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할 유산들>한국병원의 고매하신 사모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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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할 유산들>한국병원의 고매하신 사모님-5
  • 임용위
  • 승인 2004.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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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뭐 의술에 대해서 아나?'
김종택 한국병원 소식은 한인매일 귀퉁이 지면에 네 다섯줄 '한인동정'으로 장식했다. 그 날의 1면 톱기사는 기온이 점점 떨어져 간다는 멕시코 날씨 소식이었고, 1면 톱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신문의 한 페이지 정도는 할애될 것으로 예상하고 밤새 써 올린 기사는 싹뚝싹뚝 잘려나간 체 간략하게 전 날의 상황만을 보도하고 말았다.
아마도 신문이 편집되고 인쇄되는 시간에 필자가 편집실에 있었다면 한바탕 대 소동 끝에 내 고집대로 기사가 나갔을 지는 모를 일이다. 정화위원회 사무실에서 오후 늦게 펼쳐 본 그 날의 신문은, 김종택 고발사건을 둘러싸고 지루하게 벌어진 겔러리아 커피숍에서의 설전 풍경은 모조리 삭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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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택씨가 정말로 가정의학과를 졸업했다면 그것은 의과대학이 아닌 자연계 대학의 가정학과를 졸업했다는 셈이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K대학에서 배출한 가정의학과 출신의 의사 명단 자료를 들이밀었을 때 김종택씨는 '실은 K시 국립대가 아닌, 사립대 출신'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나는 김종택씨에게 들었던 그 마지막 말을 끝으로 두 해를 넘기는 동안 한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다. 그는 끝까지 뭔가의 꼬뚜리(정당한 의사자격이 있다는)를 잡기 위해 거짓 경력들을 새롭게 발표했고 금방 발각 나면 또 다시 산을 교묘하게 넘어가려는 재주를 발휘했다. 그런 그와 말상대를 하는 것조차가 나는 싫었다. 인간이 '인간'이라는 낯 두껍을 둘러쓰고 최악으로 나빠질 수 있는 데까지의 한계를 보여주고도 그는 부족한 게 많았다.
김종택씨가 '한국에서 의사면허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그날 밤 정화위원회 사무실에서 수신한 한국의사협회로부터의 팩스를 통해 확연히 드러났다. 이미 이곳에서 수령했다는 허가증이 가짜로 판명된 그 전날의 상황들과 함께 김종택씨는 의사가 아닌 의사행세로 2년 넘게 선량한 동포들을 대상으로 약을 처방하고 시술과 주사를 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진 것이다. 충격과 분노가 한꺼번에 용솟음쳐 오르는 멕시코 한인동포들의 대체적인 틈바구니에서도 그를 감싸고 비호하려는 세력들의 거센 입김 또한 만만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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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택씨의 용서받을 수 없는 사기행각에 쐐기를 박는 e-메일 하나가 한국으로부터 날아온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A씨 아기의 주치의(한국 상지클리닉 이석범 전문의)로부터 전해온 '화농성 관절염'은 3차 수술을 기다리는 아기의 상태가 많이 호전적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내용에 담고 있었다. 전문의는 MRI 판독사진에서 아기 몸에 투여(김종택씨로부터)된 마취제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전하고 있었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이석범 전문의로부터 받은 답변서는 신문에 개재해야겠다고 결심했던 필자는 비로소 피해자로 밝혀지게 된 A씨와의 합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 김종택씨를 정화위 사무실에서 마지막으로 보고 시내로 나왔다. 어둑한 밤거리의 싸늘한 기온이 그 날 신문 톱기사를 장식했던 것과 똑같이 차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예 있는 사람들이 뭐 의술에 대해서 알기나 하나?'
시내를 우두커니 걷다가 김 여사의 그 비아냥거리는 한마디만 떠오르지 않았어도 나는 곧장 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전 날 20여명이 모인 앞에서 당당하게 조롱 섞인 말투로 뇌까렸던 '그 한마디의 다음 변명은 무엇일까?'가 궁금해지자 필자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잘난 쌍판떼기라도 한번 쳐다보고 가지 않으면 도저히 잠을 청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측은지심도 잠깐

자정이 가까워지는 한국병원 앞에는 동포들 예닐곱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김씨 부부의 도주를 우려한 동포들의 자진 감시가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었다. 당장 '고발'을 해 버리면 죄의 대가를 충분히 받을 족속들을 같은 한인이라는 처지의 망신살이 두려워 그러지도 못하고 있는 태세들이다. 임신중절 수술의 후유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피해자와 함께 한 감시반(?)들은 찬바람 속의 불꺼진 한국병원 건물 2층 창문만 연신 바라보며 절로 쏟아져 나오는 한숨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1시간 이상을 두드리고 전화하고 부른 끝에 간신히 한국병원 2층 출입을 김 여사에게 허락 받았다. 떼 몰려 들어가려는 병원 앞의 동포들을 자제시키고 겨우 필자 한 사람이 통과허락을 받는 순간이었다. 2층 병원 대기실에는 다소 지치고 초췌한 모습의 김 여사와, 그녀의 조카이자 나의 동료 후배기자인 H양(당시26세) 단 둘이 앉아있었다. 앉기를 권하는 동료기자와 달리 시선을 마주하지 않으려 하는 김 여사의 의외의 저돌적인 당돌함은 전 날에 본 모습과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인에게 와락 느껴지는 측은지심은 같은 '동포'라는 생각에서였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물의를 일으켜서 어떻게 뵐 면목이 없다'
이 말이 김 여사의 입에서 최소한 나올 것이라는 순간적인 예상은 적중하지 않았다. 어찌됐든, 사면초가의 처지에 놓인 김종택 가짜 병원장의 아내가 겪고있을 '고통스러움'이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갈 듯도 해서 우선은 서투르나마 위로의 한마디로 시작해 변명을 들어볼 심산이었는데, 김 여사가 필자에게 두 눈 부릅 치켜 뜨고 내뱉은 첫 마디는... 차마 상조조차 하지 못했던 악다구니 그 자체였다.
"왜? 이제 속이 다 시원하냐? 이렇게 만신창이 만들어 놓는 게 니 놈 목적이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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