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의 진면목을 보여준 연주회 ‘Spect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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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의 진면목을 보여준 연주회 ‘Spectrums’
  • 김운하 편집위원
  • 승인 2019.11.0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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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기 지휘의 모차르트 신포니에타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다녀와서
Spectrums-민정기 지휘자 (사진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Spectrums-민정기 지휘자 (사진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지난 10월 31일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모차르트 신포니에타 오케스트라’(상임지휘자 민정기)의 현대음악 연주회 ‘Spectrums’는 제목대로 현대음악을 빛으로 보여주면서 뇌리에 소리로 남게 했다.

이번 연주회는 작년 9월 4일의 오스트리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정해진 2019년 양국 문화교류의 해 프로젝트에 따라 양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사들의 일환으로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대학교 대연주장에서 열렸다.

이러한 행사는 정치나 외교의 요식적 배경이 깔려 있어서 정작 중요한 예술성은 떨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 나로서는 한 가닥 부정적인 인식을 떨치지 못한 채 연주회장에 들어섰다.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이 모든 잡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오로지 홀린 듯이 음악에 빠져들어 연주회의 마지막 순간까지 헤어날 수가 없었다. 철저히 ‘음악’이라는 단 하나의 위대한 존재가 분광(分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귀로 들려주는 음악의 광상(光像)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움 그 자체로서 연주에 빠져들게 했다.

우크라이나의 젊은 여류작곡가 Anna Arkushyna의 작품 ‘Murmuration’(2014)이 첫 곡으로 연주됐다. 이 단어는 ‘(불평)중얼거림’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작곡자는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에 차마 내뱉지 못하고 중얼거리며 속으로 삭이는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느껴져, 마치 우크라이나의 현 정치적 상황과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받는 차별에 대한 반항으로 다가왔다.

마음 속의 갈등을 누르고 차분해지려 애쓰는 모습에서부터, 그 갈등을 조금씩 입 밖으로 표현하는 기묘한 음향이 곡 중간 중간에 거대한 숲속 새떼들이 지저귀는 소리처럼, 또는 사람들의 울부짖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처절함과 고통, 항의의 음악미학을 맛보게 했음인지!

요하네스 마리아 슈타우트-작곡가와 민정기 지휘자 (사진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마르코 되팅어-작곡가와 민정기 지휘자 (사진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두 번째 곡은 젊은 나이에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우뚝 솟은 요하네스 마리아 슈타우트(Johannes Maria Staud) 모차르테움 작곡과 교수의 작품 ‘그날의 균열을 통하여(Der Riss durch den Tag:2011)’였다. 스타우트의 오페라 Berenice의 대본작가로서 이미 그와 공동 작업을 했던 두르스 그륀바인(Durs Grünbein)의 대사에 붙인 음악이다.

작곡자는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다고 한다. “낭독자나 배우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동안 음악이 그를 반주하게 하면 어떻게 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언뜻 아르놀트 쉔베르크가 그 틀을 잡아놓은 모노드라마의 형태를 떠올릴 수가 있겠다.

드레스덴 출신의 작가 두르스 그륀바인의 작품 ‘풍자 다음에(Nach den Satiren)’에서 그들은 다섯 개의 장면을 골랐다. 한 사람이 도시를 걸으며 대도시의 억압과 독재에 관한 역사적인 인간관계들을 죄책감을 억누르며 관찰하면서 인간으로서 계속해서 개인생활을 이끌 수 있는 해답을 찾으려는 내용이다. 이 흥미진진한 주제의 대사를 가지고, 작곡가는 독백과 음악, 모노드라마를 조합하는 다양한 형태로 창작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말한다.

슈펙트룸스-민지휘자와 낭송자 (사진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슈펙트룸스-민지휘자와 낭송자 (사진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이 작품은 원래 스위스 출신의 명배우로 올해 작고한 브루노 간츠를 위해 쓰여져 초연된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국립 모차르테움 대학의 연극학부 재학생 트리스탄 타우베르트(Tristan Taubert)가 낭독자로서 열연을 했다. 젊은 배우가 참으로 성숙하고 능수능란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연기와 음성을 절묘하게 음악으로 맞추어 작품 전체를 생동감 있게 끌고 간 민정기 지휘자의 능력이 유난히도 돋보이는 무대였다.

