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원응식 (버지니아/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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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원응식 (버지니아/원주)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04.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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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미 동부 버지니아 주 버킹검 카운티.


워싱턴DC 부근 이 지역의 한 한인교포가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한 '표고버섯'을 처음 선보여 미 대륙 천지가 떠들썩한 일이 있었다. 미 전국 언론들이 이 버섯작품을 경이로운 사실로 대서특필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 워싱톤 포스트 紙를 비롯한 미 유명 언론지와 방송들은 그를 '아시아에서 온 위대한 개척자.'라고 부르고 그와 버섯농장에 관한 일화를 크게 소개했다. 이 美 매스컴에 수십 차례나 보도된 이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원주출신 원응식(66세)씨.

그는 당시 45세 나이에서 참나무를 이용한 표고버섯 번식을 버지니아에서 첫 성공시켜 한국인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었다. 전 세계 생산지로는 오직 한국과 일본뿐인 표고버섯을 미국에서도 대량 생산을 가능케 했으니 그는 소위 종자를 보급한 미국판 문익점으로 시대의 총아가 된 것이다.

원응식은 일제시기인 38년 원주에서 태어났다. 8형제 중 5번째인 그는 원주 중을 거쳐 원주농고를 다니며 일찍이 농장의 꿈을 일궜다. 정작 그가 버섯농장에 손대기 시작한 것은 수출을 위한 무역업에 관련해서부터.

성균관대학 경제과를 졸업하고 해군에 입대, 복무를 끝내자 홍콩으로 갔다. 혹시 무슨 사업기회를 가질 수 있나해서다. 이때 그는 한 중국인으로부터 ‘버섯양식업??에 대한 얘기가 귀에 쏙 들어왔다. 28세 되는 64년 그는 서울에 원호산업이라는 무역업체를 만든다. 이때부터 표고버섯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해외수출에 힘썼다.


표고버섯은 외국에선 일본말인 시다께(Shiitake)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상류층 식품. 원래 고목의 갈라진 틈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이 표고는 질기고 향내가 좋아 예로부터 한국, 일본, 중국등지에선 식용으로 애용돼 왔다. 흔한 양송이와는 달리 주로 고급 음식에 사용되는 귀한 음식으로 여김 받는다. 


동남아에 한약재를 수출하며 표고버섯과 인연을 맺었지요. 중국화교들이 마른 버섯을 많이 먹어요. 또 뉴욕시장에도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을 수출했지요. 버섯재배에 관심을 두면서 제3국에서 한번 재배를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나는 표고버섯의 숙주인 참나무(Oak)가 당시 한국에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참나무 공급문제가 야기되니 타국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고 결국 미국 땅에서 그 해결을 본 셈이다.
"먼저 영국, 독일 등 유럽에서 시도했으나 실패 후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 겁니다. 미국을 계속 드나들며 74년부터 본격적으로 참나무 재배시험을 시작했어요. 기후관계 때문에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보스턴, 코네티컷, 버지니아 등 미 동부지역을 돌며 겨울에 그 지역 참나무를 잘라 한국으로 가져왔지요."
미국에서 귀국하는 그의 큰 3개 트렁크 속에는 오직 나무토막 들 뿐이었다. 미국 어느 곳 산(産)이라는 레벨이 붙은 25-30cm 정도 되는 통나무 토막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참나무라고 전부 표고버섯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는 총 57개나 되는 참나무 종류가 있다고 한다. 이 중 표고버섯에 적절한 참나무는 7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들 나무토막들을 서울 홍릉 임업시험장으로 가져가 표고버섯시험재배에 들어갔다. 매일 이들의 번식과정을 주시하고 기록하기 8개월 후. 결과는 버지니아 산 품질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용기를 얻고 버지니아로 뛰어갔다. 그러나 영어가 딸리고 미국사회를 잘 몰라 현지의 도움을 청했다. 같은 원주출신으로 세계적 유전공학박사인 신승일 박사(당시 뉴욕 대 교수)와 하버드대 출신으로 전 외국어대학 교수였던 마크 타이더스 씨가 그를 도왔다. 


