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대한동포>아사도로 승부거는 신경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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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대한동포>아사도로 승부거는 신경용씨
  • 임용위
  • 승인 2004.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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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회는 한인들이 돕지 않으면 안 돼
취재처가 기획을 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있고 우연한 기회에 덤으로 얻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야인시대'가 그랬다. 직원들하고 목요일 회식을 결정했던 장소로 들렀던 '야인시대(Rio Lerma#115)는 뜻밖의 한인 손님들로 넘쳐났다.
많은 지인들을 우연히 만나게 된 2층의 '야인시대' 홀에서 악수를 청하고 안부를 묻느라 주인이 정해주는 좌석에 앉기까지 인사를 나누는 데만 꽤나 시간을 소비했다.
정해준 좌석은 손님들로 붐비는 홀이 아닌 따로 좌석이 떨어진 별도의 공간이었다. 특이할만한 장식물이 없이 깨끗한 실내 벽에 단촐한 테이블로 안내하는 작은 체구의 주인 아저씨 신경용(54)씨와 처음 만나 곧바로 친밀해진 것은 아사도(소고기 구이)를 두 접시쯤 비우고 소주 서너 잔을 들이키면서부터다.
필자의 고집으로 신경용씨를 테이블로 합석시켰다. 인터뷰를 하려는 게 아니라 해도 한사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신씨에게 같은 주객(酒客)으로 이런 저런 얘기나 나누자고 청해서 겨우 말문을 열게 했다. 주 메뉴인 아사도를 요청하는 홀의 손님들을 신경 쓰느라 자주 자리에서 일어섰던 신 씨와 대화가 끊어지곤 했지만 같은 한인동포의 입장에서 한인업소가 잘 돼는 것은 어찌됐든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멕시코에 온 지 4개월 됐어요. 이 곳 아사도 뷔페는 문 연지 2달 반 돼 가구요." 언뜻 남미 생활의 초년 동포로 들리지만 쉰 살을 훌떡 넘긴 신 씨의 중남미 생활 경력이 무려 22년이란다.

"고생되는 식당을 또 해야하나?"

"파라과이가 첫 이민지이고 거기서 20년을 생활했어요. 파라다이스에서 보낸 것처럼 너무도 좋은 자연환경에 순박하고 법 없이도 살아가는 현지인들과 섞여서 산 기억이 많지요." 파라과이 동포들이 한꺼번에 그랬던 것처럼 느닷없이 불어닥친 경제 한파는 신씨 가족들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브라질로 정착지를 옮겨 2년을 지내온 세월도 그리 원만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멕시코에 먼저 도착한 파라과이 동포들의 요청도 있었고, 한 3년 전쯤에 두 번 멕시코를 방문했던 기억이 멕시코로 저희 가족을 안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신현태 회장님이 한인회장으로 계셨었는데, 한인들이 똘똘 뭉쳐 넉넉한 경제 여건 속에서 대부분 흡족한 이민생활을 영위해나가는 모습들이 멕시코를 기억 속에 담아두었던 인상이었지요."
너무도 확연히 달라진 멕시코 경제사정이 멕시코를 정착해서 살자고 맘먹은 순간부터 시련의 시련은 거듭되었다고 신 씨는 말한다. 대학을 한국(외국어 대)으로 보낸 큰 딸 선희(20)에게 관심도 기울여야 했고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아내 이인항(43)씨가 수술을 받는 지경까지 이른 상태에서 무엇보다 시급하게 다가온 것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고.
음식점에 관한 한 안 해본 것이 없다는 신씨 가족이 멕시코에서 택한 길도 결국은 요식업종이었다. "아내에게 고생시키는 식당을 왜 해야할까 고민이 많았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뭔가 획기적인 경영방침을 식당사업에 도입해보자고 결정하고 뛰어든 재도약의 길이 물론 손쉬울 리는 만무했지요."
그나마 지금 상태의 '만원사례'로 가게를 이끌기까지의 비결은 '오랜 이민생활의 노하우가 아니었나.'라고 신씨는 밝힌다. 스페인어가 자유자제로 되고 현지인들의 성품을 잘 이해해온 덕에 장소를 결정하고 영업허가를 받는 일, 시설을 갖추고 집기를 사들이는 일들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었다고 신경용씨는 말한다.
"아사도(Asado)는 남미에서는 고유명사가 되 버린 소고기 구이의 대명사지요. 파라과이 생활 20여 년을 아사도만 먹고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요리는 저에게 멕시코에서 승부를 낼만한 상품이었어요. 제법 솜씨를 발휘해서 고객들에게 어필해보자고 했던 생각도 처음에는 뜻대로 안되더라구요. 고원지대의 특수성과 고기 선별에 어려움이 무척 많았던 거죠."
거듭되는 시행착오 속에서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버텼던 것은 '더 이상은 물러설 수도 없는 타국만리에서의 오기였다.'고 신씨는 말한다. "짙게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도 바늘 같은 빛은 찾으면 있는 법이지요. 그 빛이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희망입니다. 사람들은 현실보더 좀 더 화려했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희망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 역시 대표적으로 너무도 넉넉하고 좋았던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의 현실은 아주 비참하다고도 말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미래를 생각해야지요. 좀 더 나은 미래를 향해간다는 희망! 그 희망을 멕시코 한인동포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요."
희망을 공유하고 싶다는 신씨의 말은 '야인시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넘치는 한인고객들이 신씨에게는 손님들로서의 차원을 넘어 친구, 이웃, 또는 선후배 관계로 불쑥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일단은 영업차원의 주객(主客)관계로서가 아니라 다 같이 힘든 이웃으로 대하고 만나는 한인들이 그렇게 부담 없고 편할 수가 없다는 신 씨는 "힘든 하루의 일정을 보내고 찾은 한인 분들이 편히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술잔에 담아 담소하고, 거기에다 용기를 새삼 다지는 분들까지 늘어가니 더없이 큰 보람을 갖는 요즈음"이라고 말한다.
아내 이인항(43)씨도 오하려 바빠진 덕에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동포들이 부디 중도에서 좌절하지 말고 이 난국을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다."고 남편 신씨의 생각에 동조한다.

