인가에 대한 의문점,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는다는 생각이지 혈육에 대한 것은 아니다.

5. 살아오면서 입양된 사실이 자신을 힘들게 하거나 분노한 행동을 한 적이 있으냐고 했는데, 각 경우마다 다르겠지만 특별하다는 생각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며 누구나 다른 여러 모양으로 겪을 수 있는 일이라 성인이 되면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였고 동양인이라는 인종차별은 받은 적은 있지만 입양인으로서 차별대우를 받은 기억은 없다.

6. 끝으로 양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과 바라는 것은 지금 부모님들이 해오름 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해주고 있는 걸 계속 해주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그 이상 더 바랄 나위 없이 천천히, 생활처럼 한국문화를 접하게 해주는 것, 아시안으로 백인 가정에서 겪는 문화적 충격으로 자라면서 느낄 수 있는 눈초리와 혼동 없이 두 문화를 함께 이해하고 공유하며 한 가족으로 사는 일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속적인 유대감을 갖기로 한 성인입양인과 양부모님이 함께 나눈 자리, 어렵지만 풀어내지 못하면 생애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할 퍼즐 조각을 조심스레 꿰어 맞춰 놓은 시간이었습니다. 두 딸의 아버지가 된 45세 킴은 가족 모두와 함께 참석하여 입양인에게 힘과 위로의 메시지를 나눴습니다. 킴 역시 자신이 어릴 때 이런 그룹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더라면 지금의 삶이 많을 달랐을 거라 토로했습니다. 실은 킴은 어려운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사소한 싸움으로 전과 기록이 있습니다. 참여에 대한 감사의 메일을 보내자 제가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답장을 받고 웃음 섞인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납니다.

10여 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함 들어가는 날, 전통혼례 및 폐백을 재현하면서 지역 어르신께 절을 올리고, 한복을 입고 추석 차례 상을 준비하여 차례를 지내고 커다란 양푼에 해보다, 달보다 더 크고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 한인회관에 오신 분들을 모두 대접했습니다. 봄맞이 가족 소풍 및 민속놀이, 바자회 마당은 얼마나 값진 경험이고 추억이었는지요?

매년 방문하는 김정홍 도예가 부부에게서 받은 외갓집 사랑, 캔 남사당에서의 민요 시간, 김영훈사범의 택견 시간에는 교사들의 북장단으로 아이들과 부모님은 리듬에 몸을 실어 넘실대는 삼태극을 그렸습니다. 올 여름 4박5일간의 캠핑은 얼마나 신나고 즐거웠는지요. 함께 자고 일어나 아침에 컵라면에 김치를 먹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들은 깜짝 놀랐지요.

한창현 선생님의 탈춤과 한라장사 윤문기 부자의 씨름 체험, 합기도, 소고춤 등 한국의 멋과 맛에 빠진 시간들이었습니다. 또 한국의 여류작가들의 해오름 장학금기금마련을 통해 한국 어머니의 가슴 뭉클한 사랑도 함께 나눴습니다. 진주를 품은 아이들의 마음을 화폭에 담고 싶다는 작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모국 방문을 통해 한국의 정과 멋과 정서를 한 몸에 안기도 했습니다. 고궁과 서울 강남의 거리를 걷고 재래시장, 롯데월드, 민속촌에서의 가슴 벅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DMZ에서의 일일 군인 체험 중 만난 군인 아저씨의 친절하고 따스한 사랑은 잊지 못할 한국인으로 남았습니다. 아이들이 입양된 기관 내의 서울 영아 일시 보호소도 둘러보았습니다. 임시 보호된 3주 미만의 작고, 예쁜 아기들은 새근새근 잠들어 있거나 선잠에서 깨어 뒤척이거나 빈 공갈 젖꼭지를 물고 배냇짓처럼 배시시 웃고 있었습니다. 작은 천사였습니다.

“얘들아! 우리가 아기였을 때 여기에 있었대, 믿어지지 않아. 이렇게 예쁜데.” 아이들은 한 동안 아기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가늘게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스침과 현관을 나오던 그 순간이 나는 아직도 선합니다.

아이들이 느끼는 모국은 모두가 달랐습니다. 꼭 기억하고 싶은 건 다시 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일정 내내 3월의 꽃샘추위로 눈이 내리고 날씨가 매서웠지만 그조차 아이들에게는 설레는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아이들은 입양 후 첫 모국 방문이라 많이 설레고 아파하고 다시 돌아올 모국이라는 마음을 담고 돌아왔습니다.

사람의 DNA는 2대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뿌리내림한 그 음식 맛을 통해 아이들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내 주장과 고집에 매주 점심을 마련하느라 고생한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의 사랑을 해오름 가족들은 기억합니다. 한솥밥을 먹고 서로를 배워가는 동안 우리는 닮아갔습니다. 말없는 공감과 평온, 그리고 더 이상 나눌 수 없을 만큼 함께한 사랑을 통해 세상이 얼마나 너르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살아가는 일, 소통과 공감이었습니다.

10여년 아이들의 맏형으로, 사물놀이 지도 교사로, 부모님들의 연결고리이자 성인 입양인의 친구로 함께해 온 아들 현수와 수업 전 화장실 청소부터 잘고 궂은일을 마다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어울리는, 보이지 않는 자리매김으로 더욱 빛나는 김현주 선생님, 노령에도 불구하고 늘 웃음으로 음식 봉사를 해주시는 이옥순 할머니, 그 동안 해오름의 마중물이 되어 준 자원봉사자 선생님들과 10년 이상을 함께 해온 해오름 가족과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귀한 자리매김입니다.
 
종강하는 날이면 부모님과 아이들은 말합니다. 해오름 참여 10년, 아이들이 자신의 자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졌고 아이들이 한국 문화를 포옹하며 청소년기에 접어든 요즈음,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기쁨과 감동의 메시지를 보내옵니다. 해오름문화학교에서 한국의 생활, 언어, 정신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동안 다른 입양 가족들과의 연결고리를 갖게 되었고 부모님 역시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라 가족으로서의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자녀들의 정체성 함양과 더불어 모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게 되었음을 토로합니다.
 
특히 한국 음식 만들기를 통해 매주 한솥밥을 먹는 동안 모두가 한 가족과 같은 유대감과 사랑을 갖게 되었고 한국의 전통 사물놀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에게 모국의 심장소리를 들려준 값진 선물이었다고 얘기할 때 모두의 눈시울은 뜨거워집니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 응급차에 실려 가면서까지 한국인의 끈기와 의지를 보여줬던 어린 데이빗의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해오름의 얼굴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한국인 기질은 부모님을 변화시키기 시작했고, 10여년 아이들과 함께한 교사들은 부모의 마음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학교의 학생과 부모와 교사가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포용하고 서로 닮아갑니다. 자원봉사자의 변함없는 따스한 사랑과 헌신은 그 어느 말로 감사함을 표현할 수 없다는 가슴 뭉클한 말들은 교사들이 묵묵히 헌신해 온 10년에 대한 아름다운 선물이었습니다.

해오름 가족과 나눈 소중한 경험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나누는 사랑과 희망의 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희망의 꽃에 입김을 불어넣어 주는 캐나다 속의 한국인이고 싶습니다.

입양인 여러분! 언제든 밴쿠버에 오시면 해오름에 찾아오세요. 여러분은 우리의 가장 소중하고 귀한 가족입니다.

                                                   - 2019년 11월 2일 해오름한국문화학교 교장 박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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