휴식시간 후에 세 번째로 연주된 프랑스 작곡가 얀 로빈(Yann Robin)의 ‘상치(Asymetriades:2014)’는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일종의 협주곡이다. 작가 스타니스라브 렘(Stanislaw Lem) 의 공상과학소설 ‘솔라리스(Solaris)’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서, 음악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준 놀라운 작품이었다.

분명히 모차르트나 브람스의 작품을 연주할 때 쓰이는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이었는데, 마치 무한한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인가 만들어졌을 법한 기묘한 사운드가 나왔다. 흡사 SF공상 과학 영화의 어느 생소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무한한 혼돈 속에서 무언가 질서정연한 듯,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없는 황홀경에 빠져들게 하는, 일찍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사운드와 영상을 경험하게 했다.

특히, 오케스트라에서 저음을 담당하는 육중한 악기로만 알고 있던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가 어찌 그리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지, 그 연주는 파가니니가 환생해서 보더라도 놀라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나자릴 스테츠(Nazarii Stets)는 26세의 나이에 우크라이나 키에프 음악원의 교수로 발탁될 만큼 뛰어난 연주력을 갖고 있는 연주자로서, 이 작품을 소화해 내는 능력을 마음껏 펼쳐보였다.

콘트라베이스 주자 (사진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콘트라베이스 주자 (사진 김운하 해외편집위원)

민정기 지휘자의 설명에 따르면, 작곡가 얀 로빈은 프랑스 작곡가 겸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의 평생 노력이 그대로 녹아있는 파리의 IRCAM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다양한 실험 작업을 통해 새로운 음향을 추구하는 작업을 해 온 그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이다. 현재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의 작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이날 함께 작품을 발표한 작곡가 요하네스 마리아 슈타우트 교수와 교환교수 계획으로 11월에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서 가르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곡은 오스트리아의 젊은 작곡가 마르코 됫트링거(Marco Döttlinger)의 작품 ‘거울속의 두개의 단어(Wie zwei Wörter im Spiegel:2015)’였다. 이제까지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었다. 팀파니의 아주 작은 연타와 바이올린의 느린 패시지로 시작한 이 음악은, 여리고 작은 동질의 요소들이 시간차를 두고 서서히 쌓여 거대한 소리의 산을 이루었다가 일시에 둑이 터져 무너져 내리는 듯 한 음향을 들려주었다. 곧이어 전혀 다른, 마치 악기가 아닌 컴퓨터에 의한 전자음향인 듯 한 소리가 메아리치며 전혀 생소한 재즈풍의 음악이 무질서하게 반복되면서 점점 신명을 더해가다가 갑자기 끝을 맺는 매우 신선한 발상의 음악이었다.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며, 마치 아주 작은 개미들이 티끌만한 먹이를 힘들게 천천히 운반하며 모여들고, 여러 방향에서 모여든 수많은 개미들에 의해 오랜 시간 동안 마침내 거대한 산을 이루었으나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일시에 무너져 내리며 아비규환을 이루는 환상, 언덕 위의 베짱이들이 이를 비웃으며 북과 나팔을 울려대는 듯한 만화 같은 영상, 이런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작곡자의 음악적 환상상기 능력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이날 연주된 네 개의 작품들은 각양각색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그 어느 하나 대단하지 않은 작품이 아닌 것이 없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으로 탁월한 지휘능력을 보여준 민정기 지휘자는 청중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나는 십여 년 전 민정기 지휘자가 모차르트 신포니에타를 창단할 때의 연주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작년 윤이상 선생 작품만으로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를 지휘했던 그의 모습도 생생하다. 민 지휘자는 해가 갈수록 더욱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모차르트 신포니에타도 그간 새로운 세대로 교체되면서 멤버들이 많이 바뀌었으나 그 연주력은 일취월장하고 있다. 민정기 지휘자와 모차르트 신포니에다 오케스트라에 기대와 함께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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