한인회는 한인들이 돕지 않으면 안 돼

'야인시대'라는, 드라마로 인기를 끈 제명을 사용한 이유를 물었다. "남편의 결정을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의리, 남자, 술, 뭐 이런 것을 연상하는 뉘앙스가 좋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또 여러 번 듣다보니 친숙해진 느낌이고, 야인시대를 찾는 손님들도 상호명은 잘 지었다고 말씀하시니까 이젠 제가 더 그 이름에 익숙해졌어요."
아사도를 처음 접한 필자에게 고기는 연하고 맛이 독특했다. 고기시장에서 가장 많은 사전 조사를 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는 신 씨는 "특별히 고기를 구입하는 현지인 정육가게를 매일 들려 원하는 부위를 가져다 손질하고 굽는 과정까지 직접 한다."고 말하며 "손님들에게 반응도 좋고 아직 한국사람으로서는 본인이 처음 시작한 아사도 뷔페를, 멕시코에 마지막 터를 잡고 살자고 결정한 마당에서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비젼도 제시한다.
파라과이 시절 한인회 이사로서 한인사회의 공적 업무도 수 차례 경험했다는 신씨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기는 즉시 한인사회에 더 깊숙이 안착해 뭔가 한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한다. 신현태 전 한인회장의 지도력을 파라과이에서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는 신씨는 "이광석 회장님을 우리가 어떤 경로로든 한인을 대표로 두고 있는 입장에서 한인회를 잘 지키고 도움을 줄만한 일은 적극 준 게 한인동포들이 다같이 지녀야할 마음자세."라고 한인회의 일원으로 일했던 경험의 상식을 토로하기도 한다.
파라과이 시절 '설렁탕' 하면 '신경용'씨를 많은 파라과이 교포들이 떠올릴 정도로 "남편이 조리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말하는 이인항씨. 역시 "찌개를 끓이는 비법 또한 독특하다."고 자랑하는 신씨와는 부부금술에서도 남달라 보인다.
한국에 큰딸을 공부 보내고 작은 딸 선애(17) 양 세 식구가 멕시코에 정착해 "20년을 지내온 파라과이 생활만큼, 앞으로 20년은 멕시코에서 한인들과 더불어 살겠다."는 신경용씨 가족에게 더 이상은 뒤로 물러서는 일이 멕시코에 살아가는 과정에서 더는 없기를 기자는 속으로 빌어본다.
'야인시대'가 제자리를 잡아가며 발전궤도에 오르는 것처럼, "많은 한인식당들이 남다른 노하우를 발휘해 승승장구 외국인 업소의 명소로 발전해간다면 더 뭘 바랄까?"라는 의견에 신씨와 자리했던 직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함께 희망을 보내며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겨우 신씨에게 인터뷰로서의 수락을 얻어내고 나온 '야인시대' 앞에는 미국대사관의 건물이 한밤중의 시야로 들어와 있었다.
임용위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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