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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튀니지 대통령 서거 이후 새로운 정치판과 실용주의 (하)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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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5  09: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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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알바지 까이드 알십시, 70년간 튀니지 정치 지도자

알십시는 1926년 오스만 가문에서 태어났고 그의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 꾸란의 4분의 1을 암송했다고 한다. 그는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배웠고 1948년 프랑스에 가서 바칼로리아 후반부를 마무리하고 1949~1950년 파리에서 법을 공부했는데 그 때 하비브 알부르끼바를 만났다. 1952년 튀니지에 돌아와 변호사로서 활동했고 1950년 후반에는 내무부에서 일하다가 1960년대에는 안기부 부장을 역임하고 나서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1971년 여당의 전당대회 이후 그는 부르끼바 정책에 반대하는 여권 내 반대세력에 동조했고 부르끼바에게 다당제 실시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결국 부르끼바와 그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쫓겨났고 다시 변호사로 개업했다.

1981~1986년 자유주의 정부였던 무함마드 마잘리 총리 시절에 그는 외무부 장관으로 다시 발탁됐고 자인 알아비딘 븐 알리 대통령 시절에는 여당에 참여해 1991~1992년에는 국회의장이 됐다. 얼마 못가서 그는 다시 변호사로 되돌아갔다. 그는 변호사로 일하는 동안 정치인들과 사업가들을 매일 만났다. 

1956년 튀니지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기 전부터 그의 정치적 이력은 시작됐는데 1대 대통령 알하비브 부르끼바(1956~1987), 2대 대통령 자인 알아비딘 븐 알리(1987~2011)에게 발탁돼 공직에 있었고 2014년 12월 31일 88세의 나이로 민선 대통령이 됐다. 그때 그의 정당이 제 1당이 됐고 이슬람주의 정당 ‘알나흐다’ 당이 제2당이었다.

그의 지난 5년간 대통령직에 대한 튀니지인의 평가는 엇갈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당과 야권은 그가 극단적인 정치적 및 종교적 성향의 사람들과 자신이 속한 세속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성향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잘했다고 평가한다.

2011년 이후 이슬람주의 정당은 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웠고 그는 국민 화합과 통합 정책을 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의 말년에는 그의 정당 안에서 리더들이 서로 나뉘게 됐는데 그것은 같은 정당 안에서 일부 지도자들이 이슬람주의 정당과 그가 연대한 것을 두고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70년간 튀니지 정치계에 몸담았던 그는 튀니지 역사에 가장 오랫동안 그의 족적을 남겼다.            

알십시가 튀니지에 남긴 공헌

알십시는 1956년 튀니지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국가를 세우는데 참여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자유주의(liberalism)를 신봉하고 세속주의와 시민 국가를 지향한 사람이었다. 프랑스에서 수학하고 두 명의 대통령 하에서 공직생활을 했던 그는 아랍의 봄 이후 튀니지 국민들에게 안전밸브로 여겨졌다. 그가 서거한 뒤 아랍국가들 중에 세속주의를 표방한 국가수반은 없었다. 중동 국가들 중에서 대놓고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로 터키와 카타르가 있다. 

아랍혁명이 일어난 뒤 헌법 개정위원회(al-majlis al-watani al-ta’sisi)가 뽑은 과도기 정부의 대통령은 무함마드 알문씨프 알마르주끼(74세)였다. 그는 이슬람주의자 함마디 자발리(알나흐다 당 소속)를 총리로 임명했다. 일부 정치 평론가들은 알마르주끼는 정치적 이슬람(알나흐다 당)의 정치적 얼굴로 간주했다. 알십시는 2014년 프랑스 언론과의 대담에서 “알마르주끼를 찍은 사람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이고 테러리스트”라고 했다. 

지금 튀니지가 외교와 치안이 가장 중요할 때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리비아와 알제리가 치안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알마르주끼는 리비아 내정에 개입해 비난을 받았지만 알십시는 외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금했고 따라서 그가 떠난 튀니지와 그 주변 국가들은 치안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치안을 유지하려다보니 너무 권위적인 정부였다고 했으나 그가 재임한 기간 튀니지는 비교적 안정된 국가였다.

그가 서거하기 전부터 그가 창당한 ‘니다 투니스’가 정치적으로 정당적으로 사분오열돼 있어서 그의 빈자리가 정치권에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다. 그만한 정치적 이력과 많은 경험 그리고 국민적인 카리스마를 갖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차기 선거에 나올 수 있는 정치적 리더들로는 현 총리 유수프 알샤히드, ‘타흐야 투니스(튀니지여 영원하라)’ 당의 사무총장 살림 알아자비, 이슬람주의 정당 알나흐다 운동의 당수 라쉬드 알간누쉬, ‘알타이야르 알디모끄라띠’의 리더 무함마드 압부, 전대통령 알문씨프 알마르주끼, 이슬람주의에 속하는 여성 변호사 아비르 무싸, 언론인이고 사업가인 나빌 알까라위, 노동자의 공산주의 정당의 사무총장 함마 알함마미 등이다.

일부 언론이 그동안 튀니지를 보고 “민주화를 이룩한 튀니지”라고 했으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튀니지”라고 했다. 현재 이슬람주의의 알나흐다 운동의 당수는 라쉬드 알간누쉬이고 알나흐다 당에게 비밀 조직이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튀니지는 아랍 혁명 이후 부르끼바식 정치적 실험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튀니지 여성들은 아랍의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성의 권리를 되찾았다. 이달 초 튀니지 정부는 여성에게 관공서에서 눈에 베일을 하는 니깝 착용을 금지시켰다. 물론 니깝은 꾸란이 규정한 복장이 아니므로 앞으로 니깝 착용을 금지하는 나라가 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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