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말할 때 아니다"회피, "화교정책은 정말 놀랍다" 격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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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송금 말할 때 아니다"회피, "화교정책은 정말 놀랍다" 격찬
  • 한겨레
  • 승인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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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드시고 말을 나누죠. 이 찻잔들은 제가 지인들과 함께 운영하는 고향 하동의 도요지에서 직접 구운 겁니다.” 권병현 이사장은 “주중 대사를 그만 두고는 이제 고향에서 도자기나 굽겠다고 말했는데 다시 공직을 맡게 됐다”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막사발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국보가 된 이야기 등 차를 마시는 동안 우리 도자기 자랑에 끝이 없었다. 하지만 찻잔 안에는 중국 녹차가 담겨 있었다. 한국산 차보다 낫냐는 질문에, 그는 직답보다는 “중국은 차의 원산지며 차마시는 역사가 수천년이나 됐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어한 듯했다.

그에게 중국은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이다.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이 처형 당해도 주중 대사관과 외교부가 재판 진행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비난을 받았던 지난 99년 당시 그는 주중 대사였다.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 때도 주중 대사로 어느 정도 간여해왔지만 대북 송금 등에 대해서는 “말할 때가 아니다”며 대답을 피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게 말했다. “주중 대사를 맡으며 중국의 화교정책에 놀랐고, 한국의 재외동포 정책에 실망하게 됐습니다.”

권병현씨는?
30여년 아시아 외교관 지내, 한-중 수교 이끈 뒤 주중대사

권병현 이사장은 경남 하동에서 나서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지난 1962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수석합격했다. 이후 지난 65년부터 2000년 말까지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외무부 아주국장 주오스트레일리아 대사, 주중 대사를 지내는 등 초임시절 로스앤젤레스 영사를 지낸 것을 빼고는 줄곧 아시아지역을 맡아왔다. 로스앤젤레스 근무 시절은 중국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당시 중국 총영사관을 통해 칭화대 출신 중국인과 교분을 쌓았고 그때부터 중국에 큰 관심을 갖게 됐으며 중국어도 배우게 됐다고 한다. 그뒤 본부로 돌아와 틈나는 대로 중국어 실력을 다듬었다.

특히 지난 92년 8월 한·중 수교 때 본부 대사를 맡으면서 양국 협상을 담당하는 태스크포스팀을 이끌어 한·중 수교의 막후 산파노릇을 해냈다. 이어 지난 98년부터 2년 4개월 동안 주중 대사를 지내며 중국 화교정책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고 한다. 지난 93년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무역투자위원회 초대위원장을 맡으면서 경제 외교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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