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할 유산들>한국병원의 고귀하신 사모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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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할 유산들>한국병원의 고귀하신 사모님-1
  • 임용위
  • 승인 2004.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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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뭐 의술에 대해서 아나?'
2002년 10월2일, 정화위원회(위원장 김명기) 앞으로 접수된 고발 진술서는 실로 충격에 가까운 내용으로 A-4 용지 한 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국병원 원장을 고발한, 생후 21개월 된 아기의 아버지인 A씨는 세 번째 수술을 앞둔 아기와, 보호자인 아내를 한국에 따로 떨어뜨려 놓고 전전긍긍 속만 태우고 지내오던 중 초주검 상태가 되어 진술서 한 장만을 손에 쥐고 정화위원회 사무실을 두드렸다.
필자가 정화위원장의 기사 제보연락을 받은 시간은 피해자 A씨가 상담을 마치고 돌아간 어둑해질 무렵의 초저녁이었다. 진술서에 밝혀진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종택 한국병원장은 천인공노할 위인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A씨의 고발진술서를 거의 믿지 않았다. 1년 넘게 한인의료원으로 멕시코 한인사회에서 유일하게 공신력 있는 의술을 펼쳐왔고, 종교단체가 주관하는 의료봉사활동을 끊임없이 실천하며 많은 한인동포들에게 주치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오고 있는 한 사람을, 뭔가 착오가 생기지 않고서야 불구가 되 버릴지도 모른다는 아기 아버지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고 함께 분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국으로 급히 수술비를 급조해 보내야 했던 A씨는 서둘러 정화위원장과 상담을 마치고 돈을 구하러 나갔다고 했으며, 그 지경에까지 한 사람의 고객을 방치시켰을 것이란 김종택 병원장은 아닐 것이란 판단이 당시 나에게 더 지배적이었다. 더더욱 고발진술서에 의심이 갔던 것은 '중태'의 위기에까지 다다른 아기가 A씨의 진술 내용처럼, 김 원장의 오진과, 오진의 실수를 인정치 않고 피해 다니고 있다는 점과, 그 실수가 가져온 아기의 불행을 끝까지 '나 몰라라' 발뺌하고 있다는 내용들이었다.
당시 나를 포함해 웬만한 한인동포들은 김종택 한국병원장의 단골 고객들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병세가 있거나 건강상태에 적신호가 보이는 사람들은 코리아타운 인근의 한국병원을 찾아갔다. 독하기가 이를 데 없는 감기환자도 그의 주사 한방이면 '침을 빼는 순간 감기가 똑 떨어져 나간다'는 말이 나돌고 있을 만큼 그의 의술 솜씨는 동포사회에서 긍정적인 평판으로 자자했다. 한 지상사 소속 회사는 그를 아예 직원들의 주치의사로 내정해 거래하고 있었고, 한인행사나 공관의 모임에서 덕망 있는 한인사회의 인사로 소개되는 모습을 자주 지켜봤던 필자였다.
여유 있게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약을 구해 먹기도 힘들었던 한국병원의 원장이, 그런 덕망과 명예를 하루아침에 먹칠 당하게 놔둘 사람은 결코 아닐 것이란 생각 때문에라도, 나는 진술서 종이 한 장보다는 김종택씨의 유구무언을 더 믿고 동정표를 보내고 있었다.
고발진술서를 접수한 정화위원회나 기사제보 현장에 나타난 본인이나 당시 우선 해야하는 일은 김종택 한국병원장을 만나보는 일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김명기 정화위원장도 양쪽 얘기를 다 듣고 나면 뭔가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고, 서로 한 테이블로 불러모아 중재하는 가운데 당사자들끼리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원래의 '의사와 고객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란 같은 생각이었다. 그 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던 이유도 김종택이란 사람을 둘러싸고 당시 한인사회에 풍문으로 떠돌던 '파라과이에서 수의사 보조로 일하면서 의술을 배웠다'느니 '감기환자에게 모르핀을 투약한다. 그러니 감기가 금방 안 떨어질 재간 있어?' 심지어는 '제왕절개수술을 받은 한인 임산부가 한국으로 돌아간 3개월 후에 뱃속에서 죽어있는 태아를 발견하고 기겁한 사실이 있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말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 한인의사의 꿋꿋함에 박수를 보내왔던 김명기 위원장과 필자였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낭설로만 여겼던 소문들이 전부 사실로 드러나기까지의 김종택 병원장의 인면수심은 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양 두껍을 둘러쓴 야수 그 자체였다. 김씨의 아내와, 그녀의 조카, 그리고 그를 비호하는 사람들의 힘(?)에 의지해 순간의 위기에서 빠져나려고 하는 안간힘은 일파만파로 한인사회를 왈칵 뒤집어놓고 말았다. 한 사람이 전체의 한인동포들을 상대로 벌여온 사기는 '그런 사람은 죽여 없애도 마땅하다'는 동포여론과 '그럴 수도 있다'는 여론이 맞물려, 고질적이고도 특수하기 그지없는 병폐의 한 판 대결로 사생결단을 벌여야 했다. 그 짧은 며칠 동안에 수도 없이 더렵혀지고 난도질당하는 멕시코 한인사회의 가운데 지점에 서 있었던 필자에게는 가장 많은 적을 양산해나가는 과정이 되기도 했으며, 또한 가장 힘든 시기의 멕시코 이민생활로 기억되는 시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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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위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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