지난 81년 이들 세 사람은 엘릭스 코퍼레이션(ELIX CORP)이란 회사명으로 대단위 농장을 설립한다. 총면적 1천2백 에이커에 달하는 미국에선 유일한 표고버섯농장이다. 이들의 합심아래 표고버섯 생산은 2년6개월이 흐르자 기대이상의 성공을 이룬다. 또 초기부터 재배기술과 종균배양 및 품종개량 등 과학영농에 힘썼다. 그 결과 종균 접종 후의 싹이 트는 시기를 훨씬 단축시켰다. 보통 한국과 일본에서 15-18개월 걸리는 기간을 3-4개월로 크게 줄인 것이다.


그러나 모처럼의 재배성공에 비해 아직 판매시장이 형성 안돼 고전할 즈음이다. 미국인들은 생소하니 거저 줘도 먹지 않았다. 이러한 고민을 단 한방에 날려 보내고 표고버섯이 고급 요리로 정착되는 사건이 생겼다. 84년 9월 미국의 G5 정상회담 개최 건으로 인해서다.


"주최국인 미국은 상대국가 원수들의 식성을 조사했는데 이때 표고버섯 얘기가 등장한 거지요. 당시 영국 대처수상은 바다가재 알을, 일본 다나까 수상이 특히 표고버섯을 좋아했다고 해요. 이 때문에 미국에선 유일한 제 표고버섯농장이 부각되면서 전국 언론을 통해 소문이 퍼져나가게 된 겁니다."


백악관에선 현지조사를 나와 1천 파운드의 버섯을 헬리콥터로 운송해갔다. 이때 백악관 수표로 지불한 돈이 1만5천 달러. 뉴욕타임스 편집국장은 특집을 꾸민다고 사진기자와 함께 달려오고 각 언론사들끼리는 취재경쟁에 불이 붙었다.


미 농무성에선 표고버섯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미 CBC를 선두로 전국 10개 TV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는 등 하루아침에 그는 일약 유명인사로 각광받았다. 또 미 전국에서 구매자들로부터 문의전화와 주문전화가 쇄도해 농장 일을 못할 정도였다.


아마 정치인 한인인사를 제외하고는 미 신문, 방송에 교포로서 그의 이름이 계속적으로 크게 기사화 된 것은 원사장이 처음일 것으로 주변에선 보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회사는 나중 원산버섯농장(Won Shan Mushroom Farms)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40년 버섯 외길인생의 원응식 사장. 기자가 농장을 방문하던 저녁 폭우로 인해 농장을 제대로 살펴볼 수 없었던 게 아쉽다. 그는 표고버섯으로 아메리카를 평정한 후 수년전부터는 150만평의 밭을 이용해 검정콩을 대량 생산해 내고 있다. "속 푸른 콩이라고 하기도 하지요. 원산지가 강원도 홍천과 횡성등지인데 이곳 농장 1년 생산량이 한국 5-6년 생산량과 맞먹어요. 밤콩도 심고 있는데 콩이 건강에 아주 좋잖아요."


아침 6시면 정확히 기상한다는 그는 새벽1-2시가 취침시간이다. 항상 할일이 많아 잠자는 시간은 염두에 없다. 요즘엔 나이를 들어선지 잠이 더 안 온다며 하루 4시간도 못 잔다고 전한다. 그래도 바쁜 가운데 그간 워싱턴 강원향우회장을 역임했고, 평통위원, 한미범죄인도위원회 동부 본부장을 지냈다.


2002년 12월 그는 퍼시픽 웨스턴 대학에서 농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버섯을 주제로 한 논문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미 농무성에선 아직 그에게 '곰팡이류'의 연구를 더 계속해 달라고 연락이 온단다.


미주 한인 최초의 버섯박사가 된 원 사장에게 어느 미 잡지가 그를 단적으로 이렇게 평했다. '버섯이 부인보다 먼저인 사람, 버섯과 대화까지 나눌 경지에 달한 전문가' 라고. (khsong@kado.net)

(사진설명) 1. 원응식 독사진 2.광대한 버지니아 콩 농장전경 3.가족사진 (부인 이현자 씨와 전부 결혼한 자녀 3형제들-우철, 유성, 유호) 4. 미 신문에 게재된 토막 낸 참나무 숲. 5. 버지니아 참나무에 매달린 표고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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